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노동개혁 시야를 넓혀라

[MT 시평] 노동개혁 시야를 넓혀라

이근덕 기자
2015.08.14 03:23

‘막다른 골목에서의 강요된 선택.’ ‘공중에 떠 있는 시간 내내 죽음을 떠올려야 하는 극단적 선택.’

89일 만에 땅에 내려온 노동자는 “고공농성은 철저히 자신과 싸워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고문이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농성자들은 땅에 내려와서도 불면증과 불안감, 우울증에 시달리며 또 다른 고통을 호소했다. 심지어 홀로 400일을 넘기는 농성으로 기네스북 기록 운운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이 순간에도 공중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하는 노동자가 몇 명인지 모른다.

고공농성의 효시는 아마도 1990년 5월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농성’이지 싶다. 공권력 투입에 떠밀린 선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술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준비한 측면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하지만 이후 잊을 만하면 크레인, 광고탑 아니면 공장의 굴뚝에서 이어진 농성들은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조직적 활동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이 고스란히 몇몇 노동자에게 전가되어 버린 느낌이다. 마치 1970년 11월13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이 그 형식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고 조직지향적이며 미래지향적이었다고 평가받는데 반해 IMF체제 이후 많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좌절과 낙망 그리고 조직적 문제해결의 불확실성이 빚은 패배적 이미지로 비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고공농성의 발단이라 할 고용불안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청년실업 문제다. 현재는 물론이고 우리의 미래 문제이기도 하다. 뾰족한 해결책 없이 청년들 간의 무한경쟁에만 온전히 내맡겨진 청년실업은 우리 사회의 뇌관과 같다. 올해 상반기 청년실업자가 41만명에 달하고 취업포기자와 취업준비생을 합하면 120만명에 이른다. 더구나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받는 노동자가 1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대상 20개국 중 1등이다(OECD의 '고용전망 2015‘ 보고서). 하지만 노동정책은 그저 경제가 살아나기만을 빌고 대기업이 채용을 늘려주기만을 비는 주술(呪術)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청년들은 체념했고 우리나라는 ’헬 코리아‘(hell Korea)로 추락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언젠가 광고탑이나 굴뚝을 찾아 올라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구호를 외칠 대상이 애매하고 스스로 조직화하기 어렵다는 그들의 여건이 어쩌면 다행인지 모른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연일 “노동 개혁”을 외치고 있다. 나는 그 명칭부터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 임금피크제 도입, 고용유연화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의 이슈가 노동의 일방개혁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노사관계 개혁이어야 하고 노동정책 개혁이어야 함에도 왜 노동 개혁으로만 시야를 좁히는지 모르겠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청년고용이 증대하고 고용이 유연해지면 양질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물론 다수의 국민도 이 주장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며 경영계의 진정성도 의심받고 있다. 좀 더디더라도 희망이 보이는 청사진을 제시해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내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는가? 어느 일방의 개혁이 아닌 노·사·정이 함께 총력을 기울일 문제이기에 공감대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 공감 없는 일방적 강요는 더 많은 노동자를 하늘 높은 곳으로 내몰고 힘들게 키운 우리의 아들, 딸들마저 준비하게 만들까 두렵다.

이제 고공농성은 더 이상 투쟁의 전술로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또 “안 올라가면 되잖아?” 식으로 비아냥거려서도 안 되며, 그리 몰고 가서는 더 더욱 안 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