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이 가을일까, 겨울일까. '입시한파'라는 단어가 무색하리만큼 올해 수능은 따뜻했다. 요사이 며칠 많이 쌀쌀해졌어도 아직 남아 있는 붉고 노란 잎사귀는 여전히 가을이라 말하는 듯하다. 음력으로 환산하는 옛 월령에 따르면 1~3월은 봄, 4~6월은 여름, 7~9월은 가을, 10~12월은 겨울이다. 그러나 실제 날씨를 보면 봄과 가을, 여름과 겨울이 각각 석 달, 1년을 사등분하는 것이 온당할지 모르겠다. 그저 더우면 여름, 추우면 겨울, 그 사이의 쾌적한 시간, 즉 보일러도 에어컨도 없이 밤낮을 지낼 수 있는 때를 봄과 가을이라 한다면 그 기간은 각기 한 달 남짓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문인으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는 구양수는 52세에 '추성부'(秋聲賦)를 남겼다. 가을밤 독서를 하다 정체 모를 소리를 듣고 생각에 잠겨 쓴 글로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밤에 책을 읽던 중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니 바람소리에서 물소리로, 다시 빗소리, 쇳소리, 말발굽소리로 바뀌었다. 이상한 생각에 동자를 시켜 밖에 나가 살펴보게 했다. 동자는 달빛과 별빛이 하얗게 비추고 있을 뿐이라며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들려오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구양수는 가을소리라며 가을을 읊는다. 가을의 빛깔은 슬프고 모습은 청명하며 기운은 오싹하고 정취는 쓸쓸하다. 가을은 세차서 무성한 풀도, 풍성한 나무도 색이 변하고 잎을 떨군다. 그리고 초목도 가을을 만나면 이리되는데 사람은 어떻게 되겠냐 묻고 이렇게 답한다.
"백 가지 근심이 마음을 움직이고 만 가지 일이 몸을 지치게 하니 중심이 움직이면 정신을 흐트러뜨리기 마련으로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생각하고 머리로 할 수 없는 바를 걱정하면 어찌 되겠는가. 윤기 나던 붉은 얼굴이 마른나무처럼 변하고 까맣던 머리가 성성한 백발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돌이나 쇠가 아니고서야 어찌 초목과 더불어 영화를 다투겠는가!"
쇠잔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일 뿐 어찌 가을소리를 원망하겠느냐며 구양수가 말을 마치자 고개를 숙인 채 잠든 동자는 대답이 없고 그저 "찌르르 찌르르" 벌레소리만 사방에 가득했다고 한다.
'추성부'는 대표적 한문 교재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실렸다. 학생 시절 강독할 때는 그저 텍스트였던 것이 한참을 지난 뒤에야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구양수의 절창에도 동자가 잠들었던 것 또한 당연지사 아니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을이 되면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다. 스치듯 지나가는 계절이라 해도 봄과는 다른 느낌이다. 서리 맞은 단풍이 꽃보다 붉다 해도 꽃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탄다'는 동사를 붙여도 이 조합에서 가을에 필적할 계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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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그의 자전적 논픽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에서 한두 푼 있을 때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지만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나면 오히려 평온해진다고 했다. 만물이 모두 사그라든 겨울보다 가을에 곧잘 상념에 잠기는 이유는 모든 것이 잠드는 겨울로 향한 노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구양수의 한탄 이면에는 시간의 흐름을 감내하기 가장 힘든, 그리고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을지 모른다.
'추성부'는 조선의 문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혔다. 그리고 그림으로도 남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김홍도가 1805년 61세에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다. 이 그림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양수와 김홍도, 시공간상 절대 만날 수 없었던 두 거장의 감정과 필치가 어우러진 명작이다. '추성부도'는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이 기획한 특별전 '한국의 보물 :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에 출품돼 워싱턴DC에서 K컬처의 깊이를 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