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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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템임플란트 사건은 '내부회계관리제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제도를 강력하게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CEO(최고경영자)와 대주주의 의지가 부실하다면 통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쉽게 일어난다. 공모·위조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설계가 잘된 내부통제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22년 새해 첫 거래일 오스템임플란트에서 1880억원 상당의 횡령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시가총액 2조원대에 연결재무제표상 자산이 1조2000억원대, 연간 매출이 8200억원대에 달하는 기업에서 일어났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구멍이 발생한 터라 충격이 컸다.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내부회계관리제도 규정상 중간 관리자, 경영진, 감사·감사위원회 등 3중 검증을 거치고 나서야 회계법인이 이 내부통제 시스템의 감사를 진행한다"며 "오스템임플란트에서는 이같은 통제 포인트 운영이 안됐던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내부회계관리제도가 강력하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부처 내에서 '형님 리더십의 화신'으로 통한다. 그만큼 후배들 사이에서 덕망이 높다. 업무 전문성에 청렴함까지 갖춰 흠 잡기가 어렵다는 평가다. 지난해 5월 인사청문회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김웅 의원이 안 장관을 두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행정고시 33회로 1989년 공직에 입문한 안 장관은 고용부에서만 34년째를 보내고 있는 '정통 노동 관료'다. 고용부의 3대 핵심 분야라 할 수 있는 고용정책실, 노동정책실, 산업안전보건국(현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주요 보직을 모두 거쳤다. 두 차례의 지방청장 경험을 쌓았을 뿐 아니라 대변인, 국제협력관 등을 역임하며 대내외 소통 능력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을 맡아 코로나19(COVID-19) 사태 속 자칫 갈등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노사가 사회적 대화를 꾸준하게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상 사진을 찍는데도 웃는 표정을 지을 수가 없네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달 25일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만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굳은 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했다. 2주 전 광주 화정동에서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지며 6명이 매몰된 사건의 구조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을 맡은 안 장관은 광주와 세종, 서울을 오가며 수습을 진두지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안 장관은 이 같은 인명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후진적인 문화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건설공사 하도급 과정의 저가수주 등 제도적 문제 외에도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안 장관은 중대재해처벌 시행에 대해 너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이번 광주 사고를 계기로 온 국민이 산업안전에 깊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 장관과의 일문일답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광주 아파트 붕괴사
"한부모가족, 위기청소년, 성범죄피해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데 일정 성과를 거둔 것이 보람된 순간입니다." 2020년 12월 말 취임한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사진)은 취임 1년 소회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정 장관은 "여성·가족·청소년 등 정책대상을 직접 만나 어떠한 점이 개선돼야 하는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서 "앞으로 더 좋은 여건 속에서 여가부에 기대하는 바가 더 충실하게 추진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국내 여성학 박사 1호'다. 그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와 여성학 박사를 취득했다. '산업화와 여성노동', '젠더와 노동', '노동시간 단축과 성별분업의 변화' 등 관련 논문과 저술도 다수 있다. 정 장관은 학계, 행정 분야 경험도 두루 갖췄다. 충청북도 여성정책관, 한국여성재단 이사,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대통령비서실 균형인사비서관 및 인사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가부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유효하다고 말한다. 성차별 문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다방면에 잔존해있고 여전히 해결과제다.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등 젠더폭력의 유형은 다양화되고 있다. 촘촘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정 장관이 2020년 12월 취임하면서 맞은 대내외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전임 장관 시절 공공기관장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성별인식격차가 갈등 양상으로 번졌고, 젠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여가부는 매번 지탄의 대상이 됐다.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권한이 한정돼있는 여가부로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가부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정 장관은 정부조직이 만들어진 이유에 주목한다. 그가 말하는 정부조직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역할이다. 성평등이라는 가치는 여성과 남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 청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재직 시절 연구자 중 처음으로 독도 지형의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 연구를 추진했다. 일본과 외교적 갈등이 첨예했고 무엇보다 독도는 지형이 험하고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 많아 위험천만한 연구였다. 다들 말렸지만 한번 마음 먹은 연구는 해내고야 마는 굳은 의지와 근성으로 밀어붙여 지금은 지질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이사장은 1988년부터 지질원 연구원으로 재직, 토질연구 한길을 30년 넘게 걸었다. 지질자원연 원장으로 재직할 무렵인 2018년엔 한반도 지진분석, 날씨와 미세먼지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사회문제 해결형 R&D(연구·개발)를 일찍이 추진했고 지질자원 분야에 AI(인공지능)·빅데이터 연구를 접목하는 등 미래 선진형 연구 개척에도 힘썼다. 김 이사장은 NST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에 '복타임'이라는 소규모 직원 간담회를 소모임처럼 꾸려간다. 지난해 7월부터 약 5개월간 140여명의 직원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를 융합연구 중심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난치성암 치료기술 1545억원, 백신후보물질 개발 337억원, 각각 면역치료제융합연구단과 감염병대응융합연구단이 일궈낸 대형 기술이전 성과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간판사업인 '융합연구단'이 연이은 잭팟을 터뜨렸다. 김복철 이사장은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와의 신년인터뷰에서 "기존 융합연구모델과 함께 올해는 개발완료 시 경쟁기술 대비 10배 이상 우위를 확보해 전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도약형융합연구사업'(가칭)을 신설하는 등 융합이 일상화하는 연구기반을 구축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NST는 과학기술분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을 지원·관리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7월 선임돼 최근 임기 3년의 경영기획서를 완성했다는 김 이사장에게 2021년은 워밍업이었고 본게임은 올해부터다.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장기화 △미중 기술패권 경쟁 △GVC(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재편 △기후위기 대응 등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은 30년 간 ICT(정보통신기술) 부처 요직을 두루 섭렵한 한국 ICT 정책의 산증인이다. 전 원장은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와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정보통신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행정고시 34회로 공직에 입문해 정보통신부 법무담당관과 방송통신위원회 정책총괄과장·국제협력관, 미래창조과학부 전파정책국장·대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전파·통신 등 ICT분야 전반에 걸쳐 뛰어난 전문성과 업무추진력을 갖췄으며 폭넓은 안목과 리더십을 겸비했다는 게 전 원장을 향한 관가와 관련 업계의 인물평이다. 올해 1월에는 IITP 원장을 맡으면서 핵심 추진 과제로 △디지털 전환에 대응한 ICT 연구개발(R&D) 핵심기술 확보 △개방·자율·협업 중심의 기획·평가·관리체계 혁신 △주요 ICT분야의 석·박사급 인재양성 강화 등을 꼽았다. 취임사에선 "국가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2016년 알파고가 바둑 한판을 둘 때 소모한 전력은 일반 가정집 100가구가 하루에 쓰는 전력사용량과 비슷하다. 집집마다 모두가 인공지능(AI)을 쓰게 된다고 생각해보라. 지금 같은 구조로는 전기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난 24일 만난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은 '디지털 대전환'으로 일상 곳곳에 AI와 슈퍼컴퓨터가 적용된다면 정보통신기술(ICT)이 '전기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저전력 처리 기술과 AI 기반 에너지 최적화 등 탄소중립 기술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원장은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조류로 인해 내년부터는 ICT분야를 넘어 일반 산업계로 '디지털 대전환'이 이뤄지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디지털 대전환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닌, 산업과 사회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대전환의 시작"이라며 "ICT 분야에서의 R&D는 혁신을 이끌고 갈 엔진 역할을 할 것"이라
김정기 우리카드 대표는 우리금융그룹 내부에서 '전략통'으로 꼽힌다. 1989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사한 그는 실제로 전략과 관련한 부서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2011년에는 우리은행 전략기획 부장을 역임했으며, 2016년에는 개인영업전략부 본부장을 맡았다. 2012년 우리은행 전략기획부장 당시, 통합 운용 금융센터 모델을 도입했다. 기업과 리테일 부문의 시너지 창출을 목적으로 영업 채널을 합친 것이다. 금융센터 안에 본래 지점장 외 기업지점장을 별도로 두고 기업 영업을 벌이도록 했다. 2020년에는 우리금융지주에서 사업관리부문 부사장을 맡았다. 사업관리부문은 자산관리총괄, 글로벌총괄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결합해 시너지를 내도록 사업전략을 세우는 조직이다. 김 대표는 야전 경험을 거치며 조직과 인력 관리 경험도 쌓았다. 2009년 서울 신청담지점장을 비롯해 2014년 강동강원영업본부장, 2017년에는 영업지원부문 겸 HR그룹 부문장을 맡았다. 우리은행장 후보군에
"우리카드를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금융 종합 결제 회사로 도약시키겠다." 김정기 우리카드 대표는 회사의 미래를 데이터에서 찾았다. 본업인 신용판매에서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는 상황을 데이터를 활용해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고객과 가맹점에 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잘 분석하느냐가 결제회사의 최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최근 독자 가맹점 구축을 추진한 이유도 데이터를 갖기 위해서다. 고객과 가맹점의 결제정보를 낱낱이 파헤쳐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다른 결제회사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파악해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자동차 금융 역시 궁극적 목표는 데이터에 있다. 할부금융을 통한 이자 수익은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커넥티드카가 보편화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된다면 결국 데이터가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그를 만나 우리카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의 제2차 고도성장기를 이끌 AI(인공지능) 인재 10만명 등 기술인력 양성에 폴리텍대학이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 17일 만난 조재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4차산업혁명을 맞아 기술기반 인재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며 "폴리텍대학이 첨단기술인력 육성의 최전선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조 이사장은 "중국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는데 코딩 등을 보편교육으로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우리나라도 70년대 산업기술을 배워 빈국에서 부국으로 가는 경제성장전략을 썼듯 AI등의 첨단기술을 통해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지고 은퇴 연령이 늦춰지면서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날 경우 우리나라가 2차 고도성장기를 맞을 수 있다며 이에 필요한 기술인력 확보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978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조 이사장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전국 대학교 강사노조 조직을 주도했다. 고려대 노동연구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