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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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16년 전 오늘 228명을 태운 에어프랑스 447편이 대서양으로 추락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 2009년 6월 1일 오전 11시 15분(이하 현지시간)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던 에어프랑스 447편이 비행 도중 교신이 끊겼다. 비행한 지 3시간 만에 브라질 북동쪽 대서양 상공에서 사라진 것이다. 프랑스와 브라질 정부는 군용기, 군함 등을 동원해 추락 추정 해역에서 대규모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승객 216명과 승무원 12명 등 총 228명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났다. 영아 1명, 어린이는 7명이 타고 있었다. 당초 희생자 중에 한국인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브라질 공항 당국의 착오인 것으로 드러났다. 브라질 공항 당국이 구씨가 베트남에 거주한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베트남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곽호찬 에어프랑스 한국지사 부지사장은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 구학림씨가 에어프랑스에 탑승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구씨는 브라질에 출장 다녀오다가 변을 당한
2022년 5월 31일. 제주도 한 달 살기 체험을 하겠다며 떠난 일가족 3명이 이날 마지막 생활 반응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이후 이들 가족은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해 5월 17일. 광주시 남구에 살던 초등학교 5학년 조유나 양 부모는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2022년 5월 19일부터 6월 15일까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목적으로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교외 체험학습은 등교하지 않아도 학교장이 허락하면 가족여행 등 출석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기간, 장소, 체험 목적 등을 제출하면 사용 일자가 남아있는 등 문제가 없을 경우 학교에서 승인해주게 돼 있다. 조 양이 다니던 학교의 경우 교외 체험학습 가능일은 1년에 38일이었다. ━제주 간다던 조 양 가족, 완도로 향했다…미리 숙소 예약━교외 체험학습 신청서에는 행선지를 제주도라 적었지만, 실제 조 양 가족은 전남 완도로 향했다. 제주에서 완도로 한 달 살기 목적지를 바꿨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체험학습 신청일 이틀
1년 전인 2024년 5월 30일 오후 7시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오피스텔 6층 사무실에서 박학선(당시 65세)이 50대 여성 A씨와 그녀의 딸 30대 여성 B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신고받고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 당국은 가장 먼저 피해자 A씨와 B씨 상태를 살폈다. A씨는 범행 직후 숨을 거뒀고,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박학선은 범행 후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러 차례 택시를 갈아타며 도주했다. 경찰은 인근 CCTV에 녹화된 영상을 분석해 박학선의 인상착의와 동선을 파악했다. 점차 수사망을 좁혀 나간 경찰은 2024년 5월 31일 오전 7시45분쯤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박학선을 긴급 체포했다. 박학선이 도주한 지 13시간 만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박학선과 피해자 A씨는 교제하던 사이였다. A씨는 그만 만나자는 뜻을 전하기 위해 딸과 함께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학선과 만났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사건의 심각성을
11년 전인 2014년 5월 28일 0시20분쯤 전남 장성군 삼계면의 효사랑요양병원 별관 건물 2층 다용도실에서 불길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야에 발생한 화재로 요양병원 내부에는 유독가스가 빠르게 차올랐다. 0시27분 화재 신고를 접수한 소방 당국은 곧바로 출동, 0시31분 현장에 도착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소방의 신속한 대응으로 0시55분쯤 불길은 완전히 잡혔다. 그러나 요양병원 안에 고령의 환자가 많았던 탓에 21명이 숨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사망자 중 20명이 입원 중이던 환자였고, 나머지 1명은 간호조무사였다. 사망자 가운데 최고령은 92세였고, 80대 사망자만 5명이었다. 이곳에 머물던 환자 대다수가 고령이었던 탓에 신속히 대피하지 못하면서 유독가스에 노출돼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부상자도 7명 발생했다. 요양병원 내부에 스프링클러(자동방수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불이 난 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
2015년 5월 27일(현지시간).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이 경기도 오산의 주한미군기지로 잘못 배송된 사실이 미국 국방부 발표로 알려졌다. 이날 미국 국방부는 미국 유타 주의 더그웨이 군 연구시설인 더그웨이 연구소의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이 한국 오산의 주한미군기지로 잘못 배송됐다고 밝혔다. 살아있는 탄저균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옮겨졌으며, 영국, 캐나다, 호주 등 7개국 86개 실험실에도 잘못 배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탄저균 배달 사고는 탄저균을 잘못 배송받은 미국 메릴랜드주의 한 국방부 소속 연구소의 신고로 알려졌다. '공포의 백색 가루'로 불리는 탄저균은 극소량이라도 인체에 노출될 경우 치사율이 무려 95%에 달한다. 감염 시 80% 이상이 하루 만에 사망하며, 100㎏당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2001년 미국에서는 탄저균이 우편을 통해 정부와 언론에 전달돼 집배원과 기자, 병원 직원 등 5명
6년 전 오늘, 2019년 5월26일(한국시간). 봉준호 감독이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새로 썼다. '선을 넘은'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면서다.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후 기생충은 개봉 2주 만에 '천만 영화'로 우뚝 섰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써내려갔다. 기생충은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 9명의 만장일치로 최고상에 뽑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은 특별했고 다른 영화와 분명히 달랐다"고 평가했다. 시상식에 앞서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됐을 땐 8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외신의 호평이 쏟아졌다. 칸영화제는 베니스·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위상이 독보적이다. 이에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최고 중의 최고상으로 통한다. 그해 한국 영화는 100주년을 맞
5년 전인 2020년 5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이 한 흑인 남성을 바닥에 쓰러뜨려 제압, 그의 목을 무릎으로 강하게 눌렀다. 백인 경찰에게 강압적으로 체포된 흑인 남성의 이름은 조지 플로이드. 그는 키 193㎝에 체중 100㎏ 이상의 거구였으나 양손이 수갑에 묶인 탓에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계속해서 강하게 눌렀고, 플로이드는 간절한 목소리로 "I can't breathe"(숨이 안 쉬어진다)라고 반복해 외쳤다. 잠시 후 플로이드 코에서 갑자기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곧 그의 몸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렇게 현장에서 사망한 플로이드의 나이는 불과 46세에 불과했다. 경찰이 플로이드를 과잉 진압하는 모습, 플로이드가 숨을 쉬게 해 달라며 절규하는 모습, 플로이드가 숨지는 모습 등은 주변 시민의 핸드폰 카메라에 동영상으로 담겨 SNS(소셜미디어) 등에 퍼졌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미
20년 전 오늘인 2005년 5월24일, 외국에 일시 체류하면서 아이를 낳아 외국 시민권을 얻은 자라도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버릴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새 국적법이 시행됐다. 이 법 제정 배경을 살펴본다. 2002년 1월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공언했던 유승준(본명 스티브 승준 유)이 돌연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병역 면제를 받았다. 한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언론에서 '유승준 쇼크'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 충격은 국민적 분노로 확산한다. 법무부는 같은 해 2월 유승준을 입국 금지 조처했고, 유승준은 23년째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선 해외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한 원정출산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출산하면 곧바로 시민권을 얻어 해당 국가의 교육과 세제, 의료 혜택 등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원정출산에 나섰다. 특히 남자아이는 병역 면제도 받을 수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 30분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향년 63세로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뒤산에서 등산을 하다가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사저 뒤 부엉이바위에서 투신━이날 오전 5시 21분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에서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했다. 이후 5시 47분쯤 경호원 이모씨를 불러 산책을 나서기 위해 사저를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은 6시10분 부엉이바위에 도착했고 6시 14분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 법사(선재규 원장)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지시한다. 이씨는 정토원에 갔다가 6시17분에 돌아왔는데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경호동에 있던 경호관 신모씨에게 연락해 수색에 나섰고 6시45분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두부 손상과 늑골과 골반 등 전신에 다발성 골절을 입어 부산양산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9시30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2022년 5월 22일. 새벽 5시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서면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30세 남성 이현우가 일면식도 없었던 26세 여성의 후두부를 향해 돌려차기를 했다. 이른바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이다. 피해자 김진주(필명)씨가 건물 벽면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자 이현우는 김씨의 머리를 추가 폭행했다. 김씨는 기절해 쓰러졌고 오피스텔 입주민에게 발견돼 응급실로 이송됐다. ━ ◇엘레베이터 버튼 누르고…눈 뜨니 전치 16주 '상처투성이'━김씨는 지인과 약속을 갔다가 귀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공동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었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해리성 기억상실로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2~3일간 기억이 사라졌다. CC(폐쇄회로)TV 속 자신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본 후에야 벌어진 일을 알게 됐지만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김씨와 일면식도 없었던 이현우는 범죄를 저지른 이후 정신을 잃은 김씨를 둘러
2004년 5월 21일. 종교적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처음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법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었다. 당시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병역 소집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오모씨(당시 22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정모씨(당시 23세)와 예비군 소집 훈련을 거부한 황모씨(당시 32세)에 대해서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심의 자유는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 사항에 관한
26년 전 오늘, 1999년 5월20일 오전 대구 한 골목길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신원미상의 범인이 5세에 불과한 김태완군에게 갑작스럽게 '황산 테러'를 가하면서다. 최악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은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다. 태완군은 얼굴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도 잃었다. 49일간 작은 얼굴과 몸을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힘겹게 병원 생활을 견뎌냈지만 입 속에 황산이 들어간 탓에 패혈증으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태완군은 병상에서 범인을 묻는 말에 '○○(치킨집) 아저씨'라고 여러 차례, 분명히 답했으나 수사기관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사건을 영구미제로 남겼다. 이 사건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논의가 불붙어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5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로써 살인죄 공소시효는 폐지됐으나 정작 태완군 사건은 이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태완군은 사건 당일 평범한 아침을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