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반기업정책②]공격투자 막는 순환출자..금지하는 나라 없어
“한국 기업 경쟁력의 기반이 된 기민하고 공격적 투자는 순환출자에 힘입은 바 크다. 그것을 못하게 하면서 경쟁력을 높이겠다니 어이가 없다”
“대표적 순환출자 회사인 삼성, 현대차, 현대중공업은 주가와 수익성이 제일 높고 투자 규모도 제일 크고, 매물로 나온 기업 인수실적도 가장 많다. 주주는 주가상승으로 이익을 얻었고, 손해 입었다는 이해관계자도 없는데 정치권이 왜 나서는지 알 수 없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와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최근 토론과 기고를 통해 정치권에서 제기된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 순환출자 해소, 투자위축 등 부작용 커
순환출자 규제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곳은 글로벌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자동차 전자 조선 등 3개 산업을 이끌어온 현대차 삼성 현대중공업 그룹이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이들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들여야 할 돈은 현대차(6조1600억원)와 현대중공업(1조5700억원), 삼성(1조2200억원) 등 9조원에 달한다. 순전히 지배구조 변화를 위해 이같은 자금이 들어갈 경우 그만큼 투자가 제약될 수 밖에 없다.
신속한 투자의사결정과 과감한 사업개편 및 구조조정은 한국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라는게 외국 언론이나 기업의 시각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 들어 삼성LED를 흡수합병하고 LCD 사업부를 분사했다. 이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LCD를 다시 합병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삼성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켰다. 이 모든 작업을 진행하는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순환출자 규제가 우리 기업들의 미래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농후하다. 기업들이 태양광이나 에너지, 바이오, 전기차와 같이 당장은 돈이 안되는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우리 기업들이 투자시기를 놓친 일본 기업들을 밀어내고 세계 1위에 올라서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는 셈이다.
마틴 햄메어트 고려대 경영대 교수(47)는 한국 기업의 성공 이유를 '호랑이 경영'으로 꼽으며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일본 다음으로 높고, 중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투자한다"며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몸집을 불려 해외로 과감하게 나아간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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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환출자, 직접 규제 사례 없다

전세계 글로벌 기업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기업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 가운데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하는 곳은 없다. 순환출자가 경쟁을 제한하거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사안별로 강력히 규제하는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이다.
미국의 경우 순환출자를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과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A→B→C→A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는 경우 A사는 B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물론 C사에 지불하는 배당금까지 세금을 물어야 한다.
유럽에서도 별도의 순환출자 금지 규정은 없다. 독일의 경우 상호출자시 25% 미만까지의 지분에 대해서만 주주권을 인정한다. 만약 25% 이상 상호출자가 이뤄질 경우 상호 참가기업으로 지정되고 25% 초과분에 대해서는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프랑스는 10% 미만까지 상호출자를 허용하고 있으며 10% 이상인 경우 지분율이 낮은 회사가 처분해야 한다.
일본 역시 순환출자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고 상호출자의 경우 25% 초과한 부분에 대해 의결권이 제한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만 순환출자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일까.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순환출자나 피라미드식으로 이뤄진 국내 대기업 구조가 특수한 것이며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과거 존재했던 출자총액 제한제도나 최근 제기되는 순환출자 규제 역시 이런 인식을 깔고 있다는 것.
황 연구위원은 “하지만 지금은 피라미드 기업집단이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 현상이됐다는데 국제학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경우 토요타 가문의 지분율은 10%에도 못 미치지만 계열사 사이에 순환출자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고, 직접 상호출자한 경우도 상당수다. 토요타는 먼저 ‘자동직기→토요타차→덴소→자동직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여기에 토요타차는 자동직기 지분은 23.5% 보유하고 있고 자동직기 역시 덴소 지분을 8.5% 갖고 있어 상호출자 관계도 형성된다.
프랑스 명품업체인 루이뷔통 모엣 헤네시(LVMH)그룹 역시 순환출자를 통해 60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urg) 그룹은 차등의결권 등을 활용해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통해 계열사를 관리하고 있다. 캐나다의 히스-에드퍼(Hees-Edper) 그룹도 최대 16단계까지 피라미드식 출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계열사도 300개에 육박한다.
황 연구원은 “우리 기업들의 경쟁상대가 해외 기업들이라는 점을 고려해 역차별적 규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