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도덕적 해이’라는 신화

[MT 시평]‘도덕적 해이’라는 신화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16.09.28 04:21

미국의 풍자가이자 저널리스트 헨리 루이스 멘켄은 청교도를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누군가 쾌락을 맛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며 괴로워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남이 쾌락을 맛보건 말건 그게 무슨 고민할 일인가. 아마도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도덕적으로 해이해져서 결국 죄악의 수렁에 빠질까 염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남들이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을까,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현대판 청교도가 넘쳐난다.

미디어에 담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사람들을 갈수록 더 험하고 천박하게 만든다고 한탄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뉴스가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할까봐 불안해한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피 같은 국민의 세금을 엉뚱한 데 낭비할까 우려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혜택이 다른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약화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교사들이 왜곡된 역사를 가르쳐 아이들이 행여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잃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사실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 대한 자발적인 걱정과 감시는 필요하다. 게다가 시키지 않아도 사서 걱정해주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걱정의 시선이 ‘나’와 ‘우리’를 제외한 타인에게만, 바깥으로만 향한다는 데 있다. 미디어의 폭력적이고 편향된 내용들은 ‘나’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해롭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현실을 더 제대로 인식하고 심지어는 그들 자신보다 더 그들(의 한계)을 잘 안다고 믿는다. 남들은 쉽게 극단적으로 치우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사회를 향해 항상 적당한 수준의 합리적인 기대를 갖지만 남들은 지나친 수준의 비합리적 요구를 해댄다. 내가 받는 복지혜택은 정당한 권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복지는 과잉일 수 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아 마땅하며 내가 아는 역사는 심지어 역사학자들이 아는 역사보다 더 바르다.

이와 같은 비대칭적 사고방식을 사회과학자들은 ‘자기편향’(self-serving bias), 혹은 더 포괄적으로 ‘소박한 (혹은 유치한) 실재론’(naive realism)으로 부른다. 비대칭적 사고의 원인 중 하나는 사실 사람에 대한 신뢰 고갈이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공감하고 대화하기보다 일방적으로 걱정하고 훈계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도덕에 대한 걱정과 우려는 사실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고픈 마음을 감춘 외피에 불과한 것이다.

청년들에게 일정기간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방식의 복지정책을 중앙정부는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언제나 필요하지만 한 달 지원금 50만원에 청년들의 도덕이 무너진다는 이유를 댄 것은 매우 아쉽다. 기성세대의 도덕은 어떤 접대나 향응에도 끄떡없지만 젊은 청년의 도덕은 작은 공짜에도 무너진다는 신종 가설인가. 청년의 도덕에 대한 일방적 걱정과 우려는 그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비뚤어진 시선을 드러낼 뿐이다. 남의 도덕적 해이를 사서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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