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 파탄 논란 집중해부]
대한민국이 '어린이집 예산'을 놓고 갈등에 휩싸였다. 교육계의 재정부족에서 촉발된 이 논란은 정부를 거쳐 정치권으로 번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3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교육감들이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는 결과가 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날 전국시·도교육감들이 모여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교육감들이 전원 결의했다"고 발표한 것에 불쾌감을 표한 것이다.
그러자 야당이 최 부총리에 집중 포화를 쏟아냈다. 이날 오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중앙정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광은 대통령이 팔고, 나머지는 지방교육에 떠넘긴다"고 최 부총리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교육계·정치권이 어린이집 예산을 놓고 다투고 있는 양상이지만, 그 근본에는 교육 재정의 잘못된 구조가 놓여 있다.
비합리적으로 예산이 분배되고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을 상징하는 숫자가 '3→6→8, 8→6→5'이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반면, 65세 이상 노령 인구 수는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일종의 문제제기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0년 795만명에 달했던 학생수는 2015년 615만명으로 줄어들고, 2020년엔 545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2000년에 340만명에 불과했던 노인 수는 2015년 662만명으로 늘고, 2020년엔 808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즉 노인수는 20년새 '3(340만명)→6(662만명)→8(808만명)'로 468만명이 늘지만, 학생수는 '8(795만명)→6(615만명)→5(545만명)으로 250만명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문제는 학생수가 계속 줄어도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에 연동(국세가 증가할 수록 교부금도 증가하는 방식)돼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교부금이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기관과 교육 행정기관(그 소속기관 포함)을 설치·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말하는데, 매년 내국세의 20.27%가 교부금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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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2000년만해도 22조원이었던 교육교부금은 2015년 39조원, 2020년 59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20년간 무려 37조원이 늘어난다.
학생 수가 줄다보니 1인당 교부금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같은 기간 '282만원→643만원→1080만원'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0년간 초·중·고 학생수는 250만명 줄었지만,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의 20.27%에 고정돼 오히려 두배 이상 증가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지방교육 재정은 매년 2조원 이상 이월금이 발생한다. 또 매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불용액(쓰지않고 남는 돈)이 발생해 지방 교육청들이 각종 신규 사업을 벌인다. 우리나라는 정부 지출 중 초·중·고 공교육에 대한 비중이 1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4%)보다 높은 수준이다. 유아 부문은 OECD가 1.1%인데 반해 우리나라가 0.5%로 턱없이 낮고, 대학 역시 우리나라(2.6%)가 OECD(3.2%)에 못 미친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나온다. 정부는 무상보육 정책에 따라 지난해부터 3~5세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내년도 17개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무상보육비 2조1429억원은 어린이 보육료 지원에 쓰이도록 했다.
재원은 교육교부금이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한 시·도교육감들이 교육교부금을 다른 곳에 활용하려고 어린이집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어린이집은 교육기관이 아닌 보육기관이어서 보건복지부 관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청이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정부 안팎에서 교육교부금에 대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줄어드는 학생수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노령인구, 고등교육 필요성을 감안해 한쪽으로 쏠려 있는 부문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교부금을 지방교부세와 연계해 남는 돈을 영·유아나 노인복지 등 재정이 열악한 부문에 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줄어드는 학생수와 늘어나는 노령인구를 감안해 교육교부금에 대한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교육교부금율을 인하하든지 지방교부세와 연계해 운영하는 방안, 또 지방대학에 교부금을 지원하는 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 재정 '칸막이'.. 교육은 '펑펑', 노인은 '팍팍'
#초중고 교실의 빈자리가 늘고 있다. 원생 모집에 비상이 걸린 유치원도 있다. 내국세의 20.27%로 고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매년 자동으로 늘고 있다. 이렇게 쓰지 못하고 남는 금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학생은 줄고, 예산은 남아돈다.
#서울의 한 경로당. 최근 몇 년 새 식구가 늘었다. 요즘 노인들의 화두는 기초연금이다. 누군 받고 누군 못 받는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겠다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연금을 못받은 노인의 박탈감은 더 크다.
학생 수는 줄고 노인 수는 늘어나는 ‘고령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교육예산과 노인예산 사이는 재정 칸막이가 가로막고 있다.
8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교육재정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인구구조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필요한 대학.. 지원예산 오히려 증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들은 남는 교육교부금을 이용하기 위해 무리한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대학 지원을 늘리는 것은 인구구조 변화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대학정원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저출산으로 인해 대학입학자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내년 고등학교 졸업자 수와 대학 정원이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진학률이 100%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14만명 정도의 정원이 미달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이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오히려 고교졸업자가 대학정원보다 10만명 정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진학률 감안 시 24만명 수준의 정원 미달이다.
반면 교육부의 대학 지원 예산은 오히려 매년 증가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중 대학 등 고등교육 지원 예산으로 10조5341억원이 편성됐다. 올해보다 22% 증가한 것이다.
이밖에도 선거철마다 무상급식, 무상 방과후 활동 등 교육 관련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교부금의 존재로 교육재정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칸막이'..주기적으로 점검해야
지방정부 재정은 일반재정(예산+기금)과 교육재정으로 분류돼 있다. 분류에 따라 '다른 돈'으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재정 칸막이에 가로막혀 노인 복지, 무상 보육 등 다른 부문의 지방재정 살림은 빠듯한 상황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는 교육 수요가 많을 때는 교육부분 예산 칸막이가 큰 역할을 했는데 지금도 그런 부분이 있어 칸막이를 바로 없애는 부분은 쉽지 않다고 본다며 20.27%의 교부율이 적절한 것인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무래도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교육예산이 많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또 교육교부금을 노인복지에 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박사는 유아교육 수요가 더 줄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 부문에서도 고교 무상교육 등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인구구조의 변화추이를 감안한 교육부분의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늘어난 교부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보육예산' 논란, 정부 "1년만 참으면 되는데"

누리과정, 초등돌봄교실 등 교육예산 논란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생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누리과정과 초등돌봄교실은 지자체 사무로서 교육청이 국고지원 없이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교육감들이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는 결과가 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누리과정은 교육과 보육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을 국민과 어린이 입장에서 해결하기 위한 개혁작업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전날인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들이 "내년에는 어린이집 보육료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일침을 놓은 것이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 역시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초등돌봄교실은 시행단계부터 지자체 예산으로 추진하기로 한 사업이고 누리과정 역시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으로 지원하기로 3년 전에 합의한 사항"이라며 "지금까지 이행해 오던 것을 재정의 어려움 등으로 갑자기 국고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2012년 교육과 보육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 법률개정을 거쳐 시행한 만큼 충분한 국민적 합의를 거쳤다는 설명이다.
3년 전 유아교육법과 시행령 개정을 통해 무상교육의 범위를 만5세에서 만3세부터 5세로 확대하고 그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교육교부금에서 이들에 대한 교육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교육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이유는 내년도 교육교부금이 당초 받아야 할 금액보다 1조4000억원 감소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초 세입 예산을 기준을 교육 교부금을 이관했지만, 실제로는 세수결손이 발생하면서 약 2조7000억원이 과다하게 이관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부분을 예산에 반영해서 내년 교부금을 줄인 것이라는게 기재부의 입장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27%와 교육세를 포함한 것으로 유아 및 초·중·고교 교육 예산에 쓰이는 재원이다. 경제성장 등에 따라 내국세가 증가하면 교육교부금도 덩달아 늘어나는 한편 세수가 줄면 교부금도 줄도록 설계돼있다.
기재부는 내년 교육교부금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어 교육재정운용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감안해 지방정부가 교육채를 발행하면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통해 1조9000억원의 교육채를 인수해줄 계획이다. 교육채를 인수하면 교육교부금은 실질적으로 5000억원 늘어난다.
최 부총리는"교육감협의회의 주장은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복지부로 나눠 영역다툼을 벌이던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일시적으로 지방교육재정의 자금흐름이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1조9000억원 규모의 지방세 인수 등을 통해 지원할 예정"이라며 "국가 전체의 재정여건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시도교육감도 재정운용의 효율화를 통해 어린이교육관련 재원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 미편성' 교육감들 "보육료 대란 같은 일은 없겠지만…"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증폭된 정부와 시·도교육청들 간 갈등이 누리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 전액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교육감들의 결의로 이어졌다.
교육감협의회는 지난 7일 국회에서 내년 누리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전액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어린이집은 교육감의 교육과정 지도나 장학지도 등의 교육활동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보육기관이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 대상기관이 아닌 만큼 시·도교육청에서 예산을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감협의회 부회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8일 오전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실제로 시·도교육감들의 협의에 따라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며 "편성되지 않은 채로 (예산안이) 시의회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취임한 교육감들은 정부에 국가시책사업인 누리과정과 돌봄교실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조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교육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서 누리과정 2조1000억원, 돌봄교실 6900억원, 고교 무상교육 2420억원 등 항목을 삭제한 바 있다.
진보·보수성향의 교육감들이 한목소리로 강경한 입장을 밝힐 만큼 교육청들의 재정난은 극심한 상황이다.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39조5206억원으로 올해보다 3.3%(1조3475억원) 감소했다. 반면 교직원 인건비 1조8526억원, 누리과정 지원비 5475억원, 지방채 상환비용 2110억원 등 지출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 지방교육재정이 올해 13조1346억원보다 31.2%(4조934억원) 감소한 9조412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육감들은 예산편성 거부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정부와의 협의 가능성은 열어뒀다. 실제 어린이집 보육료 미지급 사태가 벌어질 경우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은 "큰 틀에서는 정부가 내년 어린이집 보육료 2조1000억원을 해결하고, 기재부가 내년 예산 편성할 때 이 부분을 해결해 달라는 압박"이라며 "저희는 실제 어린이집 보육대란 벌어지는 상황까지는 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3년도) 세수결손 정산분(2조7000억원)을 경기가 좋을 때로 미뤄주고, 교육부에서도 공공재정기금으로 2조원 정도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기재부의 논리만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교육감협의회의 주장은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복지부로 나눠 영역다툼을 벌이던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없다"며 "정부는 2015년도 누리과정 운영비 전액을 산정해 교부할 예정이고 교육감은 관련 법령에 따라 누리과정 예산편성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며 교육감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통일보다 어렵다는 유보통합, 어디까지 왔나

박근혜정부의 국정 과제인 유치원·보육기관(유보)통합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설립된 국무총리실 산하 유보통합위원회는 2016년까지 3단계 통합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후 논의는 답보상태다.
정부는 2016년까지 보육기관과 유치원 사이 교육과정을 통합하고 기관 인증체계 일원화 및 교사 질 향상을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두 기관에 회계기준 항목을 공통적용하고 인증제도를 연계하는 등 기초적인 통합체계를 갖추겠다는 것. 이를 통해 보육기관의 학습의 질과 안전 문제, 유치원 부족 현상 등을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통합을 위해서는 예산 추가 투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엄마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리지 않고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 만큼 양 기관의 질적 통합을 이루려면 결국 교사 처우와 인건비 문제로 귀결된다.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은 유치원에 비해 교사의 처우가 낮다. 전문대 이상 유아교육 전문교육을 받은 교사들이 근무하는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고졸이상의 학력으로도 교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어린이집 교사는 유치원 교사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급여를 받으며 일한다. 근무시간도 최소 12시간으로 유치원 교사와는 많게는 4배까지 차이가 난다.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양질의 교육서비스가 나오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립 유치원은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나온다. 어린이집은 광역단체장이 비용상한제를 걸어 비용을 제한할 수 있지만 사립유치원의 경우 원장이 수업료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정부가 아이 한명당 지원하는 보조금은 같지만 유치원은 추가 비용을 책정해 보육비를 정할 수 있다.
결국 유보통합은 정부의 막대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재원이 한정되다 보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보통합을 이끌려는 요구가 빗발친다.
어린이집은 교사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 지원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지원을 통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교사의 질을 향상해야 유보통합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치원은 경영 자율성을 요구한다. 특히 사립 유치원은 잉여금이 발생해도 이를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현 회계 기준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한 정부와 국회는 관련 입법을 미뤄둔 상태다. 관련 의원 사이에서는 "유보통합은 남북 통일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은 "정부가 재정 여건이 안돼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유보통합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어린이집 보육비, 교육청이 내는 게 맞나…관련법 살펴 보니

어린이집의 역할은 아이들(만 0~3세)을 '보육'하는 걸까, '교육'하는 걸까. 정부는 선진국 추세에 맞게 보육기관과 유치원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추진해 왔다. 단일한 커리큘럼으로 어린이집도 유치원 수준의 '교육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유보통합은 요원하지만 '보육료'를 누가 낼지 샅바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정부는 2015년부터 보육료 전액을 교육청이 감당하도록 정했고 교육감들은 일제히 '거부'를 선언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5년도 누리과정 예산 중에서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에 해당하는 2조1429억원을 전액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협의회 측은 교육감이 보육비를 감당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교육청은 그동안 왜 '보육비' 일부를 부담했을까.
2011년 5월 2일 정부는 '취학전 만 5세 아동에 대한 의무교육'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유치원 교육과정과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을 ‘만 5세 공통과정’으로 통합하겠다는 것. 정부는 유치원비와 보육비 지원액을 점차 늘려 2016년에는 전액 수준인 월 30만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른바 '무상보육'의 시작이다.
관련 재원은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맡았다. '유아교육법시행령'과 '영유아보육법시행령' 개정안에는 보육비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까지 보건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 보육비는 국고와 지방비로 부담됐다.
시행령을 통해 예산 지출 의무는 교육청으로 넘어왔지만 유보통합 관련 법령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갈등의 출발점이다. '법안 미비'라는 과도기적 상황이 교육감들에게 예산지출 거부 핑계를 준 셈이다.
유보통합은 커리큘럼 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의 질적 수준, 민간과 국·공립 시설 사이 격차를 좁혀 통합해야 하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해단체들의 명암도 엇갈렸다. 현재까지 정부도 국회도 관련 법안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교육감들은 법상 교육부 소관이 아닌 어린이집 보육료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법상 교육이나 학위와 관련된 사안에만 지출할 수 있고 보육기관은 여전히 복지부 소관인만큼 예산 지출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박재성 교육감협의회 사무국장은 "정부 말대로라며 정부 조직법상 복지부 업무도 교육부 소관으로 넘어와야 한다"며 "현재 어린이집 제반 활동에 관한 지도·감독을 복지부에서 하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예산을 낸다고 해도 교육적으로 바르게 쓰였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육감들은 학생수 감소로 교육재정 여건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기획재정부 전망에도 제동을 걸었다. 협의회 측은 2013년 세수결손 2조7000억원도 갚아나가기 힘들어 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박 국장은 "우리나라 교육 환경은 OECD 국가들에 비하면 말이 안될 정도로 열악하다"며 "정부는 스마트교육 같은 새로운 정책을 제시해 놓고 보육비까지 떠넘기면 어떻게 교육감들이 교육정책 예산을 편성하라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초·중·고 학생 수는 줄어들어도 유보통합으로 유아 인원이 추가되면 사실상 100만명 정도 학생이 늘어나는 셈"이라며 "기재부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