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치맛바람 비웃은 '최맛바람'

[우보세] 치맛바람 비웃은 '최맛바람'

세종=문영재 기자
2016.11.02 04:5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내가 죽일 사람이라고 하는 건 다 좋습니다. 그러나 딸이 세상에서 모진 매질을 받게 된 것에 대해 어미로서 가슴 아프고 딸에 대해서만은 관용을 베풀어주시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60)씨가 독일로 잠적한지 57일 만에 급거 귀국하면서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전한 말이다. 자신은 처벌을 받더라도 대학 입학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딸에게는 비난과 처벌을 피하게 하려는 속내도 읽힌다. 최씨는 딸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20)씨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 사랑이 지나쳤을까. 대한민국을 전대미문의 집단 패닉(공황상태)에 빠뜨린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치맛바람보다 무서운 최맛바람'이라는 글들이 인터넷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배됐다. 돈과 권력을 등에 업은 최씨가 정씨 진학을 위해 동원한 부정·편법은 이미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과거 그 어떤 고교·대학 입학·학사 특혜 논란을 넘어섰다.

최씨는 과제물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딸 정씨에게 제적경고를 한 대학 지도교수를 직접 찾아가 고소하겠다며 고함을 질렀다.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도 넘은 최씨의 행태는 정씨가 고등학생일 때도 목격됐다. 최씨는 정씨의 대회출전 횟수를 제한한 출결담당 교사에게 거칠게 항의하며 교육부 장관에게 말해 교체해 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학교장과 체육교사, 딸의 담임교사에게는 돈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천박함의 극치를 보여준 셈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늦가을 추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과 정씨 또래인 20대 전후의 학생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이들은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모금·사유화나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보다 정씨의 입학·학점 특혜 의혹에 더 분노했고, 신뢰를 무너뜨린 대한민국 권력의 실상에 허탈해했다.

집회가 끝난 이튿날 아침. 보도블록 위 안내 표지처럼 일정 간격으로 나란히 늘어선 '박근혜 퇴진'이라는 문구가 씌어진 노란색 부적과 '이게 나라냐'라는 빨간색 벽보는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행복교육박람회’에서 혹 최씨가 첨삭했지 모를 축사를 통해 "미래 세대에게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즐기며 살 수 있는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 교육이 건강한 가정의 뿌리가 되고 공평한 기회 제공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모든 아이들이 공정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출발선'은 무너졌다.

몇 일새 국민의 마음에 더욱 깊이 패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과 최씨를 둘러싼 의혹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이 나라는 박 대통령과 최씨의 나라가 아니라 미래 우리 아이들의 나라"라는 성난 아우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