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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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6 건
2003년 9월12일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덮쳤다. 1년 전인 2002년 8월 말 강릉에 하루 870㎜ 기록적인 비를 퍼부었던 태풍 '루사'의 상흔이 미처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피해는 더 컸다. 제주를 거쳐 남해안에 상륙해 영남지방을 관통한 뒤 동해안으로 빠져나간 '매미'는 전국적으로 130여명 인명피해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4조2225억원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매미'는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60m를 기록하는 등 역대 가장 강력한 가을 태풍으로 꼽힌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강도가 세지는데, '매미'의 최저기압은 2002년 '루사'(970h㎩)보다도 낮은 954h㎩를 기록했다. '매미'는 태풍이 처음 내륙에 상륙한 때인 12일 오후 7시51분 전남 여수에서 956. 5h㎩을 기록한 데 이어 오후 8시50분 경남 통영에선 954h㎩, 오후 9시37분 경남 마산에서는 959h㎩로 나타났다. '매미'는 이후로도 950h㎩ 대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를 관통해 더욱 큰 피해를 남겼다.
2019년 9월11일.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중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에서 초등학교 2학년 김민식군이 SUV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호등이 없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건너편 부모의 가게로 향하던 아이에게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였다. 김군과 함께 길을 건넜던 동생은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살아났다. 동생은 "엄마, 형이 나 밀어서 다쳤어"라고 말했다. ━스쿨존 횡단보도에 없던 신호등·안전 펜스·과속 카메라━ 김군 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죽을 것만 같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사고 소식을 알렸다. 이와 함께 스쿨존 내 교통사고 가중처벌과 신호등 및 단속 카메라 등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민식이법'의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김군 사고 당시 스쿨존은 어린이 보호구역이었음에도 신호등이 마련돼있지 않았다. 또한 차량이 근접한 좁은 사거리 임에도 안전 펜스가 설치돼있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군의 부모는 가해 운전자가 사고 당시 과속했다고 주장하며 스쿨존 내 과속 감시 카메라를 설치도 함께 요청했다.
2015년 9월10일.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의 주범 임모씨에게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임씨는 8살 의붓딸의 배를 발과 주먹으로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의붓딸이 '병사(病死)'한 것처럼 은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의붓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1살 여아가 때렸는데…"팔이 안 구부러져?"━ 사건은 2013년 8월16일 벌어졌다. 칠곡군 약목면 한 아파트에서 8살 A양이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계모 임씨는 A양이 평소 상담을 받던 해바라기센터에 "아이가 병으로 죽었는데,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하냐"고 문의했다. 하지만 평소 임씨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겨온 해바라기센터 측은 경찰에 이를 곧바로 알렸고, 부검을 통해 A양이 내부 장기 파열로 숨진 사실을 밝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언니 B양이 범행을 자백했다. 11살인 B양은 "A양에게 인형을 뺏기기 싫어 A양의 배를 주먹으로 다섯 번
2019년 9월 9일. 상견례를 앞두고 다툼을 벌인 연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피고인 A씨(당시 28세)가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이날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김복형 부장판사)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 선고와 함께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하고 범행 후 시신을 무참히 훼손한 수법은 납득하기 어렵고 우발적 범행이라고 볼 수 없다"며 "범행 후 피고인은 이 사건을 피해자와 그 가족 탓으로 돌리는 데 급급했고 줄곧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신분 속이고 접근해 결혼 밀어붙여…상견례 앞두고 결혼 미루려 하자 살인━이들은 한 스피치 어학원에서 만난 사이였다. A씨는 4살 연하의 B씨에게 처음부터 신분을 속이고 접근했다. K 대학교에 다니는 B씨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4년 후 B씨가 2018년 서울에 본사가 있는 대기업에 취직한 것을 알고 연락을 시작했다.
2016년 9월8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던 대학생 권대희(25)씨가 의료사고로 과다 출혈을 일으켰다. '14년 무사고'를 자랑한 이 병원에서는 당시 권씨를 포함해 환자 3명의 수술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집도의가 권씨를 두고 다른 환자를 살피러 수술실을 떠난 사이 사고가 터졌다. 중태에 빠져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권씨는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다가 저혈량 쇼크로 4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수술 1시간 만에 사라진 의사━권씨는 평소 두드러진 사각턱이 콤플렉스였다. 안면윤곽수술을 위해 그해 8월26일 내원해 상담을 받았고, 9월8일 수술대에 누워 몸을 맡겼다. 낮 12시30분에 시작된 수술은 11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밤 11시30분, 병원에서는 119에 권씨의 출혈이 심해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수술은 병원장 장모씨가 집도했다. 장씨는 오후 1시쯤 수술실에 들어와 수술을 시작했지만, 1시간 만에 뼈만 잘라
2017년 9월7일.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투여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송모(48·여)와 그의 내연남 황모(47)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한국 최초 '니코틴 살인 사건'의 범인이 마침내 가려진 순간이다. ━"담배도 안 피우던 사람이…" 니코틴 중독 사망━사건은 1년 전인 2016년 4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오모(53)씨가 잠이 든 채 숨졌다. 외상은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친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부검 결과가 이상했다. 오씨의 몸에서 니코틴이 너무 많이 나왔다. L당 1.95mg. 혈액 중 니코틴 농도가 L당 3.7mg 이상이면 치사량으로 알려졌다. L당 1.40mg 중독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오씨는 생전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았다. 3년간 건강검진에서도 니코틴 검사는 모두 음성으로 기록됐다. 오씨의 직장동료도 "그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몸을 잘 챙겼다. 평소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주말엔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한 남성에게 '로또 1등'이란 행운이 찾아왔다. 당첨금은 40억3448만5125원. 세금을 공제하고도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27억7000만원. 평생을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은 돈이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형제들에게 그의 로또 당첨 소식이 알려지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로또 1등이란 행운이 불행으로 뒤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달 남짓이었다. 2016년 9월 6일. 두 달 전 추첨한 로또 712회차 1등 당첨자 김모씨(당시 57세)와 가족들이 경남 양산경찰서에 모였다. 김씨의 집에서 가족들 간에 벌어진 소동 때문이었다. 김씨의 어머니, 여동생 둘과 매제까지 재물손괴 및 주거침입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김씨의 어머니에겐 모욕 혐의까지 적용됐다. 사건의 발단은 그해 7월 23일 로또 추첨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오래전 이혼하고 건설 일용직으로 근무하면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가운데 이날 김씨에게 로또 1등이란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씨는 두 남매를 키워준 어머니가 계신 부산으로 내려갔다.
"딸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진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 2023년 9월5일 대전고법 형사3부 심리로 열린 2심 재판에서 친딸을 강제 추행해 결국 죽음으로 내몬 50대가 이같이 말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1심에서부터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간 끝에 최종 징역 5년이 확정됐다. ━"아빠 딸이잖아, 아빠 딸이니까"…애원에도 범행한 친부━A씨는 딸인 B씨가 어렸을 때 가정폭력 등으로 이혼했다. 이후 10여년 지난 2022년 1월 A씨는 당시 21살이던 B씨에게 "대학생도 됐으니 밥 먹자"며 연락했다. B씨는 A씨 전화를 거부하다 마지못해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를 마친 뒤 A씨는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B씨를 집으로 데려갔고 이후 돌변해 범행했다. 당시 A씨는 신체 접촉을 거부하는 B씨를 때리며 속옷을 벗고 성폭행까지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직후 B씨는 "아버지인 A씨가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가족과 수사기관에 전달했다.
1994년 9월 4일 야구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 선수 17명이 당시 감독의 강압적인 지휘 스타일에 반발해 숙소를 이탈한 것이다. 82년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이기도 한 OB 베어스는 그해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5승 1패를 거두는 등 강력한 우승 후보팀으로 꼽혔다. 4월9일 열린 시즌 개막전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선 4-3으로 승리하면서 산뜻한 출발을 했다. 8회말 3-3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박현영의 적시타와 구원 투수로 나선 박철순의 역할이 컸다. 정규 시즌에서도 시범경기 때 기세를 이어가는 듯 했다. 이대로라면 우승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개막 이튿날 4월10일 열린 쌍방울과의 경기에서는 5-8로 역전패 당한 것. 쌍방울이 에이스급 투수 3명을 투입하는 등 칼을 갈고 나오자 당해낼 수 없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부부가 잠실구장에 찾아와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는데, 현직 대통령이 야구장을 방문하는 건 이례적인 일인 터라 승리를 위한 총력전이 펼쳐진 것.
8년 전인 2017년 9월 3일 낮 12시30분쯤 함경북도 길주군 북북서쪽 44㎞ 풍계리 인근에서 규모 5. 7의 인공 지진이 발생했다. 이를 감지한 대한민국 기상청은 "지진의 진원 깊이가 0㎞"라고 밝혔다. 통상 핵실험으로 인공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 같은 진원 깊이가 나타난다. 관련 내용을 전달받은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진행한 것 같다"고 판단, 대북감시 강화와 경계태세 격상 등 조처에 나섰다. ━6차 핵실험 진행 확인…"레드라인 넘은 北"━ 인공 지진이 감지된 지 약 1시간30분 뒤 합동참모본부는 "우려한 대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 레드라인을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했다"고 입장을 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도 북한에서 규모 5. 7의 지진이 발생했고, 핵실험이 유력한 원인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중국 지진국 역시 북한 지역에서 지진 발생을 감지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위력은 5차 핵실험 때(2016년 9월 9일)와 비교하면 5~6배 큰 것으로 분석됐다.
'탑승자 229명 전원 사망' ━이륙 1시간만에 조종석에서 '화재'…시속 500㎞로 바다에 추락━ 미국 현지시간 1998년 9월 2일 8시 18분.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떠나 스위스 제네바로 향하던 스위스에어 111편(기종 MD-11 여객기)이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인근 대서양에 추락했다. 승객 215명과 승무원 14명 등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충돌 속도는 시속 555㎞(킬로미터). 기체는 200만 개 이상의 파편으로 흩어졌다. 항공기가 공항을 떠난지 1시간쯤 지난 오후 9시10분쯤. 조종석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는 보고가 있었다. 기장은 처음 이를 에어컨 문제로 오인했다. 하지만 타는 냄새는 더 심해졌고, 조종석 천장 쪽에서 연기까지 나기 시작했다. 연기가 짙어지자 기장은 9시 14분부터 회항을 검토했고, 9시 20분에는 긴급 착륙을 위해 가장 가까운 캐나다 핼리팩스 국제공항으로 향하겠다고 통보했다. 순항 중이던 항공기의 고도는 1만m(미터) 상공. 최대 착륙 중량을 맞추기 위해 연료를 버리던 중, 조종사들은 객실 전원을 차단했는데 이때 환기 장치도 꺼지면서 불길이 조종석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1923년 9월1일. 일본 관동 지역 일대에 규모 7. 9의 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만 10만명이 넘을 정도로 피해가 컸는데, 돌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날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권인 도쿄·가나가와·지바 등 간토 지방에서 규모 7. 9의 지진이 발생해 10만5000여명이 사망했다. 2011년 규모 9. 0으로 기록됐던 동일본 대지진 사망자 수의 6배에 달한다. 피해액도 현재 가치로는 약 46조원에 달하는 전년도 국민총생산의 약 3분의 1정도로 추산됐다. 이른바 일본 역사상 최악의 대재앙으로 불리는 관동대지진이다. 지진으로 인한 불길은 목조 건물을 타고 빠르게 번져 45만여 가구를 태웠고,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미처 대피할 틈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일자리가 감소되는 등 경제 불황에서 자연재해로 더 먹고 살기 어려워지자 민심은 악화됐다. 당시 값싼 조선인 노동력이 일본 내에 유입됐는데, 조선인들이 일본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