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반중감정의 시대, 차이나 리터러시가 시급하다

[MT시평]반중감정의 시대, 차이나 리터러시가 시급하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2026.01.30 02:05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여러 조사에서 나타나듯 한국 사회의 반중감정은 매우 높다. 특히 청년세대에서 그 강도가 두드러진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정서를 이유로 중국과 교류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전략적으로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최근에는 계엄사태를 거치며 중국 문제가 국내 정치와 결합하고 혐중(嫌中)에 가까운 태도로까지 확산하는 양상도 보인다. 그러나 과연 한국 사회가 중국을 이런 방식으로 인식하는 게 바람직한지 냉정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G2로 불릴 만큼 거대한 국가다. '대국'(大國)이니 '사대'(事大)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트럼프, 푸틴, 시진핑처럼 강대국 지도자들이 자국의 내정과 국익을 전면에 내세우며 '낯선' 방식으로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시대이기에 그 작동방식을 더 정밀하게 해독해야 한다. 이매뉴엘 월러스틴이 말한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언'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한국은 그 격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전환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차이나 리터러시'(China Literacy)다. '차이나 리터러시'는 급변하는 국제환경에서 중국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는 중국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환경이 펼쳐질 때 '미디어 리터러시'나 '디지털 리터러시'가 요구되듯 중국을 새롭게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팬데믹 이후 중국은 크게 변했다. 이른바 '공대에 미친 중국'은 첨단기술과 AI·전기차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고 중장기 투자를 통해 전문인재를 대규모로 육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중국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때로는 중국인보다 더 중국을 잘 알아야 한다. 역사학자 오드 베스타가 지적했듯 우리 선조들은 중국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독자성을 지켜왔다. 물론 이는 중국을 무조건 숭상하자는 뜻이 아니다. 혐중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태도는 숭중(崇中)이다. 한국과 중국은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고 한국은 우리만의 자부심과 강점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복합적이면서도 성숙한 태도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이 도움이 된다면 협력하고 참고할 만하면 배우면 된다. 동시에 중국 체제가 갖는 구조적 한계와 문제도 정확히 꿰뚫어봐야 한다. 중국만을 단편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제질서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중국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야가 필요하다.

결국 반중감정 그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차이나 리터러시'의 부족과 무관심이다. 개인의 감정은 통제할 수 없다. 집단적 혐오와 폭력으로 번지지만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몰라도 된다"는 태도는 한국 사회의 혁신에도, 생존전략에도 전혀 이롭지 않다. 인문학, 지역학, 과학기술과 디지털 중국학이 융복합적으로 교육·연구되는 환경을 통해 '차이나 리터러시'를 축적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중국을 막연한 두려움이나 환상의 대상 대신 정교한 이해의 대상으로 삼을 때 비로소 당당한 경쟁과 건강한 협력의 길이 함께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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