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 구제금융’ 협상을 둘러싼 그리스와 채권단 사이의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된 양상이다. 이에 따라 지구촌을 뒤흔든 그리스 사례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스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잘못된 정치 때문이다. 왕정과 군사정권을 거쳐 1981년 처음으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사회당 정부가 출범했다. 그가 내세운 슬로건은 ‘아라기’(변화)였다. 파판드레우는 대대적인 분배정책을 밀어붙였다. 실업자와 저임근로자에 대한 복지혜택을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노동법을 고쳐 해고요건을 엄격히 함으로써 고용의 유연성을 떨어뜨렸다. 임금을 인플레이션과 연동하고 세제의 분배 기능을 강화했다. 대대적인 연금제도 개혁에 따라 2010년 1차 구제금융 직전에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90%를 상회했다. 저소득층의 관광경비까지 보조했으니 복지천국이 따로 없었다.
보수당이 집권해도 과잉복지체계를 손볼 수 없었다.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높은 복지수요에도 불구하고 증세에 소극적이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22~24% 수준인 반면 조세부담률은 2009년 19.4%, 2013년 2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8%에 크게 떨어졌다. 결과는 국가채무 급증이었다. 국가채무비율은 177%로 남유럽국가인 이탈리아 132%, 포르투갈 130%, 스페인 97%보다 월등히 높다.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는 평균임금이 약 40% 줄어들고 실업자도 100만명 늘어나는 긴축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러나 ‘복지금단’ 현상으로 채권단이 요구하는 강도 높은 긴축 및 개혁 요구에는 부응할 수 없었다.
그리스 경제는 미국 동부의 코네티컷주와 비슷한 규모다. 수출과 고용을 견인하는 제조업부문이 취약하다. 농업과 관광서비스부문이 경제를 지탱한다. 섬유, 조선, 반도체, 자동차 순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해 성장을 이끌어온 우리와 천양지차다. 관광산업이 GDP의 17%를 차지하며 관련 종사자가 34만명을 넘는다. 탈세규모가 GDP의 10%를 넘는다고 한다. 부정부패도 OECD 회원국 중 바닥권이다. 2001년 유로존 가입 이후 생산성과 무관하게 임금이 2배, 최저임금이 70%나 올랐다. ‘총체적 부실덩어리’인 셈이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조지 윌의 주장처럼 그리스는 능력을 넘어서 흥청거렸고 그 갭을 독일 같은 부유한 이웃이 메워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유로화를 채택한 이후 통화주권이 사라져버렸다. 심각한 무역불균형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환율절하 정책을 추진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캐나다도 그리스와 유사한 위기를 겪었는데 통화가치 절하와 재정긴축을 통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독자들의 PICK!
그리스 경제에 미래가 있을까.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2010년 이후 강력한 긴축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과잉긴축으로 경제의 펀더멘털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GDP는 2009년 2640억달러에서 2014년 1994억달러로 25% 줄었다. 토마 피케티, 제프리 삭스, 사이먼 렌 루이스 교수 등은 “구조개혁과 함께 광범위한 부채삭감과 기한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독일도 1953년 대외채무를 절반가량 탕감받은 선례가 있다.
그리스의 부활 여부는 전적으로 그리스 국민과 지도층에게 달렸다. 복지에 취하고 포퓰리즘에 물든 그리스 사회가 국가재건에 나설 국민적 의지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강조했듯이 채권국의 신뢰회복이 중요하다. 채권국은 그리스의 개혁의지를 불신한다. 고통스럽지만 하나씩 하나씩 무너진 경제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치열하다. 능력을 벗어난 과잉복지는 무책임하다. 적정수준의 국가채무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스 사태는 경제주권을 지키지 못할 때 국민이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정재절재(政在節財). 정치의 요체는 재물을 아끼는 데 있다는 공자님의 말씀이 절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