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앎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교육

[MT시평]앎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교육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2023.06.22 02:03
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언급과 함께 여야의 정쟁이 교육으로 확전된 형국이다. 교육을 위해서라면 세 번의 이사는 기본이고 부부간 생이별도 감수하겠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이상(異常) 교육열이다. 하지만 그 결과 한국 학생들의 능력은 어느 정도 계발됐는가. 그렇게 돈과 정성을 들여 교육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나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글을 잘 쓰는가. 말을 잘하는가. 생각을 잘 하는가. K팝계에 겨우 인재들이 보이는 것도 같은데 사실 그 인재들조차 대개는 정규교육 밖에서 길러졌다.

진정한 교육은 지식뿐만 아니라 덕성(덕육)과 신체(체육)를 키우는 것까지 포함하지만 우선 지식(앎) 교육만 이야기해보자. 인간은 선천적으로 공부(앎)를 좋아한다. 인간이 앎에 얼마나 즐거움을 느끼는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형이상학'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은 본성에 따라 앎의 욕구가 있다. 우리가 감각들(시각, 청각, 촉각 등)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그 증거다. 인간은 감각의 작동을 그 자체로 즐긴다. 특히 시각이 그렇다. 뭔가 하려 할 때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할 때도 우린 시각의 작동을 다른 감각의 작동보다 즐긴다. 시각이 세상의 다채로움을 가장 잘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곗돈 타서 비싼 돈 주고 해외여행하는 것도 사실은 이 '앎의 본능' 때문이기도 하다.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고 편하게 쉬기 위한 것이라면 국내여행, 예컨대 '호캉스'(호텔 바캉스)가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몇백만 원을 써서라도 노르웨이의 오로라가 보고 싶고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나이아가라의 폭포가 보고 싶은 법이다. 이러한 본능을 충족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론은 이상이다. 인간 몸속의 '자연'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러한 교육을 원할지 모르지만 실제 한국 '사회'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들이 관심을 갖는 교육은 이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동일노동을 해도 비정규직이 되면 정규직의 3분의1밖에 못 벌게 되는 한국의 엄중한 현실에 골몰한다. 앎의 즐거움 따위는 가난과 차별의 설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사를 세 번 이상 가고 부부가 생이별을 하며 얼마 되지 않는 소득과 재산을 아이들의 '이른바 교육'에 쏟아붓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문제풀이를 잘하게 해서 좋은 대학(즉 좋은 인맥)에 아이를 넣고 싶고 조금이라도 유명한 곳들로 아이들을 돌려 취직에 유리한 스펙이 관록(官祿)처럼 이력에 붙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그래봤자 정규직일 뿐"이라고 누가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비정규직의 가난과 차별만큼은 아이들에게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우리네 부모들의 꿈 아닌 꿈이다. 그래서 한국 부모들은 오늘도 '이른바 교육'에 소득과 가정의 행복을 바치고, 아이들은 더 큰 불행을 피하려고 문제풀이로 불행한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조물주가 선물한 배움의 즐거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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