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에 노인은 존재하는가'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환자에게 검사결과를 전하면서 고령으로 인해서라고 설명하다 "내가 왜 노인이냐"고 강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아침 6시, 출근하기 위해 성내천을 따라 걷다 보면 러닝을 하는 사람 중엔 70대도 많이 보인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70세가 넘으면 암수술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70대 중반의 나이에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일까지 하는 사람도 많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상태를 잘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노인이라고 자각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노인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실감각이나 자각능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도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라 은퇴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은 젊다며 노동과 경쟁의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 같다. 흔히 '늙어도 늙지 못하는 사회'로 불리는 이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욕망이나 집착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고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우리는 심각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동력 측면에서 보면 나이가 들어도 지속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많은 중장년층이 은퇴 이후를 준비하지 못했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
심각한 질환이 없다면 기대수명은 90대 중반이지만 안정적 직장은 60세 전후로 떠나야 하는 구조 속에서 긴 시간이 남는다. 노후를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이 허술하니 많은 이가 은퇴 후에도 다시 노동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고 생존을 위한 강제적 연장이 훨씬 많다. 은퇴는 곧 쓸모없음으로 여겼고 퇴장은 패배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나는 젊다" "나는 현역이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며 노동시장에 남고 안식하지 못하는 불행한 자신을 능력자라고 착각한다.
앞세대가 은퇴하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제한된 일자리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대기해야 하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세상은 재생산 구조여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함에도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지연되면서 사회적 순환이 막힌다. 이로 인해 청년층은 취업난 속에서 좌절을 겪고 노년층은 끝없는 경쟁에 내몰려 소진된다.
문화적 획일성이 강한 사회적 특성을 고려할 때 나이가 들면서 세대와 나이에 걸맞은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까지 젊은 세대의 문화적 특성을 좇아가지 못하면서 심한 소외감을 느끼는 사회적 현상도 노인을 노인답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제 노인은 경험이 많아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혜로운 사람에서 젊은 사람들의 문화를 따라가야 하는 지진아로 바뀌었고 사회적 지위도 180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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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걸맞은 옷, 행동, 즐길거리 등 그런 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획일화한 면의 장점으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긍정적인 면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세대에 따른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고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변화하는 몸에 조화로운 생각과 삶을 준비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노인들을 위해 개천이나 등산로 입구에 운동시설을 만드는 것에서 개인이 자연스럽게 늙어갈 수 있는 사회문화적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늙어도 늙지 못하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인식 속에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다. 늙으면 늙을 수 있고 은퇴하면 은퇴할 수 있는 사회, 늙음이 불안과 결핍이 아니라 존엄과 쉼으로 이어지는 사회로의 진화는 고령화 시대에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