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동 전쟁과 인도주의 위기 확산

[기고] 중동 전쟁과 인도주의 위기 확산

김새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
2026.03.22 06:00
사진제공=유엔난민기구
사진제공=유엔난민기구

중동에서 이어지는 분쟁은 전장을 넘어 빠르게 인도주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란과 레바논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발생하면서 난민과 강제실향 문제가 급속히 악화되는 양상이다.

이란에서는 분쟁 격화로 대규모 국내실향이 발생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국경을 넘지 않고 자국 내 다른 지역으로 피난하는 것을 '국내실향', 이렇게 피난한 사람들을 '국내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ople, IDP)'으로 칭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약 60만~100만 가구가 안전을 찾아 일시적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인구조사 기준 평균 가구원 수 3.2명을 적용하면 이란 내 국내실향민은 약 190만~320만 명 규모다. 이들은 테헤란 등 주요 도시를 떠나 북부와 농촌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전황이 장기화될 경우 이동 규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레바논의 상황도 심각하다. 인구 약 580만 명인 레바논에서는 3월 16일 기준 100만 명 이상이 정부의 온라인 실향 등록 시스템에 등록했다. 이 가운데 13만 2000명 이상이 640여 개 집단 대피소에 머물고 있으며, 일부는 여전히 안정적인 거처를 찾지 못한 채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대피소는 이미 수용 한계에 달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미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란과 레바논,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는 약 2430만 명의 강제실향민과 귀환민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번 분쟁 이전부터 심각한 보호 위험과 인도주의적 지원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구호하기 위한 구호기관의 재원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유엔난민기구의 관련 예산 확보율은 이란 8%, 레바논 14%, 아프가니스탄 17%에 그친다. 지난 1년 간 대외원조가 크게 축소되면서 구호 기관 대부분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당면한 분쟁 상황에서 '위기 속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진제공=유엔난민기구
사진제공=유엔난민기구

구호 활동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영공 폐쇄와 국경 통제 강화, 호르무즈 해협 주변 접근 제한 등으로 인해 구호물자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분쟁 지역에서 긴급한 구호활동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인도주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란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재정 지원과 임시 거처, 의료 지원을 긴급히 필요로 하고 있으며 공습 공포와 생계 상실, 의료 서비스 접근 제한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레바논에서도 긴급 구호가 진행 중이지만 수요는 이미 가용 자원을 크게 넘어섰다. 전국 388개 이상의 대피소에 구호 물품이 전달되고 6만 8000명 이상의 강제실향민이 지원을 받았지만, 대규모 인구 이동이 계속되면서 지원 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란과 레바논 난민들은 이미 취약한 경제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란의 난민들은 제재와 경제 침체 속에서 높은 물가와 제한된 고용 기회로 생계 기반이 약화된 상태다. 특히 약 165만 명 규모의 난민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다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레바논 역시 분쟁 이전부터 인구의 약 30%인 170만 명이 심각한 식량 위기에 처해 있었고, 난민 가정의 90%가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실제로 유엔난민기구 전화상담 창구에는"폭격으로 집이 완전히 무너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약이 너무 비싸서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다", "나도, 아들도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어디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연들이 접수되고 있다.

결국 이번 분쟁은 군사 충돌을 넘어 지역 전체의 인도주의 체계를 위협하는 복합 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난민과 강제실향민 규모는 급증하고, 식량·의료·주거 등 기본적인 생존 문제까지 동시에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중동 지역이 이미 처해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를 맞닥뜨리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재정 지원과 적극적인 협력, 그리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제공=유엔난민기구
사진제공=유엔난민기구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