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트랙터 여행가 강기태 여행대학 대표

"농기구 트랙터로 해외를 일주? 수리는 어떻게 할 겁니까? 연료 보충은? 해외까지 선적은 어떤 경로를 이용하죠?"
2005년 11월, 열정 넘치던 한 대학생이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마땅한 대답거리를 내놓지 못했다. 2004년 한-칠레 FTA협정을 지켜봤던 그는 농업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러다 평소 관심있고 즐겨오던 여행과 접목시켜 '농기구 트랙터 해외 일주'를 떠올렸다. 페루의 리마에서 칠레로 4000km 정도 완주해 내면 농부의 아들로서 농업계에 힘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뜻한 바를 이룰 수는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청년은 군에 입대한다.
이 이야기에도 반전은 있다. 3년6개월 후 이 대학생은 2년 넘게 계획하고 이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국내 여행으로 목표를 바꾼다. 트랙터 전문 회사 회장, 실무진, 농업 관계 교수, 국회의원 등 90여 곳에 계획서 및 협조서를 발송했다. 협찬을 부탁하기 위해 트랙터 전문회사를 찾아갔다. 여행 도중 트랙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냐는 관계자의 질문에 이번에는 당돌하게 말했다.
"1시간 만에 AS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이 회사로서는 홍보 효과가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브랜드를 달고 전국곡곡을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행전문 대학을 표방한 카페형 대학 '여행대학' 대표이자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 씨의 이야기다. 2008월 9월 18일, 그는 농기구 트랙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첫 여정을 시작한다. 진주, 마산, 창원, 김해, 부산, 동해, 양양, 서울 등 43곳, 길이 2000km의 국내 대장정.

"전부 말도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성공한 순간, 날듯이 기뻤죠."
2400만원 가격의 농기구 트랙터 대여와 기름값 300만원을 지원받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전 여행이었다. 쌀이 필요하면 추수를 돕고, 딸기가 먹고 싶으면 하우스의 일손을 거들었다. 어촌마을에 도착해서는 새벽 3시 어선을 타고 출항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당시에는 젊었으니 가능했지, 지금이면 못 한다"고 손사래를 치며 고생했던 일을 떠올렸다.
사고도 났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트랙터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3,4바퀴 돌아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문짝 한쪽이 날아가 차 문 없이 3시간을 연달아 달린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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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길 위의 만남을 강 대표는 "절대 잊을 수도 놓칠 수도 없을 인연"이라고 표현했다. 봉화마을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고, 서울에서는 여행가 한비야, '밥퍼'의 최일도 목사를 만나는 등 여러 인연들과 함께 했다. 그 만남들이 없었다면 국내 일주는 더욱 힘들었을 거라고.
강 대표는 국내 일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터키로 떠나 1만km 횡단 일주를 마쳤다. 2013년에는 하얼빈, 내몽골, 계림 등 중국을 종단했다. 내년 역시 호주, 미국, 유럽 중 한 곳을 선택해 트랙터 세계 투어를 할 계획이다.

터키 일주를 할 때는 현지에서도 꽤 이슈가 됐다고. 강 대표는 "터키는 대를 이어서 농사를 지을 정도로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어린 친구들도 트랙터를 몰고 자부심을 갖고 농업에 종사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농사 짓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고 말했다.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농산물 값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 농민들은 시위를 하고, 도시 사람들은 왜 저럴까, 생각하겠죠. 도시 여성들이 농촌으로는 시집 안 오니 국제결혼이 성행하죠. 여기서 또 다문화 관련 농어촌 문제가 발생합니다."
농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강 대표는 농어촌 관련 강연에 많이 참가한다. 농민 신문이나 농기구 신문에도 글을 연재했다. 내년 2월에는 경남 하동에 농촌 열정학교(가칭)를 세울 예정이다. 농촌 아이들이 도시의 다른 아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은 '스펙'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이라고 강 대표는 생각했다.
"초중고 아이들이 대학생이 돼서야 보통 경험할 수 있는 승마, 번지점프, 여행계획서 작성, 에세이, PT 작업 등을 열정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이에요. 열정학교의 강사는 하동의 대학생, 휴학생들입니다."
내년 2월에는 하동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어 여행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숙박장소를 제공할 예정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는 강 대표는 "전부 지인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여행을 다니고 강연, 방송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다 보니 아는 사람도 많이 생겼죠. 하지만 도와달라고 말해본 적은 없어요. 돈을 빌려달라거나 물건을 사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재화나 마음을 뺏어온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절대로 거리를 좁혀오지 않거든요. 그저 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전화 한 통, 슬픈 일이 있으면 소주 한 잔이라도 나누면 그것만으로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그는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어차피 인생은 불행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그 자체가 행복한 것은 아니에요. 인생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작은 행복이 왔을 때 만끽할 수 있는 거죠. 그것을 최고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여행입니다. 인생도 여행과 똑같거든요. 삶은 예측불허라 계획대로 흐르지 않아요. 젊었을 때 여행을 한 번 떠나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예측불가능성을 빨리 경험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입시, 취업, 결혼…. 요즘 청년들 이런 주제에 시달리고 압박감 느끼잖아요. 어차피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너무 고뇌하고 힘들어하지는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