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는 기술과 서비스 분야의 화두는 바로 규제개혁이다. 꽁꽁 묶인 규제를 풀어 산업을 활성화하겠다, 혹은 새로운 기술들의 테스트베드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지만 뒤돌아보면 또 제자리걸음인 듯하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일부 규제이슈는 해결돼 잊히는 대신 기술이 발전하고 서비스가 진화하면서 표면에 드러나는 규제이슈들과 고질적으로 풀리지 않은 규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빠지지 않는 핵심단어도 있다. 바로 네거티브 규제다. 네거티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한다는 의미다. 정부의 규제시스템 목표이자 기업들이 원하고 목말라하는 규제시스템이다. 하지만 네거티브 규제가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정부의 실행력과 역할의 한계다.
특히 네거티브 규제의 이해관계 충돌이 다수 발생하는 분야는 플랫폼 기반 서비스들이다. 대부분 플랫폼 이슈는 기존 기득권 사업자와 새로운 사업자의 갈등이 가장 큰 문제다. 기존 사업자들은 법에 명시된 사항을 기반으로 영업했는데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된 행위가 아니면 수행해도 되는 개념으로 충돌이 날 수밖에 없다. 모든 법과 정책에 금지행위가 하나하나 나열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부가 역할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이다. 대립하는 그룹간 중재에 슬기롭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부는 그러지 못한 듯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오랜 시간 풀리지 않는 의약품 비대면 자판기 출시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도 국회의원들이 발의해 제정한 법과 기존 기득권과의 타협은 쉽지가 않다. 결국 이런 중재와 해결이 어려운 이슈는 주로 규제샌드박스로 넘어간다. 규제샌드박스는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원활한 시장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혁신성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시장진출의 기회를 주거나 시간과 장소, 규모에 제한을 두고 실증테스트를 허용하는 이른바 혁신의 실험장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마음껏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제도다.
특정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관련법이 개정될 때까지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로 규제이슈와 부딪치는 스타트업이 특정 기술과 비즈니스모델이 상용화되지 못하고 추가투자를 받지 못하면 대부분 문을 닫기 전에 빠르게 다른 비즈니스모델로 전환하는 피벗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언제까지 법 개정만 바라고 규제샌드박스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규제샌드박스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1월 도입한 규제샌드박스는 시행 3년 만에 전체 632건을 승인하고 그 가운데 361건은 서비스를 개시했다. 승인기업들은 약 4조8000억원의 투자유치와 매출 1500억원 증가, 뿐만 아니라 6300여개 일자리도 만드는 성과를 창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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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으론 규제샌드박스를 뛰어넘기 위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규제샌드박스 특례를 받은 기업들의 비즈니스 성공 가능성을 보다 정밀하게 실험하고 더욱 커다란 성과를 이루기 위해선 국회와 협력이 필수다.
윤석열정부는 규제개혁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규제혁신을 통한 기업투자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전담조직도 필요하지만 전담조직의 위상과 역할 정의가 더욱 중요하다. 국무조정실이 규제총괄기관으로서 위상을 갖췄지만 4차산업혁명위원회, 기획재정부 한걸음 모델 등 유사한 모델이 생겨나 유사한 과제들을 다뤄왔다. 업계도 전문가도 혼란스럽다. 명확히 채널을 일원화하고 국회와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보다 빠르고 실효성 있는 규제개혁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설계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규제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담당 공무원은 1, 2년 만에 교체할 것이 아니라 담당기간을 연장하고 전문성을 충분히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