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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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은 1961년생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러큐스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바로비젼'을 창업했다. 대표이사로서 2008년까지 이끌며 순수 국내 기술의 동영상 압축 솔루션을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 회장을 맡아 스마트 콘텐츠와 모바일 앱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건전한 모바일 환경 조성에 기여해 왔다. 2013년부터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 참여해 정부 R&D(연구·개발) 정책을 심의·평가하는 등 국가 ICT(정보통신기술) 및 과학기술정책 발전에 기여해 왔다. 2017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민간위원으로 국가 4차산업혁명 정책의 수립과 규제 개선 등에 주력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말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 정책 자문기구인 국민 공감 미래정책단 공동단장을 맡아 ICT정책 공약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
"디지털플랫폼정부(DPG)는 특정 정치적 신념에 기댄 정책이 아닙니다. 5년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 안착해야 합니다. 국민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불편을 느끼는 지점)를 잘 긁어주고, 공직사회도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체감하면 거스를 수 없는 정부 혁신의 흐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디플정위원회) 위원장은 이달 29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그간의 성과보다는 앞으로 1년의 과제를 강조하며 "다시 시작"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발표한 'DPG 실현계획'을 통해 국민이 DPG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공직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계획의 이행·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책임감의 표현이다. 다음은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디플정위원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고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7월 29일 디플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취임 만 1년을 앞두고 그간의 소회를 밝힌다면. ▶정부에서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과거 '노무현의 오른팔'로 불렸던 원조 '친노'(친 노무현)다. 1988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최연소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38세 나이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2008년 재선 의원을 거쳐 2010년 민주당 출신 첫 강원도지사에 당선됐지만, 6개월 만에 불법 정치자금 혐의 유죄가 확정돼 오랜 기간 정치권 밖에 머물렀다. 2020년 21대 국회 재입성에 성공해 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냈다. 지난해 7월22일부터는 국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유주의에 가까운 그의 정치 철학 때문에 전반적으로 민주당 내에서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목표지향적인 실용주의자라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야인시절이던 2016년 대표적인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에서 부원장, 원장을 역임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의 시선은 미래를 향해 있다. '노무현의 오른팔'로서 1988년 정치에 발을 디딘 36년차 정치인이지만, '구태'보다 '혁신'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국회 최초로 자율주행 로보셔틀을 도입한 그는 데이터에 기반해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AI) 국회'를 만들겠단 포부를 밝혔다. 정책감사나 기업인을 옥죄는 배임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파격적으로 들린다. "수성만 해선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다"는 게 '탐험가'를 자처하는 이 사무총장의 지론이다. 22일 취임 1년을 맞는 이 사무총장은 18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인터뷰에서 "산업화·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길을 잃었다"며 "다시 한 번 대규모 새로운 에너지가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 수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한 국가, 위기의 국민'이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정치인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대한민국 정치권을 '격투기장'에서 '기록경기장'으로 탈바꿈시키자고 그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은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 합격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거쳐 정부와 산업 현장의 소통을 도맡았던 조정의 리더십으로 정평이 났다. 경제학을 전공했던 강 회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과장, 지식경제부 에너지정책관, 대통령 지식경제비서관 등을 거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이론과 실전 경험을 두루 쌓은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그는 두터운 현장 소통 경험 덕분에 '실제 업계에서 도움이 될만한' 지원 정책을 내놓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가 회장직에 취임하자마자 정부에 건의한 '미래차지원특별법'도 현장·실용성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화두인 전기차 전환에서도 그는 현장의 애로사항을 최대한 듣고 이를 실질적인 지원 정책으로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강 회장은 "총론은 다 해놨는데 안 되는 (현장에서 지원 효과를 못보는) 경우가 많다"며 "본격적인 전기차 투자를 하는데
"자동차 업계가 100년 만에 대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십 년의 승패가 좌우될 것이다. 기업만 열심히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미래 모빌리티는 기업과 국가가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국가 간의 경쟁이다" 서초동 자동차회관 집무실에서 만난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장은 자동차보다는 '모빌리티'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내연기관차 시절과 달리 이제는 IT·AI 기술 발전과 함께 UAM(도심항공교통),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업종의 경계를 넘어 융복합이 일어나고 있어 단순히 '자동차'라는 단어로는 그 의미를 전부 담아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취임한 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로 명칭이 바뀐 것도 이같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강 회장은 2년마다 열리는 서울모터쇼의 이름도 올해부터 서울모빌리티쇼로 바꿨다. 오는 10월에 열릴 예정인 도쿄 모터쇼도 서울모빌리티쇼를 벤치마킹해 이번 회차부터는 재팬'모빌리티'쇼로 개편
롯데손해보험과 이은호 대표의 인연은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가 회사를 인수할 당시 컨설팅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2019년 인수와 함께 롯데손보호(號)에 탑승했다. 이 대표는 인시아드(INSEAD) MBA 출신으로 △올리버와이만 △AT커니코리아 △PwC컨설팅 등에서 커설턴트로 이름을 알렸다. 국내외 금융기관에 사업·채널·마케팅·해외진출 전략 수립과 프로세스 체계 설계 등 자문을 제공했다. 자신이 수립한 전략을 직접 수립하기 위해 롯데손보에 합류한 후 기획총괄 역할을 맡으며 상무와 전무(2021년)를 역임했다. 특히 장기총괄장을 맡으면서 신계약가치가 우수한 장기보장성보험 중심으로 보험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보험업 본연의 경쟁력을 높였다. 또 사업 효율화와 지급여력(RBC) 비율의 대폭 개선 등 재무건전성도 향상시켰다.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2월 롯데손보 수장에 올랐다. 새로운 롯데손보를 만들 적임자라는 평가와 분석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평소엔 부드럽지만 일할 땐 컨설턴트
"회사 내재가치를 올리기 위한 턴어라운드(조직개편·경영혁신) 노력을 지난 3년 내내 했습니다. 올해부터 조금 내세울만한 이익이 날 겁니다. 그래서 올해와 내년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언제 매각을 해도 문제가 없게 회사를 올려놨다고 자부합니다." 롯데손해보험을 롯데그룹 계열 손보사에서 '작지만 강한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 회사로 바꾸는데 1등 공신은 이은호 롯데손보 대표다. 롯데손보는 2019년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 금지 관련 법에 따라 그룹에서 분리됐고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가 품었다. 이 대표는 JKL파트너스의 롯데손보 인수와 함께 회사에 합류했다. 기획총괄 상무와 전무를 거쳐 지난해 초 CEO(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이 대표는 임원시절 뿐만 아니라 대표가 된 후에도 이익을 꾸준히 낼 수 있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계약 포트폴리오를 새로운 회계규제인 IFRS17에 맞게 정비하고, 적자를 감수하고 털어낼 것은 과감히 털어냈다. 동시에 DT(디지털전환) 작업도 꾸
김승호 보령 회장은 제약업계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경영인'으로 통한다. 보령약국 문을 연 1957년부터 약을 구하러 서울 시내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보령의 성실과 신뢰를 나타내는 상징이 됐다. 경영인의 입장에서 적정 가격을 지키는 동시에 다양한 약품을 갖추는 정책, 즉 '구색'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서였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약품의 수가 많지 않았고 외화가 귀해 해외에서 약품을 들여오기도 쉽지 않은 전후시절이었다. 아무리 적당한 가격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려 해도 고객이 원하는 약품이 없으면 허사였다. 결국 직접 페달을 밟는게 최선이었다. 가장 답답한 것은 몸이 아파 약을 구하러 왔는데, 그 약을 갖추지 못했을 때였다고 한다. 김 회장은 "바로 그 순간이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 했던 때"라며 "당연히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계절에 관계없이 온 몸에 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보령약국이 도매상으로 커지면서부턴 그가 직접 페달을 밟진
"어려웠던 시절, 그나마 약을 살수 있다면 다행이었습니다.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산속 깊이 들어가 약으로 쓸 만한 풀을 캤습니다. 살면서 저도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들이 병마와 싸우는 동안, 산에 올라 약으로 쓸 만한 풀을 베어오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제약업에 종사한 지 60년을 넘긴 지금도 그 마음은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전쟁 직후 집을 팔아 마련한 돈 300만환(현재 기준 4000만원)으로 종로 5가에 세를 얻어 마련한 3평 규모의 보령약국을 오늘날 연 매출 약 8000억원의 한국 대표 제약기업 '보령'으로 일으킨 김승호 회장. 해외 제약사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한국 대표 의약품으로 키워낸 용각산, 겔포스부터 국내 제약사가 직접 개발한 신약 가운데 최대 매출을 올리는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까지 그가 보령의 회장으로서 걸어온 길은 제약산업의 역사 자체였다. 올해로 92세. 지금도 인류가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날을 꿈꾼다는 김 회장은 보령약국에서
"취업난, 양극화와 같은 문제는 청년들의 책임이 아니기에 사회의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다만 저는 운명을 믿지 않습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은 없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제약기업 보령의 본사 김승호 회장실. 2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던 구순(九旬)을 훌쩍 넘은 경영인의 눈빛은 '청년'이란 단어엔 가벼운 요동이 있었다. 김승호 회장은 1932년생으로 제약업계 1세대 원로다. 그럼에도 8시30분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한다. 그는 "아흔이 넘은 나는 인생의 마침표가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라면서도 "여생 동안 무엇을 해야할지 가늠해봐야 하는 나이가 됐지만, 내일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꿀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 꿈이 나만의 꿈이 아니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꿈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구십 늙은이의 마음이 다음 세대의 마음에 가닿아 새로운 꿈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학도병으로
"'외래 관광객 1000만명 유치'란 도전적인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사진)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올해 인바운드(외국인의 한국 여행) 전망과 관련해 "'K-컬처와 관광의 융합'을 통해 방한 관광 목표를 달성하겠다"며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대비 60% 수준에 맞춘 '1000만명'이란 규모는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의 단체 방한관광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김 사장은 "기존 한류를 넘어 세계적 문화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K-컬처 인기는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대단하다"면서 "K-컬처의 대명사인 한국의 드라마와 음식, 패션, 뷰티, 웹툰 등은 다양한 콘텐츠를 앞세워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K-컬처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한국을 여행하고 싶은 수요로 전환시키기 위해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