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출생부터 사망까지···'최고권력자'의 70년 일생

지난 17일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후부터 37년 동안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 왔다.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16일 량강도 백두산의 항일빨치산 밀영에서 김일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모는 김일성 주석의 첫째 부인인 김정숙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출생연도는 1941년이라는 게 정설이다. 1912년에 태어난 김 주석과 출생연도 마지막 숫자를 같게 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출생연도를 한 해 늦췄다는 것. 북한은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규정하고, 두 지도자의 탄생 매 5주년·10주년마다 대규모 경축행사를 열고 있다.
출생지 역시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 김 주석이 젊은 시절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해왔던 만큼 김 위원장도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원장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용했던 '아명' 역시 러시아식인 '유라'였다.
그러나 북한은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 되면서 그의 출생지를 백두산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또 백두산에 '정일봉'과 '백두산 밀영'이라는 고향집까지 만드는 등 성역화 작업에 나섰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던 그였지만 유년시절은 평탄치 않았다. 그가 7살 때 생모가 사망했고 이듬해에는 6·25 전쟁으로 인해 중국으로 피난을 떠났다. 계모 김성애 밑에서 자랐지만 '모성결핍'에 시달렸으며 계모와 이복형제에 대한 반감도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1964년 6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조직지도부 지도원과 선전선동부 과장, 부부장을 거치면서 아버지의 신뢰를 얻은 김 위원장은 생모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간부들의 후원에 힘입어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 이복동생 김평일과의 권력투쟁을 통해 이들 세력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이듬해인 1974년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북한 정권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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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980년 10월 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임을 대외에 공식 알렸다. 특히 이 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임명되면서 군권 장악에 나섰다. 이후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 주석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했다.
1994년 7월8일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명실상부한 유일 권력자로 등극했지만 북한의 대내외적 환경은 만만치 않았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이름 붙이 정도의 경제위기, 미국과의 핵개발 대립, 전통적 우방인 중국·러시아의 개혁·개방 등으로 국제적 고립에 놓이게 된 것.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물리적 강제력'을 보유한 군대에 의존하면서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 아울러 김 주석에 대한 3년상을 이유로 '유훈통치'를 선포했다. 김 위원장은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 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으며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됐다.
대내적으로는 이처럼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했지만 세계 여론으로부터는 '은둔의 지도자'로 불렸었다. 그러나 1994년 미국과의 '벼랑끝 담판'을 통한 북미 기본합의서 체결,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세계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이 같은 김 위원장의 노력에도 국제적 고립을 해소키는 어려웠다. 체제 유지를 위해 '자위적 억제력 보유'에 사활을 걸어 온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2006년 10월 핵실험을 통해 다시 국제적 고립에 빠져 들었다.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김 위원장의 정치적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9년 1월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에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