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피크제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나이와 근속연수를 채운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해 이들의 고용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임금피크제의 주요 대상은 중·고령근로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은 평균적으로 54세에 생애주요직장에서 퇴직하고 이후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근로를 지속하다가 남자의 경우 71세, 여자의 경우 69세에 완전히 은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은퇴유형에서 중·고령근로자들의 임금이 삭감되면 기업은 이들을 더 오랫동안 고용할 유인을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임금피크제의 고용안정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임금피크제 논의는 전혀 다른 쟁점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부의 주장은 무능하고 욕심 많은 중·고령근로자들의 임금을 깎아 유능한 청년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아버지의 임금을 깎아 아들을 채용한다”며 반발한다. 노동계는 청년실업의 주요 원인은 기업이 이익만 챙기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며 기업의 이기심을 처벌할 것을 주장한다. 애초 취지와 다르게 임금피크제가 아버지와 아들, 기업과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의 주요 이슈로 부상한 것이다.
임금피크제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는 아니다. 물론 정부는 임금피크제와 청년신규고용을 연계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확대해 청년실업 해소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적용사업장의 범위가 넓지 않고 그중에서 청년신규고용을 실시하는 기업은 더더욱 적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것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싸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아버지세대의 고용특권이 아들세대의 고용기회를 방해한다는 것도 과장됐다.
일부 공무원과 공기업 근로자를 제외하면 정년보장을 누리는 근로자는 매우 적다. 애초 임금피크제도 이렇게 살벌하게 정년 전 고용조정에 노출된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에 재정적 유인을 주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이기심과 탐욕도 청년실업의 주요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은 이윤이 기대될 때 투자하고 이러한 합리성이 사라지면 기업의 장기적 지속성이 유지되긴 어렵다. 청년실업의 원인은 아버지 세대의 특권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 세대도 언제 고용조정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고용절벽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또한 기업의 부도덕한 탐욕도 청년들이 분쇄해야할 대상은 아니다. 이들도 갈수록 심해지는 국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의 진짜 원인은 고용구조에 있다. 1990년 말 외환위기 이후 고성장을 배경으로 완전고용과 평생고용을 제공하던 고용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그나마 고용을 창출하기 어려운 ‘고용 없는 성장’이 되었다. 생산성이 높은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대신 생산성이 낮은 저질의 비정규직 노동과 자영업의 일자리는 확대되었다. 이러한 고용구조는 표면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낮은 실업률이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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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고용구조는 심각한 문제들을 내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대다수 일자리가 지나치게 유연하게 운영되어 생활의 안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고용보장과 임금보상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을 하면서도 빈곤한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정규직 일자리는 강한 노동운동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경직되고 높은 보상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이러한 일자리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분절된 고용구조에서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청년들은 정규직의 높은 진입장벽과 생계비 이하의 쉬운 일자리 사이에서 절망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치권은 세대간, 노사간 갈등을 유발해 심각한 청년들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보다 새로운 고용구조 구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실행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