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진동영 기자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또 기성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 가운데 절반 정도인 15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그의 막강한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메이커'가 된 이후 장외에서 정치판에 다시 메가톤급 충격파를 던진 것이다.
안 원장은 14일 오후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작은 결심"이라며 "제가 가진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반 정도를 사회를 위해서 쓸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 원장이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의 경계에 있으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는 점은 정가의 대체적인 예상이었지만 재산의 사회환원이라는 '빅 카드'를 이렇게 조기에 꺼낼줄을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그래서 안 원장이 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낸 '치고 빠지기'식 이메일은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는 등 모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기성 정치권은 안 원장의 의도를 가늠하기 어려워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산의 사회환원 소식이 알려진 14일저녁 한나라당은 야당이 환영일색의 논평을 내놓은 것과는 달리 일단은 "특별한 입장이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친박(친박근혜)계 유승민 최고위원은 "대선 유력 주자로 인식되고 있는 시점에 재산을 기부한 데 대해서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며 안 원장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 은근히 경계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렇지만 여권 인사들 가운데 누구도 이같은 안 원장의 재산 사회환원 자체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비판은 하지 못하고 있다. '안풍(安風)'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국민들의 여론이 안 원장에 호의적이어서 자칫 잘못 대응했다가는 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확인했듯이 그것이 여당에 대한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내 쇄신파인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15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당 지도부가 대놓고 칭찬할 수도 없고 왜곡해서 해석할 수도 없는 '계륵(鷄肋)'의 상황인 것 같다"며 "그래서 지도부가 말이 없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잘못됐다고 본다. 잘한 건 잘했다고 평가하는게 맞다"고 말했다.
야당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며 일단 안 원장에 대한 보호막을 치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안 원장의 선의가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고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지나친 정치적 해석으로 안 원장의 사심없는 선행이 폄훼돼선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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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권 일각에서도 이같은 안 원장의 행보에 대해선 본인이 우선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결과가 매우 '정치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 원장이 지난 9월 정치전략가로 통하는 윤여준 전 장관의 입을 빌려 간접적으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히자 여론은 50%가 넘는 지지로 화답했다. 이후 안 원장에 대한 여권의 견제가 시작될 무렵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전격적으로 출마를 양보하자 그의 지지세는 타격을 입지 않고 박 시장에게 옮겨졌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안 원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특히 선거를 이틀 앞두고 오차범위내 여야 혼전 양상 속에서 안 원장이 박 시장을 방문, 지지 편지를 전달하는 '이벤트'를 벌인 것은 박 시장 당선 드라마에 있어서의 '화룡점정'이라고 불릴 만 했다. 이 과정이 바로 안 원장이 기성 정치인이 하는 대로 치열하게 공을 들이지 않고도 무당파 시민사회세력의 1인자가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후에는 본인의 의중과는 일단 상관없이 안 원장은 매우 강력한 대선주자로 분류됐다. 여권의 견제와 야권의 현실정치 동참 압박이 집중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 때 안 원장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1500억 사회환원'이었다. 이 카드로 여야 모두를 침묵하게 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안 원장은 그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여야 모두에게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날 뉴스1과의 통화에서 "안 원장에 대해 여야 모두가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런상황 속에서 자신의 재산 절반을 냈다는 사실 자체는 정치권의 모든 공격을 막으려했다고 볼 수 있는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이제는 안 원장에 대한 정치권의 어떤 비난도 어렵게 됐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본인은 부인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처럼)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안 교수를 비난하면 비난한 사람이 역으로 다친다"며 "그래서 한미FTA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라'는 등 자기한테 쏠리는 검증의 잣대를 비롯한 모든 공격을 전부 차단할 수있게 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안철수 현상'이 결국 기존 정치권의 혐오에서 시작돼 시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안 원장이 의도적으로'정치행위'를 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가 시대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그를 부른다는 얘기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는 "제도권, 정치권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불신과 분노의 결집을 주목해야 한다"며 "이같은 유권자들의 폭발력은 2012년 선거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안 원장은 기성 정치권의 예상대로 결국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대선행보에 나설지, 아니면 그의 희망대로 미국의 빌 게이츠 처럼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기부운동가, 또는 공적 헌신자로 남을 지 기로에 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