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가 눈부시다. 대통령 취임 불과 6개월 만에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강화, 글로벌 리더십 복원이라는 정책방향에 맞춰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귀환이 착착 진행된다. 쿼드, 미·일, 한·미, 미·중 2+2회담에 이어 G7(주요 7개국), 미·유럽연합(EU), 미·나토, 미·러 정상회담에서 절제된 언어와 상대에 대한 존중 속에 자신의 목표를 부드럽게 관철해나가는 모습은 그가 외유내강의 준비된 지도자임을 보여준다.
물론 바이든의 이러한 외교적 리더십은 36년의 상원의원 경험과 8년의 부통령 시절을 거쳐 형성됐다. 그의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에 보면 바이든은 세계 대부분 갈등지역을 직접 방문해 현안을 파악하고 있다. 예컨대 유고 내전이 한창일 때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바이든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당신이 빌어먹을 전범이고 그에 따른 응당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바이든은 1999년 코소보의 인종청소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의 사용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상원에 제출했다. 10주째 공중폭격이 계속된 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폭격지속을 망설이자 그는 밀로셰비치가 완전히 항복하도록 밀어붙여야 한다고 클린턴을 압박했다. 밀로셰비치는 결국 조건 없이 항복한 후 코소보에서 철수했고 2002년 국제재판소에 넘겨져 4년여 재판을 받다 2006년 3월 심장마비로 죽었다.
바이든은 한국의 상황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왜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DC를 방문한 후 화가 났는지를 묻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당신이 "햇볕정책은 실패다. 우리는 빠지겠다"고 말함으로써 김대중을 한국에서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유럽 방문을 앞두고 자문을 구하는 부시에게 '부시, 유럽에 관여하다'를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뽑게 만들고 나토의 확장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일화들은 바이든이 기본적으로 세계질서 유지에 미국의 역할과 동맹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국제주의자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위해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며 미래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신념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또한 1조9000억달러의 사회기반시설 투자와 법인세율 인상, 부유세 도입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외교정책의 성공이 결국 국내 문제해결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점도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9·11테러가 발생한 날 부시가 에어포스원을 타고 비공개 장소를 선회할 때 바이든은 프랑스 해방 이후 총탄 속에서도 꼿꼿이 서서 파리에 입성한 샤를 드골의 일화를 떠올리며 "대통령님, 워싱턴으로 돌아오십시오"라고 통화에서 외친다. 바이든은 동료 상원의원 마이크 맨스필드가 "절대로 다른 사람의 동기를 공격하지 마라. 자네는 그의 동기를 모르니까"라고 해준 말을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조언으로 기억한다.
바이든은 우리가 결정하는 문제의 80%는 근본적으로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그들에게 존경을 보여주고 그의 선의를 믿는다면 적어도 그들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의 선의를 믿고 동기를 의심하지 않으며 오직 정책의 결과로 경쟁하는 것은 상호존중을 통해 공존에 이르는 정치세계의 중요한 본질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