'핀테크 혁명'에 무관심한 증권업계

'핀테크 혁명'에 무관심한 증권업계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5.07.01 10:17

[숨고르기]ICT업계의 시장잠식에 적극 대응해야

[편집자주]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지금 금융업이라는 성역(聖域)에 ICT업체와 전자상거래업체들이 빠르게 진입하면서 '핀테크 혁명'을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증권업을 위시한 금융투자업계는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수수방관하고 있는 모양새다. 오랜 기간 금융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으며 영업을 해 온 탓에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는 금융환경의 변화에 둔감해진 때문일까.

증권업계가 이러한 금융환경의 변화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주식시장이 수년간의 장기불황을 탈출하고 올해 들어 상승추세로 돌입하면서 시장활황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지난 3년간 7500명이라는 임직원 감축을 통해 비용절감 효과의 반사이익마저 누리고 있는 상황이니 증권업계가 핀테크를 중심으로 하는 혁명적인 금융환경 변화에 소극적일 법도 하다.

증권업계는 핀테크를 결제기능 중심의 비대면 온라인뱅킹 수준 정도로만 인식하고 핀테크가 가져올 금융산업의 혁명적 지형변화에는 그다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지난 18일 금융당국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발표 후 키움이나 미래에셋 등 일부의 증권사만 관심을 보일 뿐 대다수의 증권사들은 무관심하다.

증권업계가 구축한 HTS(홈트레이딩시스템)나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는 기본기능(중개,판매)의 물리적 플랫폼을 단지 영업점 창구와 전화에서 PC와 핸드폰으로 바꾼 대응에 불과하므로 핀테크 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글로벌 증권업계는 자산관리나 자본조달, 리서치 같은 핵심기능마저 ICT업계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 증권업계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가 전무한 형편이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자사 플랫폼을 이용하여 2013년 출시한 온라인MMF ‘위어바오’는 2년만에 100조원을 넘어섰고, 알리바바 인터넷전문은행 '마이뱅크'는 25일부터 영업을 개시했다. 미국의 웰쓰프론트(Wealthfront)는 2008년 설립된 알고리즘 기반 자산운용회사로서 금년 1월 기준으로 10억달러 이상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산하 증권회사인 메릴린치는 온라인 종합자산관리회사인 Merill Edge를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15일에는 글로벌 대표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소비자금융을 위한 핀테크사업에 진출한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금융투자의 핵심기능인 자본조달·중개기능이 ICT업계 주도의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미국 크라우드펀딩 연구업체인 마솔루션(Massolution)에 따르면 세계 크라우드펀딩 규모가 2014년 162억달러에서 2015년엔 344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2009년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회사인 킥스타터(Kickstarter)는 한국의 스타트업들도 즐겨 활용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지난 16일 크라우드펀딩법이 법사위를 통과한 만큼 머지않아 활성화가 기대된다.

공시자료나 기업자료에 기반한 리서치와 평가기능도 빅데이터 분석에 비해 유용성이 점차 떨어질 전망이다. 소비자와 기업들의 다양한 활동 데이터가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되면서 맞춤형 금융상품 추천이나 기업분석이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1년설립된 세계 최초의 모바일 다이렉트 은행인 무브앤뱅크(Movenbank)의 크레드스코어(CREDscore)는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활동을 개인평가작업에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분석은 기업평가분야로 얼마든지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증권업의 고유 영역을 ICT에 기반한 핀테크기업들이 각개격파식으로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 증권업계의 상황인식이 취약해 보이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증권업을 선도해야할 대형사들의 M&A가 현재 진행형이고, 또 지주사 산하의 증권사들은 핀테크를 주도적으로 준비할 입장이 아니다. 중소형사들은 이제 겨우 살아나기 시작해 금융 패러다임 변화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더욱이 라이선스라는 울타리에 안주한 채 낡은 관행에 길들여진 금융권 임직원들에게 스스로를 파괴하는 창조적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강 건너 불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록 늦은 감이 있으나 이번 정책당국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발표를 계기로 증권업계도 핀테크 혁명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핀테크를 경영전략의 핵심 아젠다로 설정하고 인력과 자원을 집중한다 하더라도 거세게 밀려오는 ICT업계의 시장잠식을 막아내기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병찬 이코노미스트/캐리커처=김현정 디자이너
이병찬 이코노미스트/캐리커처=김현정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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