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술이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투데이 窓/김은선]

좋은 기술이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투데이 窓/김은선]

김은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데이터분석본부 책임연구원
2026.08.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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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얼마 전 국가 R&D(연구개발) 과제의 글로벌 기술사업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만난 한 벤처기업 임원이 꺼낸 첫 마디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오랫동안 공공성과의 시장 진출을 연구해 온 필자에게는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왜 어떤 기술은 시장을 바꾸고, 어떤 기술은 연구실을 벗어나지 못할까. 그간 수많은 기업을 만나보며 뛰어난 기술이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사례도, 작은 아이디어가 세계 시장으로 확산되는 과정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시장에서 실패하는 기술은 대부분 기술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성공하는 과정을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술을 잘 만드는 나라이지만 시장은 좋은 기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 앞에 서 있다.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기술이 성공하는 과정을 설계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시장은 연구실과 전혀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데 고객은 기술의 우수성보다 문제 해결을, 투자자는 특허보다 시장성과 성장성을 본다. 결국 시장은 가장 뛰어난 기술보다 고객을 가장 잘 이해한 기술을 선택한다.

이 차이를 간과하는 순간, 뛰어난 기술도 시장에서는 실패할 수 있다. 실패한 기술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많은 연구과제는 기술개발이 완료된 이후 사업화를 고민한다. 시장 분석은 연구가 끝난 뒤 시작되고 고객 검증과 마케팅도 제품 개발 이후에 이뤄진다. 기술은 완성됐지만 시장은 이미 변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은 기술과 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와 시장을 서로 다른 과정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시장과 함께 기술을 발전시키는 접근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와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를 비롯한 혁신기관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유사하다. 최근 딥테크 연구도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연구 초기부터 고객 수요 확인, 시장 검증과 투자, 지식재산, 규제 대응까지를 동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술 자체의 차별성은 빠르게 감소하며 결국 경쟁의 중심은 고객, 시장, 투자, 규제 등과 관련한 전략을 설계하는 민첩하고 유연한 의사결정 역량으로 이동한다.

생성형 AI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개발되고 모방되지만 어떤 시장을 읽고 고객을 이해하며 누구와 협력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복잡한 역량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결국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이러한 판단을 시장의 성공으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앞서 언급한 벤처기업도 가격, 품질, 인증 등 시장 수요를 다시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 개발, 마케팅 및 사업화 전략을 동시에 설계하고 있다. AI의 진정한 가치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판단과 설계를 지원하는 기술사업화 파트너가 되는 데 있다.

AI는 더 이상 문서를 작성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는 생산성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앞으로 AI는 연구성과의 시장성을 예측하고, 적합한 고객과 기업, 투자 전략을 제안하는 기술사업화 파트너로 발전할 것이다. 이는 기술을 대신 개발하는 AI가 아니라 전문가가 축적해 온 경험과 판단을 다양한 경로에서 지원하는 의사결정 AI다. 성공을 설계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도구, 이것이 AI 시대 기술사업화를 지원하는 AI의 본질이다.

왜 어떤 기술은 시장을 바꾸고, 어떤 기술은 연구실에 머무는가. 결국 차이는 기술을 넘어 고객을 이해하고, 복합적인 성공의 경로를 설계하는 능력에 있다. 미래의 경쟁력은 AI를 적극 활용하여 기술을 시장의 성공으로 가장 먼저 연결하는 기업이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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