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흘려보내고 저만치서 바라보아야 아름답다

저 멀리 흘려보내고 저만치서 바라보아야 아름답다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2022.03.23 09:20

[웰빙에세이] 빼기:道 - 21 /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

모든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왜 아름다울까요?

저 멀리 흘려보냈기 때문입니다. 저만치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저 멀리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저만치서 바라볼 수 없으면, 아직 추억이 아닙니다. 나는 그 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날의 감정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 날의 욕망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내려놓지 않은 집착이, 떨치지 않은 미련이, 씻어내지 않은 상처가, 삭이지 않은 분노가, 허물지 않은 원한이 지금도 나를 옥죄고 있습니다.

추억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그렇게 흘러간 옛 영화를 보는 것! 나를 사로잡던 열정도, 나를 휘두르던 욕망도 다 흘러갔습니다. 꿈 같은 만남도, 애타는 그리움도, 달콤한 사랑도 다 흘러갔습니다. 차디찬 미움도, 불같은 증오도, 쓰라린 이별도 다 흘러갔습니다. 마음을 후비던 아픔도, 나락 같던 슬픔도, 견딜 수 없던 고통도 다 흘러갔습니다. 정 둘 곳 없던 방황도, 응어리진 외로움도, 어깨를 짓누르던 근심도 다 흘러갔습니다. 경황없던 그 날도, 골치를 썩이던 그 사람도, 한치 앞이 안 보이던 그 문제도 다 흘러갔습니다. 강물처럼 흘러 흘러 걸러지고 맑아졌습니다. 모두 지난 일이 되어 아름답습니다. 아련하고 애틋합니다.

나는 그 날을 떠올리되 그 날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나는 그 날을 그리워하되 그 날의 감정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 날을 아쉬워하되 그 날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다 지나갔기에. 모두 마음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추억의 영상이기에. 다시 매달리고 달려들어도 아무 소용없기에.

지금 괴로운가요? 그렇다면 흘려보내지 않는 겁니다. 바라보지 않는 겁니다. 사로잡히고, 휩싸이고, 휘둘리는 겁니다. 그러니 생각이든, 감정이든, 욕망이든 얼른 시간의 물살에 놓아버리세요. 마음의 강물에 흘려보내세요. 저만치 물러나 가만히 바라보세요. 마치 흘러간 옛 영화를 보듯.

그럴수록 맑아질 겁니다. 추억만큼 아름다워질 겁니다. 추억보다 흥미진진해질 겁니다. 추억은 결말을 알고 보는 빛바랜 영화지만 지금 상영하는 영화는 누구도 결말을 모르는 최신 개봉작이기에.

나는 오늘도 삶이라는 생생한 영화를 봅니다. 마음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오만 가지 사연들의 춤사위를 봅니다. 저만치서 바라봅니다. 저 영화에서 나를 사로잡는 생각은 내가 아닙니다. 나를 휩싸는 감정은 내가 아닙니다. 나를 휘두르는 욕망은 내가 아닙니다. 그것들이 어떤 이야기를 엮어내든, 그 사연이 얼마나 파란만장하든, 모든 흘러가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추억처럼 아름답고 추억보다 흥미진진한 오늘의 영화를 즐기는 자입니다. 그것들에 사로잡히고, 휩싸이고, 휘둘리지 않는 자입니다. 나는 모든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맑은 의식이기에. 모든 흘러가는 것을 비추는 환한 빛이기에. 오직 그것만이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는 진정한 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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