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골'은 옛말 '신촌파' 대신 '명륜골'…'연고' 무시 '능력·전문성' 중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신촌파(서강대·연세대 소재지)'에도 해 뜰 날이 올 것이다"
지난해 12월 대선 전 정치권에선 이런 말이 나돌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모교가 서강대고,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과 김호연 전 의원이 친박(親朴) 핵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탓이다. 박 당선인의 대선 경제 공약을 성안했던 서강학파(김종인 김광두)도 두각을 나타냈다. 최경환 이성헌 현기환 등 연세대 출신들도 박 당선이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으로 꼽혔다. 박 후보의 당선이 유력했던 만큼 사회 각 분야에 포진하고 있던 두 학교 출신들도 새 정부에서 '한 자리'의 꿈을 꿨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은 '안암골'(고려대 소재지)의 전성시대였다. 이 대통령의 모교인 고대 출신들은 청와대와 내각은 물론 금융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리를 꾀 찼다. 고대와 함께 이 대통령이 장로로 있던 소망교회와, 영남 측근들을 대거 중용된 탓에 이른바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정권'이란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 대통령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인사'라고 자신했지만,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각종 의혹으로 낙마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한 '연고인사'로 스스로 발목을 잡았고, 인사의 난맥상은 정권 출범과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됐다.
이런 학습효과 탓일까. 박 당선인은 '연고인사'와 거리를 두고 있다. 지금껏 발표됐던 국무총리, 17개 부처 장관 후보자 지명, 청와대 비서실장 및 일부 수석 등 총 24명의 인선을 보면 박 당선인의 이런 의지가 그대로 읽힌다. 새 정부 최대 수혜주로 예상됐던 서강대 출신이 단 한명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MB정권 초대 청와대 비서진과 총리, 장관 지명 당시 고대 출신들은 25명 중 5명을 차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 당선인은 이 대통령과 달리 모교인 서강대 출신들을 완전 배제한 체 '명륜골'(성균관대 소재지) 인사들을 대거 중용했다. 성대는 총 6명이 중용돼 서울대(7명)를 바짝 추격했다. 하지만 총리, 비서실장, 법무장관, 국정기획수석, 민정수석 등 요직을 차지해 실속을 차렸다. 육군사관학교도 외교 국방 경호 등 3명을 배출해 눈에 띄었다.
일각에선 서강대가 역차별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박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당선인은 능력과 전문성 위주로 대탕평 인사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다"며 "모교를 포함한 특정 학교 출신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자리에 가장 적합한 능력 있는 인물을 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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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18명의 총리와 장관 후보자 중 12명이 공무원과 국책연구기관의 범(汎) 관료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역대 정권에서 전체 국무위원 중 관료 출신이 절반을 넘지 않았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관료 중용은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정치색이 아닌 안정성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의 국정 철학이 녹아든 결과다. 박 당선인 측 관계자는 "정치 바람을 타지 말고 전문성을 살려 국정 운영의 방향대로 정책을 발굴하고 실행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박 당선인이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추진 능력과 전문성 등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평가한 것 같다"며 "종합적 기준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따져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고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지역 안배 측면에선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다. MB정권의 경우 초대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인선 당시 25명 중 영남이 10명을 차지했고, 호남은 단 2명에 그쳤다. 박 당선인은 영남 인사를 8명 기용했고, 호남은 4명을 중용해 다소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서울(7)과 함께 특정 지역 편중된 인사라는 말이 나온다.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고, 대통합 차원에서 이념을 넘어선 인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호남 인사 등용 등 지역안배 뿐 아니라 이념 측면에서도 다양하게 기용하는 게 '대탕평'"이라며 지역과 이념을 아우르는 정치적 고려가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