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이 단행한 파격적인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알파벳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채권 발행을 통해 총 320억 달러(약 47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조달한 가운데, 특히 영국 시장에서 발행한 100년 만기 '센추리 본드(Century Bond)'는 기업 금융 역사에 남을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미국 달러화 채권 발행으로 200억 달러를 확보한 데 이어 영국 파운드화, 스위스 프랑화 채권으로 110억~120억 달러를 추가로 확보했다. 달러뿐 아니라 파운드, 프랑화로도 조달한 것은 환율 리스크를 분산하고 유럽 내 AI 인프라 자금을 현지 통화로 일치하려는 치밀한 통화 다변화 전략이 엿보인다. 알파벳의 이번 영국·스위스 시장 채권 발행은 모두 두 시장에서 단일기업 기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하여 블룸버그 통신은 "알파벳의 이번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 조달에 단지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참고로 현재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가장 긴 만기의 채권은 '50년 만기 국고채(국고 50년물)'이다. 2016년 처음 도입되었으며, 정부의 채무 관리 역량을 상징하는 지표다. 주로 장기적인 자산-부채 매칭이 필요한 보험사나 연기금이 주요 구매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보통 3~5년물을 발행하며, 신용등급이 매우 높은(AAA~AA급) 일부 우량주들이 가끔 10년~20년물 발행에 성공한다.
천문학적인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빅테크들의 '빚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빅테크 기업들과 공급업체들이 올해 AI 인프라에 약 7000억 달러(1000조 원)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거대 데이터센터 확장 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 시장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도 미국 4대 빅테크(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의 금년 총 자본 지출이 6500억 달러(약 950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서다. 모건스탠리는 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올해 4000억 달러(약 590조 원) 규모의 빚을 낼 걸로 예상했다. 지난해 1650억 달러(약 240조 원)에서 2.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5년에서 30년 사이의 만기 채권을 발행한다. 하물며 기술 변화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운 테크 업계에서 100년 뒤의 상환을 약속하는 채권을 발행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실제로 테크 기업의 센추리 본드 발행은 IBM(1996년)과 모토로라(1997년) 이후 약 30년 만에 처음이다. 앞으로 100년 후인 2126년에 원금을 상환하게 될 이 '백년의 약속' 이면에는 알파벳의 치밀한 재무 전략과 AI 시대를 향한 거대한 야망이 숨어 있다.
알파벳이 굳이 빚을 내어 자금을 조달한 표면적인 이유는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이고 합리적인 고정금리 확보에 있다. 현재의 금리 수준이 합리적이라는 판단 하에, 100년이라는 초장기 자금을 낮은 고정 금리로 확보함으로써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금리 변동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는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을 낮춰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재무 최적화'의 일환이다.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알파벳이 추진하는 '문샷(Moonshot)' 프로젝트와 AI 인프라 투자의 특성 때문이다. 자율주행(Waymo)이나 생명공학(Verily)과 같은 미래 기술은 성과가 나오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센추리 본드는 이러한 장기 투자 사이클과 자금의 만기를 일치시키는 데 최적의 수단이다. 투자 기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는 한 번 지으면 수십 년간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이다. 100년물 채권은 이 자산이 낼 수익으로 천천히 빚을 갚아가는 '자산-부채 관리'의 정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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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알파벳은 사상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로 1850억 달러(약 270조 원)에 달하는 자본지출(CAPEX)을 예고했다. 이는 작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로, 거대 데이터센터 확장 등 AI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쟁 자금' 성격이 짙다.
반신반의했던 시장의 반응은 뜨거움을 넘어 경이적이었다. 영국에서 발행된 100년물 채권에는 발행 규모(10억 파운드)의 10배에 육박하는 주문이 몰렸다. 발행 조건은 만기일 2126년, 표면금리 6.125%다. 이러한 '이례적인 흥행'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첫째, 압도적인 재무 건전성의 증명이다. 100년 만기 채권은 22세기에도 해당 기업이 생존하여 이자를 갚을 수 있다는 시장의 강력한 신뢰가 없으면 성립될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발행을 통해 알파벳은 국가나 명문 대학(옥스퍼드 등) 수준의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FT는 "센추리 본드는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시기에 오스트리아와 아르헨티나 같은 정부를 포함해 다수 발행된 적이 있지만, 가장 극단적인 장기 차입 형태로 매우 드문 사례다"고 짚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각국 정부를 제외할 경우 파운드화로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한 곳은 옥스퍼드대, 프랑스전력공사(EDF), 자선단체 웰컴트러스트 등 3곳뿐이다.
둘째, 경쟁사 대비 우월한 자금 조달 경쟁력이다. 알파벳이 채권 발행 시 지급하는 가산금리(스프레드)는 미 국채 대비 0.95%포인트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오라클(2.25%p)이나 메타(1%p) 등 주요 경쟁사보다 낮은 수준으로, 결과적으로 더 저렴한 비용으로 AI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권 일각에서 몇 가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과거 1997년 모토로라의 센추리 본드 발행 직후 기술주 고점이 형성되었던 사례를 들어, 이번 발행이 '시장 과열'과 AI 버블의 징후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것이다. 또한 빅테크들의 막대한 채권 발행이 시중 금리를 끌어올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다른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압박하는 구축 효과(Crowding-out)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빅테크가 시장의 자금을 싹쓸이하면서 중소기업들이 빌릴 돈이 마르게 될 거란 우려다.
100년 전 우량 기업이었던 J.C. 페니가 센추리 본드 발행 23년 만에 파산한 사례처럼, 기술 변화가 극심한 시대에 100년 뒤의 생존을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알파벳의 센추리 본드 발행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미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던진 전략적 승부수로 보인다. 현금 보유액이 1300억 달러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초장기 부채를 선택한 것은 자본 구조를 최적화하고 AI 투자 경쟁에서 '압도적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기꺼이 100년 뒤의 미래를 알파벳에 맡기기로 선택했다. 이번 사례는 향후 테크 기업들이 현금 흐름에만 의존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본 시장의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알파벳이 쏘아 올린 100년의 약속이 2126년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전 세계 금융시장은 그 거대한 실험의 시작을 지켜보고 있다.
이제 AI는 단기전이 아닌 세기(Century)의 전쟁이다. AI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 기업들도 당장의 AI 서비스 출시보다 10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원천 기술과 인프라에 대한 '초장기적 호흡'을 가져야 한다.
국민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백년 기업', 세계가 인정하는 '백년 기술'이 나올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AI 패권 경쟁의 단순한 관객이 아닌 주인공으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