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올림픽 영웅, 환대의 범위와 서열

[투데이 窓]올림픽 영웅, 환대의 범위와 서열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2021.08.11 02:18

임대근 교수
임대근 교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1년을 미룬 뒤 치른 올림픽이다. 도쿄올림픽은 세계적 이벤트가 직면할 수 있는 3가지 위기를 잘 보여줬다. 1896년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국가주의와 상업주의, 전쟁 또는 재난에 한꺼번에 노출된 올림픽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국 내 확진자가 급속히 늘고 있던 상황에서도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일본 정부는 끝까지 개최를 고집했다. 전례 없이 무관중대회를 표방했지만 경기가 열리는 동안 일본 내 하루 확진자는 1만5000명 넘게 치솟았다. 북한은 팬데믹을 이유로 33년 만에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칠레 태권도선수 페르난다 아기레는 확진판정으로 경기를 포기했다.

취소를 요구하는 아우성에도 올림픽을 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업주의와 긴밀히 얽혀 있다. 방송중계료와 후원사 수입, 프로선수 참가 등 올림픽을 돈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끈끈한 카르텔을 만들어왔다. 포기할 수 없는 '영업이익'은 전염병의 강력한 습격에도 눈을 감았다.

선수들은 답답한 분위기를 반전시킨 주인공이었다. 아슬아슬한 목표에 대한 도전과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세계에서 모여든 선수들은 저마다 기량을 발휘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써나갔다. 우리 선수들도 양궁, 배구, 펜싱, 육상, 체조 등에서 신나게 활약하면서 뙤약볕 속 단비 같은 소식을 전해줬다.

수영의 황선우, 다이빙의 우하람, 육상의 우상혁, 탁구의 신유빈, 클라이밍의 서채현…. 이들은 메달을 따지는 못 했지만 올림픽을 즐거운 무대 삼아 후회 없는 경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올림픽을 즐기는 우리의 태도도 꽤 성숙해졌다. 은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떨구던 그림은 옛날 일이 됐다. 올림픽이 함께 즐기는 놀이로 변하고 있다.

즐거운 도전에 참여하고 돌아온 선수들은 누구라도 환대받아야 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돌아온 이들을 위한 환영인파와 화려한 카퍼레이드는 없어진 지 오래됐다. 그러나 미디어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옮겨온 환대의 형식은 여전히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라는 강력한 관습을 작동하고 있다.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는 안팎으로 올림픽을 갉아먹는 바이러스다. 환대의 범위를 좁히려는 이들은 올림픽을 여전히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라는 틀에 가두려 한다. 돈벌이 되는 선수를 후원하고 인기종목만을 중계하는 상업주의는 도전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 가운데 누구를 환대할지 그 범위를 제한한다. 메달 색깔과 수를 세면서 올림픽이 국력을 확인하는 마당이라고 생각하는 국가주의는 환대에 서열을 매긴다.

중국 탁구선수 류시원이 은메달을 따고도 "국가에 먹칠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은 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여자배구는 잘 싸웠으니 환대해야 하고 남자야구는 그렇지 못했으니 비난받아야 한다는 주장 안에는 경기의 전체 맥락을 보여주지 못하는 방송중계의 상업주의와 '군 면제' 보상으로 대변되는 국가주의 사고가 뒤얽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를 말했다. '절대적 환대'란 상대의 신분과 이름, 언어, 성별을 묻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으며, 복수도 하지 않는 환대를 말한다. 오늘날 '환대' 이론은 대체로 다른 정체성을 갖는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에 주로 활용된다. 물론 데리다도 이런 환대가 현실에서 완벽히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 아닌 타자를 만나는 순간마다 환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는 누구랄 것 없이 성장을 위해 모험과 도전을 감내한 영웅들이다. 도전의 결과가 우리의 눈높이를 맞췄든 그렇지 않든, 속을 하얗게 태우며 만들어냈을 인간 드라마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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