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그들을 답답하게 한 것들

"볼 수도 없겠지만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이제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어"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마무리됐다. 이산가족들은 꿈에서나 그리던 가족들과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눴지만, 반가움도 잠시 불편함을 느낀 가족들도 적잖았다. 6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이 혈육 사이에도 장벽을 놓은 것이다.
북측 가족들은 행사 내내 자신이 받았던 훈장을 주렁주렁 펼쳐놓고 자랑을 하거나 공훈증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바빴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은데도 동생은 사회주의가 얼마나 좋은 체제인지 자랑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남측 가족들의 푸념이 이어졌다.
북한은 이번 이산상봉 시작 열흘 전부터 상봉대상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이들은 사상교육은 물론 평양 주요 관광지 및 마식령 스키장 등을 둘러봤다. 이 기간 내내 '우리가 이렇게 잘 산다'며 체제 선전을 하라고 세뇌교육을 받았다.
북측 상봉대상자들은 하나같이 남자는 양복, 여자는 한복으로 맞춰 입었다. 가슴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혹한의 날씨에도 이들은 마음대로 떨 수조차 없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항상 보위요원들이 있었다.
남측 여동생은 추운 날씨에 한복에 구두를 신고 나온 언니가 안타까운 마음에 "할머니한테 뾰족구두를 신겨서 보내는 게 말이 되냐. 옷도 외투 없이 얇은 한복 하나 달랑 입고 왔다"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수령님이 해준 것"이라는 대답뿐. 동생은 말을 잃었다.
남측 가족들은 상봉 내내 계속되는 북쪽 가족들의 체제선전에 지쳐갔고, 일부 남측 가족들 사이에선 오해도 피어났다. 북한에서 나온 아버지의 아들이 '보위부 사람' 같다는 오해다.
"벽에도 귀가 있고 천장에도 눈이 있다고들 하는데 무슨 깊은 얘길 할 수 있겠나. 북한에서 하는 일은 뭔지, 다들 똑같이 입고 온 양복은 누가 맞춰준 건지 묻고 싶어도 행여나 무슨 피해가 갈까봐 묻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남측 가족의 표정은 아쉬움조차 읽히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어줘 고마울 뿐이라는 표정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첫 이산상봉을 무사히 마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사히' 마친 안도감보다, 정치적 장벽에 가로막힌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더 크게 다가오는건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