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혐오표현을 걸러내는 지성

[투데이 窓]혐오표현을 걸러내는 지성

권혁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도시정비팀·블록체인팀)
2025.08.29 02:05
권 혁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비평산 도시정비팀, 블록체인팀)
권 혁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비평산 도시정비팀, 블록체인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첫 번째 국정과제로 통합을 꺼냈고 그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정치의 장에서 본인이 펼치고자 하는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공격하는 혐오의 경쟁을 하는데 가장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환호가 뒤따랐다. 지금 통합의 시도를 늦춘다면 혐오의 경쟁을 넘어 광기가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우리 사회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치의 영역뿐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도 특정한 집단에 대해 혐오를 전제한 표현이 난무한다. 예를 들면 지역비하를 담은 '어디 지역 사람들', 젠더갈등을 내포한 남과 여의 표현, 세대갈등을 내포한 '요즘 애들' '구세대'와 같은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표현조차 혐오나 경멸을 전제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와 같은 표현이 실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과장과 심지어 허구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다. 일반적 표현을 한다고 하면서 과장과 허구의 표현을 담고 그에 대해 긁힌 상대는 반격하고 이러한 악순환은 토론이 아니라 논쟁과 싸움으로 귀결되기 쉽다. 필자는 혐오를 일으키는 이유와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하던 중 고등학교 3학년 딸이 그 주제로 철학자들의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을 봤고 아래 내용은 그녀의 탐구를 따라간 것임을 미리 밝힌다.

버트런드 러셀(1872~1970년, 영국의 철학자)은 철학 에세이 '지시함에 관하여'(On denoting, 1905년)에서 '기술이론'(theory of descriptions)을 발표했다. '기술이론'은 다음과 같은 명제에서 출발한다. '현재의 프랑스 국왕은 대머리다.' 이 문장은 표면적으론 참이지만 거짓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는 군주제를 폐지한 상태였기에 '현재 프랑스 국왕'이라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존재하는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것(고유명사, 지시어)이 아니라 조건을 만족하는 논리적 대상이 되는 말을 '기술어'라고 정의했다.

위 문장으로 돌아오면 '프랑스에 왕이 존재한다'는 조건이 성취돼야 문장이 성립할 수 있으므로 프랑스 국왕은 지시어가 아니라 기술어가 된다. 그와 같은 기술어는 집단을 통칭하는데 사용되는 경우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은'이라고 하면 폭력성과 나태함, '여성은'이라고 하면 허영심 또는 질투심이 떠오르기 쉽고, '노동자들'이라는 말엔 파업이나 공격적 성향이, '재벌들'이라는 말엔 편법승계, 정경유착 등이 내포돼 있기 쉽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술어들은 개별적인 사람의 특징을 모두 반영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실은 허상이라고 할 수 있고 실제보다 더욱 부정적 이미지를 증폭한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 1937년)에서 저자는 중산층 출신으로 노동자 계급에 대해 '더럽고 거칠다'는 오래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실제 탄광촌에 들어가 노동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나중에는 노동자 친구와 길동무가 됐다는 경험을 소개했다. 집단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과 그 집단에 속한 특정한 개인의 경험에 따른 감정엔 많은 차이가 있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집단에 대한 섣부른 일반화와 그에 혐오표현을 포함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 집단에 속한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다.

우리가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고 통합을 위해 한 걸음 전진하기 위해서는 집단에 대한 기술어를 통한 내재적 혐오표현을 걸러낼 수 있는 지성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무지성을 넘어 반지성의 목소리가 넘쳤던 시간을 슬기롭게 지났다. 통합을 위해서도 우리의 지성을 더욱 새롭게 갖춰야 한다. 특히 검찰이나 법원과 같은 법집행기관에서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악마화해 수사나 재판을 한 사례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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