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미완의 광복②]일부의원·정부 "위헌소지, 증명 쉽지 않아"…19대 국회 논의도 불투명
#2010년 4월 7일 대정부질문
-박상돈 의원: 인과관계가 그렇게 확인이 될 때 이것(독립운동을 이유로 일본에 뺏긴 재산)은당연히 정부가 돌려주는 것이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 아닐까요?
-정운찬 국무총리:저는 동감입니다.
-박상돈 의원: 이것은18대 국회 내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처리해 줄 용의가 있습니까?
-정운찬 국무총리:저희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국회에서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이 독립운동을 이유로 빼앗은 재산을 다시 독립유공자에게 돌려줘야한다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논의는 아니다. 17대 국회 때 최용규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특별법을 처음 발의했다. 18대 국회 땐 박상돈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같은 법을 발의했으나 둘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 법안소위서 논의했지만…박상돈 의원 사퇴에 법안 논의도 멈춰
특별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8대 국회다. 당시 이 법은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두 번, 청원심사소위에서 한 번 논의됐다. 법을 발의한 박 전 의원과 같은 정무위 소속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의 적극적인 요구로 국가보훈처는 6개월 간 독립유공자 피탈(被奪) 재산에 대해 직접 실태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박 전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에게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이 불과 한 달 뒤인 그 해 5월 4일, 충남도지사 출마를 이유로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법안은 추진동력을 잃었다.
보훈처 조사보고서와 관련, 조사 내용이 부실하고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유족들이 반발하자 2011년 11월 김용태 의원은 보훈처에 이와 관련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약 한 달 뒤 보훈처가 입장을 정리, 제출하지만 이후 별다른 움직임 없이 18대 국회의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 독립운동 연관성 증명·민사시효 배제…특별법 둘러싼 쟁점은
특별법이 정무위를 통과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재산을 빼앗긴 경위가 독립운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증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 재산권에 대한 민사시효를 배제할 것을 요구한 점, 당시 재산을 빼앗긴 일반인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점 등도 반대이유로 꼽았다.
특별법이 처음 논의된 2008년 12월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이종정 당시 보훈처 차장은 "법안의 기본 취지에 대해서는 동감을 합니다만 보상의 여러 가지 선결조건으로서 민사시효 배제하는 문제, 국가 재정상의 과도한 부담 문제, 보상과 관련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 문제 등에 대해서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며 "관계 부서와 협의도 해 봤습니다마는 여러가지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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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법무부는 민사시효를 배제하는 것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기획재정부는 피탈 재산 여부에 대해 객관적인 증빙이 곤란하고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또 지방자치단체는 보상 관련 재원 부담이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고 덧붙였다.
법적인 토지권의 개념을 두고도 충돌했다. 보훈처는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이 일본이 1910~1918년에 실시한 토지조사사업 이후에 형성됐는데 일부 독립유공자는 그 이전의 토지를 반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당시 정무위 소속이던 고승덕 전 새누리당 의원도 2009년 2월 열린 법안소위에서 "1919년 (일제의) 임야조사령 그 당시에 사정(査定)할 때 포함되지 않은 것을 피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민법 체계상 사정에 의해서 우리나라 토지소유권이 최초로 정해졌다고 규정을 하고 있다"며 "사정하기 전까지는 과연 이게 소유권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고 전 의원은 또 증빙자료를 유족들이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보훈처 실태조사와 관련 "거의 100년 된 문서를 우리가 조사할 당시에 검증을 해야되는 문제가 생긴다"며 "하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술이 좋아 가지고 오래된 문서를 굉장히 비슷하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문서가 증거라면 그 문서를 과학적으로 진정한 것인지를 검증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접근해주기를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 유족 반발만 부른 보훈처 실태조사…19대 국회 논의도 난망
18대 국회에선 특별법 제정의 실효성이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 보훈처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실태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김세동·정인호·김필락의 후손으로 구성된 '특별법 제정 촉구모임'측이 제출한 자료가 주요 조사 대상이 됐다.
정무위는 당초 유사한 업무를 진행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실시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조사위가 이를 거부했다. 조사위가 일본 토지조사사업 이후에 형성된 소유권 개념을 근거로 활동하는 반면 독립유공자 후손은 그 이전에 형성된 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해달라고 요청, 활동이 모순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보훈처가 조사를 주도하되 조사위는 인력이나 조사방법 등에 대해 협력하는 방식으로 2009년 4월 22일부터 10월 21일까지 6개월 간 실태조사에 돌입한다. 그러나 "피탈재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보훈처의 조사 결과는 독립유공자 유족들의 반발을 불렀다. 유족들은 문서내용을 잘못 해석하는 등 부실한 조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특별법을 발의한 박상돈 전 의원도 이듬해 (2010년) 4월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조사결과를 검토했더니) 조선총독부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산을 강탈했었을 때의 논리와 똑같은 논리로 부정을 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그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제출한) 증빙자료에 대해서는 가치 비하를 시키고 반면에 조선총독부의 임야조사위원회의 자료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검토 결과에 반영을 시켰다"며 "(후손들이)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하고 있는 국가 기록물을 근거로 문제 제기를 하는데 (조사에선) '이것은 사본이니까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부정을 한다"고 비판했다.
박 전 의원은 "조사를 의뢰한 독립유공자 후손 세 명은 해당 토지의 소유권에 대해서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근거로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해당 토지가 국유지로 편입된 어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 하면서 이 사람들 재산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는 꼴"이라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김양 당시 보훈처장은 이같은 요구에 대해 "한 번 다시 검토를 하겠다"고 답했으나 이후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이 이번에 발의할 특별법 역시 이전에 발의된 법안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불거졌던 쟁점이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게다가 홍 의원은 특별법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가 아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이라 법안 논의과정을 지켜보며 보훈처에 질의를 하기도 어렵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는 시점은 사실상 오는 9월 열리는 정기국회가 마지막이다. 정무위 소속 특정 의원이 주도적으로 법 통과를 주장하는 동시에 정부가 극적인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상 19대 국회에서도 특별법 통과가 요원해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