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남한의 핵 능력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한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것은 1970년이다. 당시 윌리엄 로저스 미국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2만명을 철수하겠다고 통보한 것에 자극받아 핵개발에 들어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핵개발이 88% 이상 완료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은 당시 프랑스 핵무기 연구에서 고폭실험을 완료했다. 프랑스는 전세계 각국에 핵보유를 확산하는 정책을 가진 나라로서 이스라엘도 1950년대 프랑스 핵기술 이전으로 핵을 보유하게 됐다.
당시 남한 정부는 충청북도 괴산군에 위치한 우라늄광산 개발을 진행된 적이 있으며 충북 우라늄 광산은 유사시 핵무기 제조에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1983년에는 핵무기의 완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그러나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면서(10·26 사건) 핵무기 개발도 중단됐다.
남한에서 핵무기 개발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은 2004년이다. 당시 IAEA 사찰단은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소가 2000년 우라늄 0.2g을 농축하는 실험을 했다며 실험내용과 기술 수준 등에 대한 사찰을 실시했다.
당시 우라늄 농축실험에 사용된 기술은 증기 레이저동위원소분리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라늄을 농축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국제사회에서 핵개발 의혹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2014년 3월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을 앞두고 개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협상에서는 핵연료 재활용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 논점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은 건식재처리 기술의 일종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시작한 이래 최근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적으로 기술 우위를 확보해나가고 있으며 원자력발전소의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이 세계 최초로 오는 5월 완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