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 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비디아가 오픈AI의 오하이오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와 관련해 최대 2500억 달러(약 368조 원) 규모의 '신용보강(Credit Enhancement)' 제공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비상장사이자 아직 적자를 내고 있는 오픈AI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자, 주요 공급업체인 엔비디아가 직접 보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인공지능(AI) 혁명의 중심에 서 있는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전 세계 빅테크와 스타트업의 필수 공급자로 자리 잡았고,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는 매 분기 글로벌 증시의 향방을 결정짓는 최우선 지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월가와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에는 미묘하지만 짙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엔비디아의 실적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 '순환 금융(Circular Financing)' 혹은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 판매자 금융)'에 대한 경고음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엔비디아가 대형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나 주요 고객사 및 '네오클라우드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 채무 보증, 혹은 지분 참여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이어질 때마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겉으로는 정상적인 거래로 보이지만, 제조사가 제공한 돈으로 구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 거래 구조를 두고 '빅 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 유명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 등은 '매출 부풀리기(Revenue Round-Tripping)'나 '우발채무 은닉'을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현재 AI 생태계의 벤더 파이낸싱 중심에는 기존 빅테크와 달리 GPU 인프라 대여에 특화된 코어위브(CoreWeave)나 람다 랩스(Lambda Labs) 같은 네오클라우드 스타트업이 자리 잡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들 기업에 지분 투자나 신용 보증을 제공했고, 스타트업들은 이 자금으로 엔비디아의 GPU를 대량으로 주문했다. 심지어 이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자금 지원으로 구매한 GPU를 담보로 다시 사모펀드 등에서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조달해 더 많은 엔비디아 칩을 사들이는 극단적인 레버리지 전략을 취하고 있어 위험성을 더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스트랄 AI(Mistral AI), 캐나다의 코히어(Cohere) 같은 AI 모델 개발사 역시 엔비디아의 투자금을 받아 이를 다시 엔비디아 인프라 사용료로 지불한다. 엔비디아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고객을 거쳐 다시 손익계산서상 매출로 돌아오는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이 순환 구조를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그리스 신화 속 뱀에 빗대 '금융의 우로보로스(Ouroboros)'라 부르는 이유다. 이 구조는 엔비디아의 성장을 가속하는 엔진이자, 동시에 그 성장이 멈추는 순간 스스로를 겨누는 뇌관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바로 이 양면성이 '우로보로스의 딜레마'다.
시장이 이러한 벤더 파이낸싱 구조를 전략적 영업 활동으로 보지 않고 심각한 리스크로 인식하는 첫 번째 이유는 금융에 의해 부풀려진 수요와 자생적 성장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현재 엔비디아 GPU에 대한 폭발적 수요 중 얼마가 순수한 시장 수요이고, 얼마가 순환 금융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수요인가라는 점이다. 만약 엔비디아의 고객사들이 스스로 벌어들인 영업이익이나 순수한 제3자 투자금으로 GPU를 구매한다면 이는 견고한 유기적 수요이지만, 엔비디아의 자금 지원이나 보증 없이는 구매력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라면 이는 수요가 과다하게 부풀려진 상태다. 이러한 지원이 끊기거나 보증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수주 물량으로 잡혀 있던 수백억 달러 규모의 GPU 주문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두 번째 우려는 신용 위험의 집중과 우발채무 폭탄이다. 빅테크와 스타트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매년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반면, 실제 AI 서비스로 거두어들이는 매출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투자 대비 수익(ROI) 시차'가 벌어지면서 신용 위험이 극도로 고조된다. 일반적인 거래에서는 고객사가 부도날 경우 손실을 은행이나 투자자가 감당하고 판매자는 미수금 위험에만 한정되지만, 벤더 파이낸싱에서는 자금을 지원받은 AI 스타트업이 파산하거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자금을 댄 엔비디아가 손실을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이는 매출 취소, 투자금 회수 불능, 그리고 보증 채무 이행이라는 삼중고로 이어진다. 엔비디아 관련 대규모 보증 소식이 나올 때마다 CDS(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것은 시장이 이를 정상적인 매출이 아닌 우발채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6월 말 40bp(0.40%p) 안팎에서 7월 27일 사상 최고치인 82bp(0.82%p)까지 치솟았다. 관련 CDS가 활발히 거래되기 시작한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다. 이는 엔비디아의 채무불이행(부도) 리스크가 커져, 이를 보증해 주는 일종의 보험료 성격의 비용이 급등했음을 의미한다. 같은 날 엔비디아 주가는 5% 가까이 밀리며 시가총액 약 2500억 달러가 하루 만에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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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우려는 닷컴 버블의 참혹했던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당시, 세계 최고의 통신장비 업체였던 루슨트 테크놀로지스와 노텔은 신생 통신 스타트업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대출을 직접 해주며 자사의 광통신 장비를 사도록 유도했다. 초기에 이들 기업의 매출과 주가는 폭발적으로 상승했으나, 인터넷 수요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통신 스타트업들이 연쇄 파산했고 대출금은 전액 부실채권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루슨트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며 무너진 끝에 2006년 경쟁사인 프랑스 알카텔에 흡수합병되는 비극을 맞았다. 노텔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2009년 끝내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회사가 조각조각 해체되어 매각되는 최후를 맞았다. 현재 엔비디아의 벤더 파이낸싱 행보를 바라보는 월가의 시선에는 루슨트와 노텔 사태의 악몽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물론 시장 일각의 극단적인 비관론에 대해 엔비디아와 AI 옹호론자들은 현재 상황이 과거 닷컴 버블 당시의 무분별한 벤더 파이낸싱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력히 반론한다. 닷컴 버블 당시에는 수천억 달러를 들여 전 세계 땅속과 해저에 매설한 대규모 광케이블이 대부분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지만, 현재 엔비디아의 GPU는 훈련 및 추론 현장에서 실제로 100% 가동되고 있으며 대형 빅테크조차 공급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장부상 이익만 높고 현금이 부족했던 과거 기업들과 달리 엔비디아는 매 분기 막대한 규모의 실질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어 재무 체력이 매우 단단하다. 실제로 2026 회계연도 기준 엔비디아의 잉여현금흐름은 966억 달러, 순현금은 541억 달러에 달하는 반면 총부채는 85억 달러에 불과해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5%를 밑돈다. 엔비디아 측은 칩을 억지로 팔기 위한 밀어내기 대출이 아니라, 거대한 AI 인프라를 빠르게 조성하기 위한 마중물 투자라는 설명이다.
결국 엔비디아의 벤더 파이낸싱 우려는 일시적 회계 논란이 아니라, 글로벌 AI 산업 전체가 넘어야 할 수익화의 벽을 상징하는 비상벨이다. 엔비디아의 자금 지원으로 구축된 AI 데이터센터에서 혁신적인 AI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고,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면 생태계는 건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반대로 수천억 달러가 투입된 AI 서비스들이 기대만큼의 매출을 내지 못하고 막대한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벤더 파이낸싱으로 연결된 고리는 연쇄 폭발의 가스관으로 변할 것이다. 이처럼 시장이 벤더 파이낸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엔비디아라는 개별 기업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AI 거품의 시계가 과연 실질적인 수익 창출 시계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당한 질문이다.
엔비디아가 우로보로스의 딜레마를 끊어내고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칩의 성능뿐만 아니라, 자금을 지원한 생태계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오픈AI의 오하이오 데이터센터가 신화의 첫 장으로 기록될지, 루슨트와 노텔의 재림으로 남을지는 바로 그 증명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