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K컬처란 도대체 무엇인가

[투데이 窓]K컬처란 도대체 무엇인가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2026.02.04 02:05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올해 들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기염을 토하고 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과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OST '골든'(Golden)은 K팝 최초로 그래미상까지 수상해 새 역사를 썼다. 한국문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과 노래가 세계 무대에서 큰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주제가를 작곡하고 직접 부른 한국계 미국인 이재는 수상소감에서 한국에서 연습생 시절 경험과 좌절을 떠올리며 "K팝 아이돌을 꿈꿨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노래와 음악으로 버텨 꿈은 현실이 됐다"고 말해 큰 감동을 줬다.

케데헌의 쾌거를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캐나다인 매기 강과 미국 감독 크리스 아펠한스가 공동으로 연출하고 주제가는 미국인이 만들고 불렀으며 미국 자본으로 제작돼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유통된 이 작품의 흥행에 왜 한국인들이 이토록 환호하는가. 그렇다면 케데헌은 K컬처인가.

최근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4'를 보며 비슷한 질문을 떠올렸다. 전 시즌을 통틀어 최고의 점수를 기록한 필리핀 가수 그윈 도라도는 '세월이 가면' '환상' '그때 헤어지면 돼' 등 한국 발라드를 완벽한 발음과 가창력, 감성으로 소화해 심사위원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감성으로 넘사벽의 무대를 선보인 필리핀 가수를 보노라면 그녀의 국적을 잊게 된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수가 한국 무대에서 부른 한국 발라드는 K팝인가 아닌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된다. K팝이나 K컬처를 규정하는 기준은 도대체 뭔가.

케데헌이 전 세계 팬을 사로잡은 이유는 제작사 국적과 무관하다. K팝 아이돌이 노래로 악령을 물리친다는 설정, 한국 무속신앙의 독특한 세계관, 집단적 연대와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펼치는 서사 등이 어우러져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보편적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누적 시청 2억6600만회로 넷플릭스 역사상 최다 시청 콘텐츠에 등극했고 '골든'은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세계가 주목한 것은 자본의 국적이 아니라 콘텐츠의 한국적 감성이다.

가수 도라도의 사례도 K팝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K팝은 더이상 한국인 가수만의 것이 아니다. '누가 부르느냐'가 아니라 '어떤 감성의 어떤 노래인가'가 중요하다. 한국 대중가요가 오랫동안 축적한 감성의 결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가수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글로벌 시대에는 외국인이 부른 한국 노래가 한국인에게 더 깊이 와닿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변화는 영화나 아이돌산업 전반으로 확장된다. 봉준호 감독의 SF영화 '미키 17'은 할리우드 자본과 외국 배우의 연기로 만들어졌지만 한국 감성이 녹아 있는 K콘텐츠다. 전원 외국인 멤버인 걸그룹 블랙스완이 한국어로 노래하고 한국의 트레이닝 시스템과 음악문법 안에서 활동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태국 국적의 아이돌 리사는 어릴 적부터 K팝을 동경하며 자랐고 결국 최고의 K팝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로 인기를 누린다. 한국어에 능숙한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영어 인터뷰를 할 때도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답한다"고 답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억명 넘는 리사는 K팝과 한국문화의 글로벌 홍보대사다. 매기 강, 이재, 도라도, 리사를 비롯해 외국 국적의 수많은 아티스트는 모두 K컬처의 소중한 자산이다.

오늘날 K컬처는 국경과 국적을 넘어 한국적 감성과 서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글로벌 문화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국경과 국적의 틀에 가둘 게 아니라 확장하고 공유하고 외연을 넓혀야 한다. K컬처의 미래는 열린 정체성에 있다. 한국적 감성과 서사를 중심으로 누가 만들든, 누가 부르든, 어디서 만들어지든 함께 공유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열린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불렀고, 누가 만들었나'가 아니라 '어떤 한국적인 것을 담고 있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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