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에 한국 대기업 계열사를 배제시킨 것은 백번 양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한국 중견·중소기업이 아니라 한국 대기업보다 훨씬 규모가 큰 외국 급식기업이 차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공공기관들이 어느 나라 소속인가요?"
국내 외식업체 A팀장은 기획재정부가 286개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에서 한국 대기업을 배제시킨 것에 분통을 터트렸다. 기재부는 지난해 3월부터 자산규모 6조원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 소속 계열사의 공공기관 입찰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A팀장은 입찰 배제보다 그 입찰을 내로라하는 외국계 외식기업이 낙찰받는 것에 더 억울해했다. 아라코 같은 미국 급식기업이 딱 그런 경우다. 아라코는 직원수만 26만명으로 매출액이 17조원에 달하는 미국계 아라마크의 한국법인이다. 올 들어 아라코가 한국에서 수주한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권만 세종시 정부청사 2구역,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보증신용재단 등 5곳에 달한다. 이들은 급식사업 뿐 아니라 매점 운영권 등도 함께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도 아라코는 국립환경과학원과 다산콜센터, 신용보증기금의 구내식당 운영권을 따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화호텔이나 동원홈푸드, 삼성에버랜드 같은 한국 기업이 번듯하게 운영하던 것이었지만 기재부 방침이 바뀌며 아라코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운영권을 가져갔다.
국내 외식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의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 참여 금지는 국내 중소 중견 급식업체를 살리겠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아라코 같은 외국 기업이 무주공산 식으로 구내식당 운영권을 따가고 있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배제로 외국 급식기업에 워낙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다보니 프랑스계 급식기업 소덱소나 영국계 컴파스 같은 업체도 속속 한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공공기관의 IT정보화사업 입찰도 한국 대기업 참여가 금지되며 외국계 기업들이 수주전에서 연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IBM과 한국HP는 물론 중국·미국계 자본이 대주주인 대우정보시스템, 일본 기업이 최대주주인 쌍용정보통신 등은 요즘 공공기관 입찰을 대거 장악하는 모습이다.
한국 정부의 대기업 역차별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외국 기업의 꼼수도 엿보인다. 최근 김해국제공항 면세점 DF2 구역의 운영권을 따낸 세계 2위 면세점 듀프리가 그렇다. 이 면세점 운영권은 롯데·신라 같은 한국 대기업은 아예 참여하지 못하도록 봉쇄했다. 이에 듀프리의 한국법인인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는 산업기술진흥원으로부터 '중견기업 확인서'를 제출받아 입찰에 참여했고 낙찰자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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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듀프리는 전 세계 2위 면세점으로 지난해 매출만 4조원이 훨씬 넘는 기업"이라며 "이런 기업이 중견·중소기업을 위한 면세점 사업을 따낸 것이 이 제도의 근본 취지냐"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원래 면세점 사업은 명품 브랜드 유치가 필수인만큼 중소기업의 영역 밖이라고 덧붙였다.
일본계 기업형슈퍼마켓이 트라이얼코리아가 2010년보다 매장을 2배로 늘리면서 승승장구하는 것도 한국 유통기업들이 규제를 받는 사이 역차별 반사효과를 챙겼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동반성장 규제로 주춤하는 사이 일본계 마루가메제면이나 갓덴스시, 코코이찌방야, 잇푸도 같은 외식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서울 주요 상권에서 확장하는 것도 역차별의 후유증으로 꼽힌다.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한국 기업 역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5일 국정감사 상황점검에서 "최근 묻지마 경제민주화 입법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며 "대기업 입찰 제한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 중소·중견기업이 아니라 외국계 대기업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 지도부 사이에서는 이미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과도한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 같은 여론 속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직접적인 우려를 표명함에 따라 중견·중소기업들로 입찰을 제한하는 관련 규정이라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법률안을 개정해야 하거나 입법안 같은 경우는 야당의 공감대 형성이 변수로 꼽힌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에 없는 규제를 한국만 시행하면 결국 한국 기업이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예견됐던 결과"라며 "경제민주화 과잉 입법에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한 만큼 이제는 부작용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