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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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 분야는 지원이 더 강화되고 집중력이 발휘돼야 한다. 많은 기능과 재원을 배분해 주면 다른 부처나 어떤 산업보다도 빠르게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조직이 축소되면 오히려 미래 성장동력에 타격을 주는 심각한 우를 범하는 것이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30년 넘게 해양·수산 현장을 누비며 쌓은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해묵은 ‘존폐론’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해수부 조직개편 논의는 부처가 출범한 1996년 이후부터 정권 교체 시기만 되면 빠지지 않고 나왔다. 지난 정부에서는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조직이 쪼개지기도 했다. 김 장관은 당시를 해양·수산 분야의 심각한 정책적 공백기로 봤다. 김 장관은 “그 기간에 산업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상당한 흠결이 있었다”며 “산업이 융복합될 때 미래산업이 창출되는데 여기 저기 흩어놓아 버리면 당장 아무도 챙기지 않아 방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융복합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모든 산업을 아
#. 남성 위주 문화가 자리 잡고 있던 문민정부(김영삼정부) 시절 남녀 균등 정책이 첫발을 뗐다. 1996년 직급별(5~9급)로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한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처음으로 시행됐다. 이 제도는 공직 사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 여풍이 시작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는 시행 전부터 사회적 논란을 몰고 왔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 교원 임용시험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무원시험에서 남성 합격자들이 많았다. 남성들이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역차별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정책을 만들던 총무처(현 인사혁신처)로 비난이 폭주했다. 정책 실무를 담당하던 인사정책과 주무 사무관에게 인신공격까지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딸만 둘이었다. 딸 때문에 이 같은 정책을 만든다는 온갖 말들이 나왔다. 이전에도 양성 균등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진정성이 오해를 받자 결국 어린 두 딸에게 “절대로 공무원이 되지 말라”고 당부
효성그룹의 IT전문 계열사 효성ITX를 이끄는 남경환 대표는 원래 '상사맨'이다. 남 대표는 과거 효성그룹의 모기업으로 효성에 합병된 효성물산에서 1991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효성ITX 대표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업무생활 대부분도 중국에서 했다. 1995년 효성물산 상하이지사로 발령받아 8년간 철강제품을 현지에 팔았다. 1998년 외환위기도 중국에서 겪었다. 남 대표는 "상사 업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며 "잡초처럼 살았다"고 말했다. 수출 품목을 개발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맡게 되는 일들은 늘 이전에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상사맨이 IT전문 업체를 이끌게 된 것에 대해 남 대표는 "IT사업도 효성그룹에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는 그룹의 방향성이 본인의 인생 역정과 맞아 떨어졌다는 뜻이다. 술자리가 잦은 상사맨이지만, 남 대표는 역설적으로 술을 못 한다. 상하이 근무 시절, 바이어들
2015년 중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계열사 효성ITX 팀장급 인원 3명을 긴급히 호출했다. 권순욱, 이준섭 팀장 등이 조 사장의 지시에 따라 비밀리에 미국 실리콘밸리로 따라나섰다. 조 회장은 일주일 이상 현지에 머무르면서 미국의 보안 스타트업 1위 기업인 태니엄(Tanium)의 국내 총판 계약을 따는데 성공했다. 사마 테크놀로지(Samma Technology)와 맺은 기술제휴도 조 회장의 작품이다. 효성ITX는 글로벌 빅데이터 솔루션 업체인 사마와 협력해 데이터 분석 역량을 계열사나 타 그룹 고객사에 컨설팅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이고 있다. 조 회장은 콜센터 사업으로 시작한 이 회사를 고객들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IT(정보기술) 솔루션 기업으로 직접 바꿔가는 것이다. 지난 20일 서울 양평동 본사에서 만난 남경환 효성ITX 대표는 "IT와 전통적 제조업을 결합해 '4차 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조현준 회장이 꿈꾸는 효성그룹의 미래"라며 "그룹의 진화 과정에서 새 가치를 효성
“지주회사 전환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과제다. 지금은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현재 지배구조 체제에서 은행과 비은행 자회사, 또 자회사들 사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집중하겠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최근 화제가 된 지주회사 전환 문제에 대해 “비은행 부문의 이익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2.2%였는데 이를 20% 이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면서 지주회사의 장단점을 장기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행장의 3년 임기 내에 지주회사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기업은행의 개별기준 총자산은 지난해 3분기말 기준 237조1390억원으로 IBK캐피탈, IBK투자증권 등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기준 총자산 256조6530억원 가운데 92.4%를 차지하고 있다. 당기순이익도 지난해 3분기말 누적 8336억원으로 일반자회사와 특수목적법인 등 모든 자회사가 벌어들인 순익의 4배가 넘는다.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용·노사 전문가다. 1981년 행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36년간 노동·고용·노사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팠다. 평소 온화한 성품이지만 업무는 치밀하고 꼼꼼하다. 남다른 추진력과 균형 감각으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동·노사 분야에서 성공적인 정책을 많이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주5일근무제 도입 당시 노사정위원회 운영국장을 맡아 주5일제의 단계적 시행 합의를 주도했다. 2009년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을 지낼 때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으로 연결시켰다. 2012년 8월에는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으로 부임해서는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학교생활의 고민을 귀담아듣는 친구 같은 ‘총장’으로 인기가 높았다. 중간·기말고사 때마다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 줘 ‘떡볶이 총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장관 특유의 소탈하고 격의 없는 소통 스타일을 드러낼 때 곧잘 회자되
“취임해서 지금까지 ‘노동개혁’에 올인했다. 이제 ‘6부 능선’에 와 있다. 고비를 넘겨 마무리 하느냐, 못하느냐의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마지막까지 주어진 책무를 다하겠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올해 1분기 최악의 고용절벽이 예고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 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자리 장관’의 책임감이 그대로 와 닿았다. 경기회복의 온기가 여전히 미약한 상황에서 주력산업의 구조조정, 정년 60세 의무화에 따른 신규 일자리 축소,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인한 서비스업 위축 등 악재가 겹쳐 일자리 여건은 악화일로다. 이 장관은 이런 시점에서 고용시장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가장 시급한 게 노동개혁 입법이라고 역설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파견법 노동개혁 4법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 근로기준법 우선 처리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에게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소신을 꺾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이 장관은 개의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제주도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원희룡 제주도지사(사진)의 볼이 빨갰다. 새벽 2~5시 서울 가락시장을 찾아 찬 바람을 맞은 탓이다. 시장 경매장에서 제주도 감귤의 경매 현장을 보고 가격 형성 과정과 입찰 반응을 체크했다고 한다. 원 지사는 "경매도 직접 해보고 관계자들과 함께 매운탕도 한 그릇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울과 제주도를 수시로 오가며 도정을 챙기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요즘 편치 못하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새누리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분당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게는 부양가족이 있다"며 제주도정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나타내면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라며 당의 진로에 대해 많은 걱정을 털어놨다. 지난 2000년 16대 국회부터 남경필 경기도지사, 비박계 중진인 정병국 의원 등과 함께 '남·원·정'으로 불리며 원조 쇄신파로 당에 혁신의 DNA를 불어넣었던 그다. 원 지사는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파동이나
김수현 서울연구원 원장(54)은 사회참여형 학자로 평가 받는다. 서울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생때부터 달동네와 판자촌을 누비면서 도시빈민운동과 철거반대운동에 참여했다. 사회적약자의 주거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30대에는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사회빈곤 문제를 주로 연구했다. 국민의정부 대통령자문기구인 '삶의 질 향상기획단'에 참여하면서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참여정부에서는 국정과제비서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부동산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정권 말기 환경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무리했다. 참여정부때의 일을 영광이자 상처로 회상했다. 폭등하는 부동산을 잡으려 최선을 다 했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김 원장은 당시 부동산 상황에 대해 "돌이켜 보면 고도성장기 주택문제의 제일 끝단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세계 자본시장이 통합되면서 국내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했고 돈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유럽과 미
"내년 주택가격은 횡보합세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공급과잉, 자영업자 부채, 금리인상 우려에 조기 대선 변수까지 겹쳐 집값이 오를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내년 이후 하향안정화가 되면 실수요자는 그때쯤 집을 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시의 정책을 연구·개발하는 산하기관인 서울연구원의 김수현 원장은 내년 부동산시장을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청와대 비서관, 대학교수 등을 지내며 줄곧 부동산정책과 시장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올해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던 집값은 어느 순간 서서히 회복돼 전고점에 다다랐다. 특히 강남 아파트 값이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개포, 반포 등 재건축단지들은 한 달 새 2억~3억원이 오르기도 했다. 강북이나 수도권 신도시는 물론이고 부산 등 일부 지방에서도 집값 상승세는 이어졌다. 김 원장은 앞으로 집값이 오를 요인들이 사라졌다고 분석하면서도 서울 강남에 대해서는 "일종의 프리미엄 시
키타바타 히데유키 니콘이미징코리아 대표(사진)에게 한국은 낯설지 않다. 한국법인 대표로 부임하기 직전 근무지인 중국(니콘차이나)으로 가기 앞서 일본 본사에서 사업 전략 본부장을 지내며 한국 시장을 담당했었다. 당시 여덟 차례 정도 한국을 찾은 적도 있다. 그는 자타공인 카메라 광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 기종만 네 가지다. 니콘 D600·D7100·D5300·니콘1 J5 등 DSLR(디지털일안반사식카메라)과 미러리스를 가리지 않는다. 소장하고 있는 렌즈도 10여종이 넘는다. 니콘의 신작 액션캠인 “‘키미션360’을 갖고 싶다”는 의욕도 숨기지 않았다. 한국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생긴 취미는 ‘주말 고궁 나들이’. 덕수궁, 창경궁, 경복궁 등 어지간한 고궁은 이미 다 접수했다. 사람보다는 풍경 사진을 담는 것을 좋아해 광각렌즈 사용을 즐긴다. 니콘의 NIKKOR 14-24mm f/2.8G ED 렌즈가 주로 그의 카메라에 장착된다. 사진에 담기는 넓은 화각처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입니다. 시장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카메라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담을 때 항상 지표를 제시하는 전략 시장이죠.” 니콘이미징코리아 키타바타 히데유키(北端秀行) 대표는 한국 시장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중국법인(니콘차이나) 부사장을 맡다 올해 3월 니콘이미징코리아로 옮겨 한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키타바타 대표는 “중국 사용자들은 남들이 먼저 쓰는 걸 보고 좋다는 반응들이 나올 때야 제품을 구입할 정도로 신중하지만, 한국에선 신제품을 남보다 일찍 싶어하는 얼리어답터도 많고 소비패턴 변화 역시 무척 빠르다”며 “한국 시장에선 신속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카메라 명가(名家) 니콘은 내년으로 창사 100돌을 맞는다. 1917년 전신인 일본광학을 세워 현미경, 망원경 등의 제품을 생산해 오다 1945년부터 광학 기술을 바탕으로 오로지 카메라 사업에만 주력해온 게 70여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한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