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영국의 지적 괴짜 프랜시스 골턴은 한 지역축제에서 놀라운 현상을 포착했다. 소의 무게를 추측해서 가장 정확히 맞히는 사람이 우승하는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추측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를 합산해서 낸 평균값은 어떤 전문가보다 정확함을 발견한 것이다. 흔히 ‘집단지성’(Crowd Intelligence)으로 일컬어지는 이 현상은 다수의 지적 능력을 결합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오랜 속담도 있지 않은가.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다수의 능력을 결합하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다수는 언제나 개인보다 현명할까?
2003년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는 작업을 마치고 대기권에 진입하고 있었다. 이륙 과정에서 단열재가 컬럼비아호의 날개를 손상시켰을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임무 성공에 따르는 결과의 저울질에 초점을 맞춘 상황에서 실패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컬럼비아호는 대기권에서 폭발했고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최고의 전문가가 포진한 집단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집단사고’(Groupthink)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외에도 미국발 2008년 금융위기 등 다수의 의견이 모여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간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집단지성과 집단사고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어떤 경우 집단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하게 될까. 학자들은 개인의 ‘독립성’을 집단지성과 집단사고를 가르는 중요한 경계선으로 본다. 골턴의 사례처럼 개인의 독립적 추측을 합산하는 경우(의견이 조금씩 다를 것이므로) 개별 추측이 더해질 때마다 집단이 보유한 정보의 양은 늘어난다. 그러나 개인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서로의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다수의 판단은 가장 두드러진 누군가의 의견을 따라가게 되므로 결국 집단의 판단은 영향력 있는 개인의 판단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경향은 지적 능력이나 영향력의 편차가 클 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향력 있는 개인이 오판을 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는 상황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서 결국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종종 인터넷에서 형성된 여론을 한쪽으로 쏠리는 집단사고의 전형으로 인식한다. 뚜렷한 자기 생각 없이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는 대중의 가벼움(?)을 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인터넷처럼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하기가 더 쉽다. 반면 수직적 위계가 공고하거나 서로의 의견에 영향을 받기 쉬운 환경에는 집단사고의 위험이 도사린다. 개인의 의견보다 그가 속한 집단의 방향이 더 중시되고 그에 맞추는 분위기가 우세한 환경에서 집단사고는 꽃을 피운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일반시민과 패거리를 만들고 안전한 자리를 찾느라 분주한 정치인. 과연 누가 집단사고의 제물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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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스스로의 독립성에 조금 더 주목해야 한다. 만장일치를 단결과 협력의 징표로 삼는 만연한 풍토를 집단사고의 징후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론 잡음으로, 협력을 깨는 균열로 보일지 모르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결국 집단사고의 함정에서 우리 모두를 구해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