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한국산업은행 국제금융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30년 넘게 한국과 미국의 경제관계를 지켜봤다. 그동안 한국이 미국과 협상에서 가장 힘을 잃은 시점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시기고, 두 번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인 지금이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한국이 외부압력에 취약한 구조였다는 점이고 그 원인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불리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1996년 봄 산업은행에서 어학연수생으로 선발돼 UC버클리 랭귀지스쿨에서 6개월간 연수를 했다. 그러던 중 근처에 있는 코트라의 샌프란시스코 무역관을 방문하게 됐고 그곳에서 UC버클리 경제학과 출신의 현지 직원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1991년 말 소련이 해체됐고 중국은 아직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미국과 영국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체제를 구축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총리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코트라 직원은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지금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더이상 중소국을 배려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 진영 강대국들의 약소국에 대한 수탈"을 경고했다.
그의 말은 1년 후 현실이 됐다. 1997년 가을,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했다. 11월21일 외환보유액이 바닥나자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IMF는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다음과 같은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첫 번째는 금융시장 개혁이었다. 부실 금융기관 정리, 자본건전성 강화, 외국 금융기관의 시장진입 허용 등이 포함됐다. 두 번째는 기업 구조조정으로 한보철강, 기아자동차 등 부실 대기업의 도산처리와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억제를 요구했다. 세 번째는 자본시장 개방이었다. 외국인의 주식보유 한도가 기존 26%에서 50%로 확대됐고 1998년 5월엔 사실상 전면 개방됐다. 네 번째는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해고 규제완화와 비정규직 확대가 추진됐고 이는 대량해고와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다섯 번째는 재정 및 통화정책의 긴축이었다. IMF가 고금리 정책과 재정지출 축소를 요구해 기준금리가 20%를 넘었다. 이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당시 미국의 제로금리 정책과 정반대였다. 여섯 번째는 무역 자유화였다. 수입규제를 완화하고 무역장벽을 축소하라는 요구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했다.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강화되고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량기업의 지분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고 배당을 통해 지속적으로 해외 투자자에게 이익이 흘러가는 구조가 형성됐다.
2025년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와 생산시설 이전을 요구하며 한국을 압박한다. 미국은 자국 산업보호와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한국에 불리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은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서 처음 등장했다. 레이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가장 큰 선거인단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며 그의 임기 이후 미국 정치 전체가 보수화됐다. 트럼프는 그 흐름을 다시금 강화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1997년의 자본시장 개방과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줬다. 지금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생산시설을 이전하면 인구감소와 산업 공동화가 심화할 수 있다. 단기적 대응보다 장기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1997년의 기억을 되새기며 28년 전 협상의 결과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오늘의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