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새정치연합과 '잉여인간'

[기자수첩]새정치연합과 '잉여인간'

지영호 기자
2014.08.27 06:29

[the300]

“당신들은 잉여인간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엿새째 노숙하고 있는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주민자치센터 앞 천막 농성장. 한 세월호 유가족이 26일 정오 무렵 이곳을 찾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을 향해 쏘아부친 말이다. 이 유가족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려면) 국회의원들이 죽어야 한다. 본인들은 너무 배부르다. 배를 곯게 해드리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간 마라톤 의원총회에서 ‘전면투쟁’을 결의한지 12시간만에,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법 제정에 전면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한 지 30분만에 돌아온 유가족의 반응은 이렇게 싸늘했다.

1958년 사상계에 발표된 손창섭의 단편소설 '잉여인간'에는 세명의 동창생이 당시 상황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주변 인물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치과의사 서만기와 현실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타협하지 못해 궁핍한 삶을 사는 ‘비분강개파’ 채익준, 잘 사는 처가 덕에 돈 걱정 없이 지내지만 수동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무능력한 천봉우가 그들이다.

작가는 만기를 유혹하는 아내를 둔 봉우나 아내가 죽은 뒤에 나타나는 익준을 전후(戰後) 시기를 겪은 시대적 배경에서 양산된 잉여인간으로 표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소설 속의 익준처럼 '잉여인간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두 번이나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하고서도 뒤늦게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려다 국민적 신뢰를 잃었고, 유가족이 협상대상자로 새정치연합이 아닌 새누리당을 선택하려는 움직임마저 일면서 ‘잉여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기류는 새정치연합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정국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 ‘잉여정당’으로 곤두박질 친다면 수권정당의 꿈은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공세 수위를 높인 것도 이 같은 절박함의 표현으로 읽힌다.

협상파트너인 새누리당도 세월호 특별법에 묶인 ‘식물국회’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순간에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게 여론의 추이이다.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수동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다간 새누리당도 '봉우'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실의 부조리에 분노하지만 타협하지 못한 채 궁핍한 삶을 고집하거나, 수동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무능력한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없다. 국민의 인내시점이 '만기'(滿期)에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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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호 산업2부장

'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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