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한국판 CSI법②] 한국 검시 제도의 현실···"현장에 법의학자 있었더라면"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매미의 한 고급 저택. 벤처 창업으로 떼돈을 번 미혼 남성이 수영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과학수사대(CSI)가 신고 즉시 출동해 시신을 수습하고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날 수영장에 드나든 사람은 피해자 뿐.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러나 CSI가 부검과 현장 감식을 통해 '사람'의 소행이 아님을 밝혀낸다. CSI는 수영장 옆 정원에서 악어의 발자국을 찾아낸다. 그리고 누군가 고기로 악어를 유인한 것을 알아내고, 결국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한다. (미국 드라마 'CSI 마이애미'의 한 에피소드)
# 6월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한 매실밭.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순천경찰서 초동수사반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시신 주변에는 구원파 계열사가 제조한 '스쿠알렌' 병과 '꿈 같은 사랑'이라는 문구가 적힌 가방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시신을 단순 행려병자로 판단, '시신을 부검하고 행정처리 하겠다'며 검찰에 지휘를 요청했다.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은 결국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시신은 이미 심각하게 부패됐고, 현장은 이미 훼손됐다. 드라마 속 '해결사' CSI는 그곳에 없었다. 만약 전문 검시관들이 신고 직후 현장이 훼손되기 전 투입됐더라면 어땠을까?
미국, 영국처럼 전문 검시관이 사건 초기부터 사체와 현장에 대한 검시를 직접 담당하게 하는 '전담 검시제' 도입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유 전 회장 사체 부검결과 발표장에서 "현장에는 경찰만 있었고 경찰의 시각으로만 시신을 확인했다. 만약 법의학자나 또 다른 사람들이 현장에 갔다면 또 다른 의견이 개진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검시제도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강승범 카톨릭의과대학 교수는 "사인은 시체 부검을 통해서만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범인의 행적과 현장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며 "현장에 있는 시신을 잘 관찰함으로써 사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불행히도 이번 사건은 현장 판단이 없어 사인 규명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변사체에 대한 '검시' 책임자는 검사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변사 사건의 수에 비해 검사의 인력이 부족해 실제로는 경찰이 검시를 대신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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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변사체가 발견되면 통상 경찰의 초동수사반이 현장을 확인하고 1차적 판단을 내린 뒤 검찰에 수사 지휘를 요청한다. 문제는 경찰 초동수사반에 대개 전문 검시관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인 등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현장의 특징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훼손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반면 미국은 경찰서마다 CSI로 불리는 '현장 범죄감식반'을 두고 사체 발견시 이들이 가장 먼저 현장감식에 들어간다. CSI가 도착하기 전에는 경찰 가운데 누구도 현장에 손을 댈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검시 제도 차이에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별도의 전문 검시관이 아닌 경찰이 검시까지 직접 맡는 '겸임 검시제'를 따르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일반 경찰이 아닌 법의학 전문가들이 검시를 전담하는 '전담 검시제'를 채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