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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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20일. 빙하시대에 존재했던 고대 식물이 꽃을 피웠다. 약 3만년이란 세월을 보낸 후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꽃의 이름은 석죽과 '실레네 스테노필라'. '고대 시간'을 품고 있는 실레네 스테노필라는 지금도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씨앗 아닌 '조직'에서 다시 피어난 꽃━2000년대 후반 러시아 북동부 시베리아 콜리마 강 유역을 연구하던 러시아 과학자들은 지하 40m, 영하 7도의 동토층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다람쥐가 굴을 파고 묻어놓은 수천개의 열매와 씨앗들이 썩지 않은 채 보존돼 있던 것이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스베틀라나 야시나와 데이비드 길리친스키가 이끄는 연구팀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이용해 열매가 3만1800년 이상 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류가 아직 구석기 시대를 살던 시기다. 연구팀은 씨앗을 직접 발아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에 얼어붙은 열매 내부 태반 조직을 분리해 무균 상태에서 배양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결과 영하의 동토층에 묻혀 있던 조직은 실험실에서 천천히 해동됐고 배양액 속에서 세포 분열을 시작했다.
5년 전인 2021년 2월19일. 경북 구미에서 세 살배기 딸을 수개월간 방치해 숨지게 한 22세 여성 김모씨가 검찰에 넘겨졌다. 단전된 집에서 최소 3개월가량 방치된 끝에 숨진 A양은 외할머니 석모씨(당시 48세)에 의해 뒤늦게 발견됐다. '친모 아동학대 살해'로 끝날뻔했던 이 사건은 A양이 김씨가 아닌 석씨 딸이라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서 반전을 맞게 된다. 검찰은 석씨가 자신과 비슷한 시기 출산한 딸(김씨) 아이와 자기 아이(A양)를 바꿔치기했다고 봤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석씨가 끝까지 출산을 부인하면서 사라진 김씨 아이 생사는 물론 행방까지 미제로 남게 됐다. ━ 석씨-A양 친자 확률 99. 9999%…'이부자매' 김씨는 징역 20년━2년여 동안 5번에 걸친 재판과 검경 수사로 입증된 사실은 석씨 둘째 딸 김씨의 방임 행위뿐이었다. 김씨는 2018년 3월30일 오후 12시56분 병원에서 3. 485㎏ 여아 B양을 낳았지만 어떤 이유로 바뀐지 알 수 없는 모친 석씨가 낳은 A양을 자신의 딸(B양)로 알고 키웠다.
'사망자 192명. '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을 지나던 1079호 열차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회사와 학교로 향하던 대구 시민의 평범한 화요일이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192명이 목숨을 잃고 151명이 다친 이 비극은 대한민국 안전 시스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인재(人災)'였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기록된 이날의 비극은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에서 시작됐다. 뇌졸중 후유증과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당시 56세)은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혼자 죽기 억울하다"며 불을 지른 뒤 목숨을 끊기로 마음을 먹고 샴푸통에 담은 휘발유 2리터를 들고 지하철에 탔다. 당시 김대한은 라이터로 불을 붙였는데, 잘 켜지지 않았다. 이에 맞은편 승객이 "왜 불을 켜려고 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라이터가 켜지면서 불이 붙어 김대한의 옷에 옮겨 붙었고, 그는 당황해 휘발유 통을 바닥에 던졌다.
2013년 2월 17일. 인천에서 70대 할머니가 밀린 월세를 받으려고 세입자의 아파트를 방문했다가 실종 23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용의자로 지목됐던 50대 남성 세입자는 경찰에 쫓기자 야산 나뭇가지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5개월 치 월세금 150만원이었다. ━5개월간 월세 안 낸 세입자 찾아…돌아오지 않은 할머니━사건은 2013년 1월 26일 벌어졌다. 인천 중구 신흥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 살던 70대 할머니 A씨(당시 73세)는 가족들에게 "세입자에게 밀린 월세를 받아 온다"며 집을 나섰다. A씨가 찾아간 세입자는 인천 남구 용현동에 위치한 아파트에 거주한 50대 남성 B씨(당시 58세)였다. B씨는 전 세입자의 소개로 A씨의 아파트에 2012년 9월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원에 입주했다. 그러나 5개월간 한 번도 월세를 내지 않았다. A씨는 당시 휴대전화가 없었던 B씨를 찾아가 두세 차례 월세를 요구했는데도 받지 못하자 '직접 찾아가 받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23년 2월16일. 아내를 살해한 뒤 충남 태안군 한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강모씨(당시 38세)가 필리핀에서 검거됐다. 이 사건은 2023년 1월25일 '직장 동료가 설 연휴 이후 출근하지 않는다'는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서 드러났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저수지 인근에서 피해자 휴대전화 위치정보 시스템(GPS)이 끊겨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일대를 수색했고 같은 해 1월31일 얼어붙은 저수지 아래에서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가방에는 피해자 시신과 돌이 잔뜩 들어있었다. ━저수지 인근서 50분 머문 뒤 홀로 출국…수상한 남편 행적━가방에서 나온 시신은 강씨 아내 A씨였다. 시신에는 복부에 커다랗게 베인 흔적과 10여군데 찔린 흔적이 있었지만 자상은 모두 사후 생긴 것이었고 직접적 사인은 질식사였다. 목에서는 가는 끈으로 감아 뒤에서 당긴 형태의 삭흔이 발견됐다. 경찰이 주변 CC(폐쇄회로)TV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남편 강씨 차량이 저수지 부근 800m밖에 안 되는 거리 사이에서 50여 분간 머문 사실이 확인됐다.
2011년 2월 15일 오전. 12년 전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상자에 넣어 자택에 보관해 온 50대 남성 이모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뒤늦게 시신을 발견한 딸이 경찰에 신고한 지 사흘 만이었다. 흉기 살인으로 이어진 부부싸움의 발단은 이사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문제였다. 딸은 짐 정리하다 발견한 상자를 뜯어보기 전까지 어머니가 가출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 이사 가기 싫어한다고…말다툼하다 아내 흉기 살해━사건은 1999년 6월 19일 밤 11시쯤 발생했다. 당시 이씨 부부는 이사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다. 서울 성동구에 살던 이들은 다음날 용산구 한 다세대주택 1층 단칸방으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왜 더 좁은 집으로 가냐"고 버티며 이사를 거부했다. 격분한 이씨는 흉기로 아내 목 부위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이후 시신을 약 1m 높이 상자에 넣고 비닐과 단열재 등으로 감싸 밀봉했다. 아침이 밝자 이씨는 예정대로 이사를 진행했다. 시신이 담긴 상자도 이삿짐에 묻혀 새집으로 옮겨졌다.
"피고 안중근은 사형에 처한다. " 1910년 2월14일 중국 랴오닝성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 마나베 주조 재판장은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첫 공판이 열린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결론이었다. 안중근은 재판부에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를 살해한 미우라는 무죄, 이토를 쏴 죽인 나는 사형, 대체 일본법은 왜 이리 엉망이란 말이냐"고 따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어떤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탕탕탕! "코레아 우라"…하얼빈서 터진 외침━이토는 1909년 10월26일 안중근에 의해 사살됐다. 안중근은 러시아제국 재무대신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을 위해 하얼빈역을 찾은 이토를 향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안중근이 쏜 권총 3발은 정확히 이토의 몸을 관통했다. 이토는 30분 만에 숨졌다. 이토의 얼굴을 몰랐던 안중근은 이토와 동행한 가와카미 도시히코 하얼빈 총영사, 모리 야스지로 궁내대신 비서관, 다나카 세이지로 남만주철도 이사를 향해서도 발포했지만, 사살엔 실패했다.
지난해 2월12일 오후 7시, 36세 남성 A씨가 경기 시흥시 거모동 인근 편의점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C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렀다. 편의점 안에 있던 두 명의 손님이 막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C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음 날 숨을 거뒀다. A씨는 이미 10분 전 자신의 의붓형을 살해하고 나온 상태였다. 형 역시 같은 방식으로 숨졌다. 당시 집 안에 있던 모친은 A씨가 의붓형에게 휘두르는 흉기를 막다가 부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형이 나한테 욕설을 했다" "화가 나서 그랬다"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질환 앓고 있던 A씨, 임의로 단약한 상태…순식간에 피해자 3명━ A씨는 2024년 4월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는 약을 먹다가 임의로 단약한 시기부터 모친, 의붓아버지, 의붓형 B씨와 한집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오후 6시50분쯤 A씨는 의붓형이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며 흉기를 휘둘렀다. 모친이 막으려 했지만, 손에 부상을 입었고 형은 A씨가 수차례 휘두른 흉기에 사망했다.
2007년 2월 11일 일요일 새벽,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이 나 갇혀 있던 외국인 수용자 10명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곳 수용자들은 여수와 순천, 광양 등지에서 불법체류나 밀입국 등의 혐의로 붙잡혀 온 외국인들로 조사를 받은 뒤 본국으로 강제송환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불 났는데 문은 안 열렸다━불은 이날 오전 3시 55분쯤 청사 3층 보호동 304호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청사 3층 보호동에는 외국인 51명이, 4층 보호동에는 4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5명은 각각 감시실(3층)과 상황실(2층)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불이 나자 같은 층에 위치한 감시실에서 근무하던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 3명이 소화기 3대를 사용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외부 잠금장치를 열지 않은 채 문 밖에서 진화작업을 벌인 탓에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304호실 내 TV까지 소화기 분말이 미치지 못했다. 불길은 305호로 번져나갔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측은 자체 진화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119에 신고했다.
2011년 2월10일. 대법원은 공무원인 50대 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살해한 20대 아들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아들은 법원에서 '심신 미약'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네에서 효도하는 청년이자 건실한 청년으로 알려진 이 아들은 왜 부모를 살해했을까. ━크리스마스이브에 벌어진 비극━아들 A씨 아버지 B씨는 2009년 12월24일 오후 동료 직원들과 회식을 한 뒤 오후 8시쯤 집에 왔다. 그는 다음 날 오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를 하던 중 선천성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아내 C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당일 오후 10시쯤 집에 온 A씨는 어머니 C씨가 울고 있자 "왜 엄마를 힘들게 하느냐. 그만 좀 괴롭혀라"고 아버지 B씨에게 따졌다. 이내 말다툼으로 번졌고 B씨는 "너나 잘해라"라며 여러 차례 뺨을 때렸다. 격분한 A씨는 거실에 있던 골프채와 둔기로 B씨를 때려 살해했다. 이후 A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C씨가 알게 될까 봐 흉기로 주방에 있던 어머니마저 살해했다.
26년 전인 2000년 2월9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에서 시체 방부처리에 쓰이는 포르말린 20상자가 싱크대에 버려졌다. 유독물질인 포르말린은 아무런 정화 처리 없이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유입됐다. 이를 지시한 사람은 당시 영안실 책임자였던 육군 군무원 앨버트 L. 맥팔랜드. 그는 "주요 식수원인 한강에 그런 용액을 버릴 순 없다"며 명령을 거부한 부하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실행을 종용했다. 내부 고발자 양심고백으로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2006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의 모티프가 됐다. ━ "바보, 시키는 대로 해"…명령 거부 하급자에 욕설·폭언━2000년 7월13일 환경단체 녹색연합과 사회단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주한미군이 5개월 전 미 육군 제8군 용산기지 영안실에서 475㎖짜리 포르말린 470~480병을 아무런 정화 처리 없이 한강에 무단 방류했다고 폭로했다. 포르말린은 포름알데히드를 35~40% 농도로 물에 녹인 수용액이다. 독성이 강해 흡입·섭취 시 중추신경 등 주요 기관에 장애를 일으켜 유해 화학물질이자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꿈의 초특급열차. ' 1969년 2월8일 오후 1시 20분. 대한민국 철도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시운전'이 시작됐다. 한국전쟁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 시절 산업화 기지개를 켜던 대한민국이 야심 차게 준비한 초호화 특급 열차 '관광호'가 서울역에서 부산을 향해 첫 운행을 시작했다. 관광호는 단순한 신규 열차 도입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을 꿈꾸던 한국 사회 열망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문화적 충격, 에어컨·리클라이너 탑재한 '달리는 궁전'━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개통된 일본 신칸센은 한국인들에게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이에 자극받은 한국 정부와 철도청은 관광호 도입을 추진했다. 일본에서 수입한 열차였지만 운행 방식과 내부 구성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관광호는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기관차 전면부는 당시 세계 최고 고속열차였던 일본 '신칸센'을 본떠 둥그스름한 유선형으로 개조됐다. 기존의 각지고 투박한 열차와는 차별화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