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시대]
대통령 선거마다 나름의 시대정신이 있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화두로 당시 여당에게도 자기반성을 요구했다. 참여정부 시절 각종 사회적 어젠다의 충돌과 갈등에 지친 유권자들은 2007년 대선에서 최고경영자(CEO) 출신 이명박 후보의 실용주의와 '경제대통령론(論)'을 선택했다.
제18대 대선을 관통한 키워드는 '변화'였다. 단순한 정권교체 요구를 넘어 기존 정치질서의 변혁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대변화였다.
변화 욕구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먼저 분출했다. 올 초 '경제민주화'가 초대형 이슈로 등장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 질서를 개혁하고 서민·중산층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전유물로 여겨지던 경제민주화는 여야 모두 외면할 수 없는 시대과제로 떠올랐다. 정치권은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약속해야만 했다.
야권후보 단일화 국면에선 정치쇄신이 최대 이슈였다. 국회와 정당의 특권·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새 정치의 깃발을 들면서 정치를 외면하던 무당파 층도 대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일후보가 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새 정치의 깃발을 넘겨받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으로 맞섰다. 남성중심의 정치질서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차원에서 이 역시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부응한 측면이 있다.
정치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불통을 넘어 소통하는 대통령, 대결의 정치를 극복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요구됐다. 여야 후보는 자신이 국민통합과 소통을 이룰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저마다 자신이 새로운 과제를 실현할 미래 세력이고 상대는 낡은 구태세력이라며 프레임 대결을 벌였다.
이처럼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정치쇄신, 국민통합, 여성대통령론 등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 터져 나온 쇄신안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변화 열망을 바탕에 뒀다. 심지어 선거운동조차 기존 방식으로는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일 정도로 변화 요구는 강렬했다.
대선 막판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간 불을 뿜는 네거티브 폭로 대결이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치달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변화를 갈망한 민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그가 이 같은 변화의 열망을 담아내고 실현할 적임자로 선택받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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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결국 차기 대통령의 실천 과제로 남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대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는 대통령의 의지뿐 아니라 제도 개선을 통해 정착시켜야 한다. 헌 부대에 담은 술은 결코 새 술이 되지 못한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깨끗해져야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생각들이 파급됐다"며 "옛날식의 정치나 국정운영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근본적 변화에 대한 요구"라고 진단했다.
그는 "여야가 서로 자기 방식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얼마나 국민에 어필하느냐가 문제"라며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투명성 확보가 차기 대통령의 주요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