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7월 28일. 부산시 외곽에 있는 한 농수로에서 여성의 시신 1구가 발견됐다. 시신의 양쪽 손은 하늘을 향해 꺾여 있는 특이한 자세였다. 몸의 곳곳엔 강한 결박으로 인한 상처와 성폭행의 흔적이 발견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신 어느 곳에서도 저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그녀에겐 어떠한 일이 있었기에 저항도 못한채 처참한 모습으로 사망한 걸까.
2000년 7월28일 오후 1시20분. 부산 한 농수로에서 2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여성은 성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린채 사망했다. 신원조회 결과 그녀는 전날밤 실종된 미용사 이모씨(당시 26세)로 밝혀졌다.
이씨는 전날인 7월27일 동료들과 회식 자리를 가지고 다음 날 0시 20분쯤 헤어졌다. 동료들과 헤어진 지점에서 이씨의 집까지는 400m거리. 도보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으나 이씨는 낙동강 건너편 대저동 농수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이씨는 상·하의 옷을 다 입고 있었으나 속옷과 구두만 사라진 상태였다. 경찰은 질액을 채취해 정액을 확인했다. 범인의 혈액형은 A형으로 확인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로 범인은 성폭행 후 이씨의 목을 조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씨의 몸에서는 반항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한쪽 손만 풀을 꼭 쥔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씨가 저항 의지를 상실한 채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봤을 때 범인은 한 명이 아닌 2명 이상일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실제로 이씨를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는 이씨를 태워 간 차에 3명의 남성이 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목격자는 당시 손님의 담배를 사러 나왔다가 이씨와 똑같은 생김새의 여성 앞에 어두운색 승용차가 멈춰 섰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조수석에서 한 남자가 내린 뒤 이 씨와 짧은 대화를 나눴고 이씨가 차 뒷자리에 탔다고 말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씨를 태운 남성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도 범인이 면식범일 것으로 추정했다. 혹은 미용사였던 이씨의 직업 특성상 범인만 피해자를 알고 있었던 편면식 관계일 수도 있다고 봤다. 이씨는 기억을 못 하지만 한두 번 손님으로 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산 대저동 일대의 지리적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발견 당시 구두를 신고 있지 않았던 이씨의 발바닥은 깨끗한 상태였기에 범행 장소는 실내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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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200여명을 대상으로 수사에 들어갔지만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이씨의 전 연인 2명도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리고 수사를 했으나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혈액형이 A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원래 2015년 7월 28일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부산경찰이 2015년 7월 31일부터 시행된 '태완이법'을 이씨 사건에도 적용하기 위해 애썼고, 법률 검토를 통해 단 사흘 차로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뻔했던 이씨 사건의 공소시효는 정지됐다.
2015년 경찰은 이씨 사건을 재수사하며 DNA를 재분석했는데, DNA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 아닌 O형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의 수사 기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의미 있는 분석 결과도 있었다. 범인의 DNA를 통해 그가 특정 성씨라는 걸 알게 됐다. Y염색체의 배열은 성씨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 DNA 정보를 통해 경찰은 범인의 성씨를 확인했다.
부산청 미제팀 형사는 2019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과학수사의 대명제가 있다"며 "화성살인사건과 같이 용의자의 DNA가 확인돼 이춘재가 특정된 것처럼 수십 년이 지난 사건도 계속적으로 관심을 가진다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저희는 믿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이씨를 살해하고 유기한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