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식을 위주로 하는 절집에선 재료의 한계 때문에 음식의 종류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같은 재료여도 조리법은 다양하게 발전했다. 지지고 볶고 삶고 튀기고 절이는 등 다양한 식감과 맛으로 변신한다.
그 다양함 속에서도 송광사만의 특별한 음식이 있는데 그것은 떡국이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떡국이 나오는데 1주일에 두 번 떡국을 먹는다고 하면 그렇게 많은 횟수가 아닐 것 같아도 한 달이면 여덟 번, 1년이면 백 번 가까이 떡국을 먹는다. 떡국 한 그릇에 한 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1년에 대략 100살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1주일에 떡국 두 번을 먹게 된 것은 현재 한국 불교문화사업단장을 맡은 일화스님이 송광사 원주소임을 볼 때 대중이 떡국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1주일에 두 번을 떡국으로 정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체다슬라이스치즈도 곁들여 먹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절에선 한번 정하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다. 그것이 20년이 넘었으니 송광사 대중은 20년 동안 2000그릇의 떡국을 먹은 것이다. 일부 스님은 우스갯소리로 송광사 스님은 승납을 먹은 떡국의 그릇 수로 정한다는 말도 한다. 필자도 송광사의 떡국 레시피에 관여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행자생활을 할 때 식단을 개선하라는 당시 원주스님의 지시로 떡국에 유부볶음을 추가한 것이다. 절집의 떡국 레시피는 대동소이한데 무와 다시마를 우린 다시물에 떡국사리와 간장에 볶은 표고버섯과 야채 등을 넣고 끓여서 담아낸다. 거기에 유부와 치즈가 들어가면 세속에서 파는 떡국과는 또 다른 담백하면서도 향기로운 떡국으로 변신하는데 물론 떡살의 식감이 매우 중요하다. 자칫 너무 오래 끓여 떡살이 물러지면 대중스님들의 이빨에 끼어 곤란하고 너무 적게 끓여서 딱딱하면 노스님들께서 이빨 부러질 뻔 했다며 농반진반으로 공양주를 타박한다.
송광사 떡국이 또 한 번 변신한 것은 필자가 원주소임을 볼 때였다. 조계산에선 여름에 능이버섯이 많이 난다. 그때엔 사하촌 주민들이 산에서 많이들 따서 팔아달라고 온다. 한 산 아래에서 의지하고 살아가는 주민이라 비교적 싼 값으로 가져다준다. 그것을 얇게 채를 썰어서 건조하면 1년 정도 넉넉히 쓴다. 그 능이를 넣은 떡국은 산중에서 살아가는 대중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준다. 물론 표고버섯도 후원에서 멀지 않은 기슭에서 처사님들과 행자님들이 재배한 것이다.
총림은 크게 참선수행하는 선방과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 그리고 율학을 공부하는 율원이 있다. 정진과 운력 예불 등을 반복하다 보면 때론 지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기에 안거(安居) 중엔 대중의 식단이 매우 중요하다. 작은 식단의 변화가 정진하는데 새로운 에너지가 되기도 하기에 공양간에선 항상 신경을 쓴다.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이 수행의 목적은 아니지만 정진하다 보면 미각이나 청각, 후각이 면도날처럼 예민해지는 스님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감당하는 것이 공양주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자 때 공양주 소임을 보면 복을 많이 쌓는다는 말이 있다. 때론 상반되는 의견들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그 마음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곧 복이다.
스님들은 이것저것 많이 먹어서 예민해지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담백하게 먹는 것으로 민감해진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그렇다. 갓 출가해서 행자생활을 할 때 일이다. 어느날 등산객이 와서 공양간에서 자신들이 싸온 도시락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 도시락에 마늘이 섞여 있었는지 그 마늘향이 50m 밖에 있던 나의 코에도 와서 닿은 것이다. 안 먹다 보면 귀신같이 그 냄새를 알아챈다. 산중에선 먹는 것도 수행이다. 비우고 절제함으로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다. 이러나저러나 한 끼일 뿐이지만 송광사의 떡국은 수행자들의 정진을 돕는 보약이다. 다가오는 설날에는 떡국을 한번 해먹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