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25일. 선임들과 함께 강원 홍천군 아미산을 오르던 김도현 일병(당시 19세)이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져 크게 다쳤다. 선임들은 한참 만에야 그를 발견했지만 "내부 보고가 먼저"라며 119 신고를 미뤘다. 뒤늦게 도착한 군 헬기 역시 산림청 헬기를 쫓아내기 바빴다. 군이 구조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김 일병은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결국 구조를 포기한 군 대신 소방 헬기가 투입됐으나 김 일병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사고 책임자들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조사받았을 뿐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쯤 육군 제20기갑여단 53포병대대 소속 김도현 일병과 같은 생활관 상병 1명, 운전병 상병 1명(이하 운전병), 인솔자 이모 하사 1명, 현장 지휘관 홍모 중사 1명까지 총 5명이 아미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이날 훈련은 북한 침투를 대비해 산 정상에 통신 장비를 설치하는 훈련이었다. 그런데 부하들을 이끌고 산에 올라야 할 홍 중사가 "할 일이 있다"며 군용차에 남았다. 반대로 차에서 대기해야 하는 운전병은 중사 대신 입산했다.
이들이 운반할 통신 장비는 12㎏짜리 2개, 14㎏ 1개, 25㎏ 1개. 이 하사, 운전병, 상병, 김 일병 넷이서 계급 순서대로 가벼운 짐을 맡았고, 김 일병은 가장 무거운 25㎏ 장비를 들고 험한 산길을 올랐다.

그러다 11시쯤 12㎏짜리를 나르던 운전병이 발목을 접질렸다. 군화 대신 운동화를 신고 오르다 미끄러진 것. 같은 무게를 든 이 하사와 14㎏를 든 상병은 이미 그를 지나친 상황. 운전병의 짐은 자연스레 김 일병에게 넘겨졌다.
김 일병은 25㎏짜리를 일정 위치까지 올리고 다시 내려와 12㎏을 올리는 방식으로 장비를 운반했다. 운전병은 그런 김 일병을 지나쳐 먼저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김 일병이 오지 않자 이 하사가 찾으러 나섰다.
김 일병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은 오후 12시29분쯤. 이미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상황이었지만 이 하사는 119에 신고하는 대신 차에 있던 홍 중사에게 보고했다. 이어 1시50분쯤 "살려 달라"는 김 일병 목소리를 들은 이 하사는 약 40분 뒤인 2시29분쯤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진 김 일병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때도 119 신고는 없었다. 이 하사가 신고를 건의했지만 홍 중사가 "내부 보고가 먼저"라며 막아선 것. 이후 무의미한 전화 통화가 27분간 반복됐고, 결국 포대장 지시로 오후 2시56분에서야 최초 119 신고가 이뤄졌다.
그사이 김 일병 상태는 악화했다. 이미 추락으로 5번 경추와 어깨뼈가 골절되고 왼쪽 콩팥이 파열된 상황. 김 일병은 소대장 임모 상사와 통화에서 "응급실에 가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임 상사는 되레 욕설 섞인 면박을 줬다. 갖은 조롱에도 김 일병은 "소대장님 충성! 죄송합니다!"라고 수차례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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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35분쯤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119 요청에 따라 산악 사고 구조 경험이 풍부한 산림청 헬기도 출동했다. 그러나 4시44분쯤 뒤늦게 도착한 군 헬기가 산림청 측에 철수를 요청했다. 군에서 일어난 사고니 군 헬기가 구조해야 한다는 것. 공중 충돌을 우려한 산림청 헬기는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군 헬기는 김 일병 구조에 실패했다. 가파른 경사 탓 김 일병을 들어 올릴 장비(호이스트)를 내리지 못한 것. 김 일병은 군 헬기 도착 5분 만인 4시51분쯤 심정지에 빠졌다. 군 헬기 철수 후 출동한 소방헬기가 6시5분쯤 김 일병 구조에 성공해 6시18분쯤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선임들이 사건을 축소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포대장은 오후 4시49분쯤 김 일병 모친에게 "너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2분 뒤 김 일병이 심정지에 빠졌음에도 포대장은 김 일병 모친에게 "다리를 다쳤다"는 거짓말을 했다. 김 일병 심정지 상황도 사망 선고 1시간이 지나서야 전달했다.
"따로 할 일이 있다"며 운전병을 대신 입산시킨 홍 중사는 사고 당시 휴대전화 게임과 전화 통화를 했던 것으로 경찰 포렌식 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김 일병 소속 부대 대대장(중령)과 포대장(중위), 소대장 임 상사와 홍 중사, 이 하사 등 5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현장 간부를 제외한 나머지 피의자들까지 같은 혐의를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 경찰에 사건을 돌려보내며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군 내부서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여전히 일선 부대 지휘관으로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김 일병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유족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가족과 함께 생일을 보내기 위해 3박4일 휴가를 앞두고 있었던 김 일병은 싸늘한 주검이 돼 부모 품에 안겼다. 유족은 "신고와 구조가 늦어져 골든 타임을 놓쳤다"며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