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훈(한솔제지 대표이사) 한국제지연합회장

종이는 처음 발명된 이래 지난 2000년 동안 인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정보 전달과 기록의 매체로, 포장재로, 화장지로, 생리대로 각각의 용도를 지니고 우리 일상을 윤택하게 해준다. 그런 종이가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쓰임새에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의 생활 패턴에 맞게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IT 융복합 산업화를 실현하는 기능성 특수종이로 거듭나고 있고 식품, 화장품, 의료·전기·전자부품 같은 첨단산업의 핵심소재로 활발히 연구·개발되고 있다.
제지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산림자원이 절대 부족한 지형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어떻게 우리나라가 반세기만에 세계 5위의 종이 생산국이 되었는가가 첫 번째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제지산업이 정말 반환경적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산림자원이 부족한 현실을 폐지자원의 재활용으로 극복해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폐지 재활용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이처럼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끊임 없는 도전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 같은 물음들이 실현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국내 제지업계는 국제적인 환경기준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인 시설투자를 해왔고 화석에너지원을 대체하는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사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제지업계의 화석연료 절감효과가 여타 제조업 대비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제지산업은 천연림을 벌목한 채집 목재가 아닌 조림한 재배 목재를 사용한다. 밭에 무, 배추를 심어 경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세계 인공림의 상당 부분이 제지업체들의 체계적인 관리에 의해 조성, 운영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도 제지업계가 가장 앞장서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영국과 미국의 종이책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CNN 방송의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영국의 전자책 판매액은 전년 대비 17% 줄어든 2억400만 파운드였던 반면, 종이책 판매액은 7% 늘어 48억 파운드를 기록했다. 이같은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의 전자책 판매액은 11억 달러로 전년 대비 16.4% 감소했지만 종이책은 같은 기간 중 6.5% 늘어 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경향이 2014년을 지나면서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편의성이 우선시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종이책의 우수성과 가치가 다시 부각되는 상황이 곧 도래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제지산업의 재도약은 시작됐다. 세계 주요 제지국가는 디지털미디어의 영향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제지산업의 친환경 이미지 제고가 종이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중앙 정부와 산업계가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제지업계가 참여하고 있는 차세대 소재인 셀룰로오스 나노섬유(CNF)의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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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부진, 수출경쟁 심화 등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우리 제지업계도 그동안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면서 얻은 경험과 저력을 바탕으로 지속성장 전략을 구체화하는 등 재도약을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 미국, 일본의 사례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국내 제지산업의 재도약은 훨씬 더 가파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