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불화우라늄 누출 사고…유족 "회사가 수천만원 벌금 운운"
사측 "의견 모으는 과정 강요로 느낀 듯…책임전가 말도 안돼" 해명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8월 11일
“지시만 따랐을 뿐인데 나에게 책임을 모두 떠넘기고 있다. 사고 후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상사가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는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왜?”
“상사가 오전에 전화를 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면담이 있으니 회사로 들어오라고 했다. 갔더니 당시 사고는 밸브 교체가 아니라 점검 중 사고였다고 하라며 압력을 해왔다. 사무실에서 윗선에 올라간 사전 보고서를 보여줬다. 점검 차 들어갔다가 사고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9월 11일
“조근 근무 중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KINS가 다음 주 현장검증을 할 수도 있으니 또 거짓 진술을 하라는 압력이었다. 이제 너무 지치고 두렵다. 우리 회사에서 이 사건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윗사람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도구로 쓰이는 내가 싫다”
#11월 18일
“절차상 시스템이 뭉개졌는데 왜 내 책임인가. 작업을 위한 조치가 완료됐다는 말을 믿고 작업이 시작됐다. 내가 장비 담당자이니 회피하고 싶지 않다. 막을 수 있었다”
한전원자력연료가 지난 8월 10일 육불화우라늄(UF6) 누출로 모두 3명이 다치는 사고와 관련, 당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당시 사고 피해자 중 1명인 화합물 변환장비 운용 담당자 A씨(39)가 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 전망이다.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은 A씨가 사고 직후부터 극단적 선택을 한 지난 18일까지 수기와 휴대전화로 남긴 메모에 고스란히 담겼다. A씨는 지난 17일 밤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남긴 뒤 집을 나섰고, 18일 새벽 자주 운동을 다니던 산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전원자력에서 11년간 근무해온 A씨는 이렇게 가족과 동료들 곁을 떠났다.
<뉴스1>이 A씨가 남긴 글과 유족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당시 사고는 UF6를 변환하는 장비의 밸브를 교체하던 중 발생했고, 장비 운용 담당자 중 한 명이였던 A씨는 이 작업 중 스크러버(집진기)를 작동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합류했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A씨의 동료들에 따르면, A씨는 당일 콜드트랩이 완료됐다는 말만 들었을 뿐, 교체 작업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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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트랩은 UF6이 누출되지 않도록 포집해 고체로 만드는 냉각장치를 뜻한다.
사고 후 부상이 비교적 경미했던 A씨는 2일간 개인 휴가를 내고 회복 후 출근할 예정이었으나, 사고 다음 날부터 회사측이 “이번 사고 개요를 축소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며 회유했다는 내용의 메모도 발견됐다.
유족들은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이 원자력안전법 등을 제시하며 “현장에 있던 너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수천만 원의 벌금이 내려질 수 있다”는 등 강요와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당시 작업 보고가 다 끝난 교체작업을 근로자들이 일상점검 중 임의로 했다고 근무일지를 조작하기도 했다”며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책임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A씨의 동료들은 이 사건 관련 책임을 묻게 된 근로자들에게 회사 측이 대본까지 써주며 거짓 진술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A씨와 함께 일했던 한 동료는 “A씨와 통화를 자주 했다. 힘들고 지친다는 얘기 끝에는 시나리오대로 가자는 압박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또한 “당시 안전작업허가서를 발급받아 작업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 과정이 생략됐고, 이런 절차를 현장 직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이 사실이 발각되면 대규모 가동 중지 등 행정처분이 내려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폭로했다.
우라늄 화합물을 취급하는 작업인 만큼, 교체작업에는 반드시 허가서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회사측이 임의로 해오던 관행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황급히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A씨 등 당시 현장에 있던 근로자들이 보고 없이 일상점검 중 임의로 교체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면, 허가서를 발급받지 않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갔다.
사고 당시 A씨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한 동료는 “A씨는 당시 작업에 필요한 사전 조치가 모두 이뤄졌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며 “우리 역시 작업이 가능한 환경이 갖춰졌다고 생각했다가 사고가 났다. 심지어 부상자도 3명이 아닌 7명이었다”고 회상했다.
일부 동료들은 당시 밸브 교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고 전날(9일) 알았고, 작업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는 등 관리자에게 보고와 허가를 받았다고 기억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회사측은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고자 시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서로의 진술이 다르니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강요를 받는다고 느낀 것 같다”며 “상급 관리자들도 징계 대상이 됐다. 부하 직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이어 “A씨가 감사와 조사 과정에서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며 “다만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는지 몰랐다. 경징계로 끝날 사안이라고 안심시켜 주기도 했는데,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회사측은 “당시 안전사고 예방에 소홀했던 것은 인정하고 통감하고 있다”며 “허가서 관련 책임자도 징계 대상자에 포함됐다. 사고 라인 역시 약 2개월간 가동이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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