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
미국과 유럽·중국·일본 등 전세계 강국들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 가운데 정작 메모리반도체 강국인 대한민국은 후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K-반도체 전략 보고'를 통해 "기업의 노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겠다"며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지시했지만 입법 과정에서 '배가 산으로' 갔다. 문 대통령은 반도체 인력양성과 규제 특례, 신속투자 지원 확대를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3일 공포돼 오는 8월 4일 시행되는 소위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그 어디에도 '반도체'라는 말이 없었다.
입법에 관여한 관계자들은 반도체라는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특혜로 보이거나 WTO(세계무역기구)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뭉뚱그렸다고 항변한다. 이 변명은 반도체법을 만든 미국이나 유럽을 '바보'로 보는 것과 같다.
EU는 지난 8일 반도체 산업에 최대 450억유로(61조4500억원)를 투자하는 'EU 반도체법(EU Chips Act)'을 제안했다. 앞서 미국은 '2021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반도체 제조업 육성 계획(CHIPS for America Act)을 넣었다. 여기엔 520억달러(62조 3700억원)를 반도체에 지원하겠다는 구체적 내용을 담았다. 모두 칩(반도체)을 주제로 한 법이다.
우리 첨단산업특별법에는 반도체 뿐만 아니라 2차 전지나 바이오, 디스플레이 등을 담아야 한다는 각계 이해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어갔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지원하겠다는 것은 아무 것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미국 유럽은 반도체가 국가산업의 근간이라는 인식에 따라 반도체에 수십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칩(Chip)법을 만드는데 우리가 안될 이유는 없다.
우리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자금 지원이 아니다. 돈은 스스로도 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인재양성이다.
처음 산업부 안에는 반도체 관련학과 정원 확대로 10년간 1500명을 추가 배출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수도권 대학 정원을 묶어 놓은 교육정책의 한계로 무산됐다. 국제경쟁과 국가 생존을 위한 시급성으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는데 정작 대학정원 규제에 관련항목이 빠졌다.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평등주의에 막혀 반도체 전쟁의 전사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문 대통령이 얘기했던 10년 내 3만 6000명의 인력 육성도 물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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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법 조항에는 '하여야 한다'가 36회인 반면 '할 수 있다'는 87회나 된다. 이것의 의미는 특별법에서 반드시 강제하는 지원보다는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지원'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력양성도, 규제특례도 가능성만 있을 뿐 의지는 없는 조항이 됐다.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은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데 우리는 행정편의주의적인 일부 공무원과 안일한 국회의원들의 합작으로 누더기 반도체특별법이 만들어졌다. 8월 4일 시행 전 반드시 손을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깜깜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