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30일 미국 상품거래소(COMEX)에서 은값이 폭락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은값은 고점인 트로이온스당 121달러에서 78달러로 35% 넘게 폭락했다. 가격이 하락하는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종일 변변한 반등 시도조차 없이 수직낙하했다.
미디어는 폭락의 이유를 은값의 가파른 상승에서 찾았다. 지난해 말 온스당 72달러로 마감한 은값이 올해 들어서만 68% 급등하자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 차기 의장 지명이라는 매크로 쇼크가 가세해 하락폭이 가팔라졌다고 봤다.
자동주문 시스템을 갖춘 퀀트 헤지펀드의 개입도 거론된다. 지지선이 붕괴할 때마다 선물 매도주문을 내 끊임없이 가격을 떨어뜨리는 캐스케이드 효과를 일으켰다. 가격하락은 손절매를 불렀다. 손절매에 알고리즘 매도가 가세해 1980년 이래 최대 은시세 폭락을 연출했다.
은 시장이 가격급등에 이어 적정선을 찾아 조정을 보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폭락을 설명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몇몇 전문가는 이번 은시세 폭락은 기관과 거래소가 공모해 정교하게 설계한 시세조종의 결과라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미 상품거래소는 은값이 주요 저항선을 돌파할 때마다 선물 거래 증거금을 인상했다. 지난해 12월12일 계약당 2만달러였던 증거금을 10% 인상했다. 또한 연말까지 증거금을 2차례 더 올렸다. 은시세가 온스당 84달러에 이르자 증거금을 3만2500달러로 인상했다.
증거금 인상의 충격으로 은값은 온스당 70달러 아래로 폭락했다. 투자자가 매수 포지션을 유지하려면 인상된 증거금에 맞춰 현금을 더 입금해야 했다. 수익이 나고 있음에도 마진콜을 받았고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포지션이 강제로 청산됐다. 이는 큰 매도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런데도 은값 폭등세가 재개되자 지난 1월13일 거래소는 증거금을 계약당 일정금액에서 가액의 9%로 올렸다. 가격이 상승하면 증거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로 변경했다. 설상가상으로 거래소는 가격이 폭락한 1월30일 증거금을 1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증거금 인상으로 하락세가 가속화했다.
더불어 기관을 대신해 실물 은을 보관하는 거대 불리온(bullion) 은행들도 선물 매도 포지션을 취해 가격하락을 조장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최대 불리온 은행인 JP모간은 폭락 당일 가격이 78달러에서 정확히 바닥을 쳤을 때 633계약의 선물 매도계약을 커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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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316만온스에 해당하는 규모로 당시 시세를 적용하면 거의 2억4800만달러에 달한다. 거래소는 급등하는 가격을 안정시키고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항변하고 JP모간은 단순히 바닥에서 환매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격폭락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는 거대 기관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실물수요의 폭발적 증대가 초래한 은값급등을 언제까지 증거금 인상과 기관의 매도로 막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