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에 등장한 채찍, '말할 수 없는 말(馬)'

국감장에 등장한 채찍, '말할 수 없는 말(馬)'

안동현 인턴 기자
2018.11.03 04:35

[the300][2018 국감리뷰][국감장을 달군 동물들]③'동물권'에 주목하는 국회

[편집자주] 올해 국정감사장을 뜨겁게 달군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뱅갈고양이를 비롯해 동물들도 있었다. 말을 할 수 없는 동물들이지만, 이 동물들도 국감장에서 할 말이 있지 않았을까. 머니투데이 더300이 올해 국감장에서 주목 받았던 '동물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난 19일 김정재 의원은 직접 채찍을 휘두르며 경주마 복지에 대해 질의했다.
지난 19일 김정재 의원은 직접 채찍을 휘두르며 경주마 복지에 대해 질의했다.

‘퍽, 퍽, 퍽’.

국정감사 현장에서 난데없이 채찍소리가 들렸다.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19일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식품위원회 국감장에서 채찍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을 내리쳤다. 무분별한 채찍질을 당하는 말들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말할 수 없는 말(馬)'들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김 의원은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에게 ‘경마장의 말들이 지나치게 많이 맞고 있다’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경주마 복지’가 국감 안건으로 떠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국내 반려동물 수가 1000만을 넘기면서 동물복지 관심이 높아졌다"며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해 경주마 복지도 강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탁자 밑으로 손을 옮겼다. 검고 긴 물건을 꺼내 올렸다. 기수용 채찍이었다.

김 의원은 채찍으로 자신의 왼손바닥을 3, 4번 때렸다. 국감장에 가벼운 타격음이 울렸다.

“(직접) 때려봤는데 엄청나게 아프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거나 고통을 전가하는 채찍은 해외에서 지양하고 있지 않나요?”

채찍은 본래 인간과 말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나, 높은 베팅이 걸린 경주마들은 과도한 채찍질의 대상이 된다.
채찍은 본래 인간과 말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나, 높은 베팅이 걸린 경주마들은 과도한 채찍질의 대상이 된다.

◇유명무실 '채찍' 규정=한국마사회는 동물권을 보장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2012년 경마시행규정을 수정했다. 이때 채찍 횟수 규정이 생겼다. 결승전 400m전 총 25회, 연속 사용 가능횟수 총 10회로 제한됐다. 지난해 1월에는 채찍 제한 횟수가 20회로 수정됐다. 채찍에는 반드시 패드를 부착하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선 이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2014~2018년 최근 5년간 과다부당채찍으로 적발된 건수는 연도별로 150건, 125건, 131건, 454건, 335건으로 증가 추세다. 이에 따른 과태료 금액도 2014년 718만원에서 지난해 4170만원, 올 8월까지 3065만원에 달했다.

김 의원은 “위반건수가 3배 이상 늘고, 과태료도 6배씩이나 늘고 있다”며 “채찍 횟수를 줄이든 말든, 규정이 어떻든 말든, 나는 그대로 때리고 ‘달려라 말아, 나는 간다’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주 선진국에 비해 관대한 채찍 규제, 때린다고 빨라지나=결승전 400m 전까지는 아무런 규제가 없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출발부터 결승선 통과 시 까지 총 7회의 채찍 사용이 허용된다. 또한 프랑스는 총 6회, 호주는 결승 전방 100m까지 총 5회 가능하다.

한국, 홍콩, 싱가포르는 경주용 말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김 의원은 “경주당 매출액이 많고 베팅 위주의 경마가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경주용 말들엔 큰 판돈이 걸려있다. 잭팟(jackpot)에 몰두하는 경마 참여자들의 욕심 때문에 죄없는 말들이 과도한 채찍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과열된 베팅으로 인한 과도한 채찍 사용을 지양하고 말 산업육성을 통해 건강한 경마 흥미를 유도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은 동물의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경기 성적에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말의 속도는 채찍질의 횟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말 품종에 영향을 받는다. 채찍이 총 7회 허용되는 영국 경주마의 1200m 평균 기록은 1분 8초로, 1분 10초인 우리나라보다 약 2초 빠르다.

김낙산 마사회 회장은 김 의원의 지적에 "잘 알겠다"며 "말 산업 육성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경마문화 조성을 통해 농촌 발전과 국민의 여가선용에 기여하는 공기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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