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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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2017년 6월20일 오전 4시20분(한국 시간).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석방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숨을 거뒀다. 혼수상태로 고향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돌아온 지 엿새 만이다. ━체포 한 달만 입 연 웜비어…"제발 살려주세요"━ 버지니아대 3학년이던 웜비어는 2015년 말 패키지여행으로 북한을 찾았다. 그는 이듬해 1월2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친 혐의로 체포됐다. 북측은 체포 21일 만에야 웜비어의 체포 사실을 인정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한 미국인 적발체포"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웜비어는 미국 정부의 묵인, 조종 밑에 조선의 일심단결의 기초를 허물어버릴 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입국,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하다 적발돼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웜비어는 체포 한달여 만인 2월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오하이오주 우정연합감리교회의 지시로 선전물을
2016년 6월20일 새벽 2시쯤. 인도양 세이셸 군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원양어선 광현 803호(138t) 배 안에서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이 베트남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현 803호는 인도양에서 조업하기 위해 2015년 2월 부산항을 떠났다. 배에는 한국인 선원 3명, 베트남 선원 7명, 인도네시아 선원 8명 등 총 18명이 타고 있었다. ━선내 회식서 선장과 시비 붙어…"본국 돌아가" 말에 뺨 때리기도━ 배는 사건 11일 전인 6월9일 세이셸 군도 빅토리아항에서 인근 어장으로 출항했고, 이후 선내 회식을 하던 중 사건이 벌어졌다. 회식은 선상에서 미끼 작업을 하는 선원을 격려하기 위해 선장(당시 43세)이 마련한 자리였다. 선원 18명 중 13명이 함께 했다. 양주 5병에 수박 등이 함께한 회식 초반만 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취기가 오른 베트남 선원 A씨(당시 32세)와 B씨(당시 32세)가 장난을 치면서 갈등이 시작
1971년 12월. 중학교 교장 직무대리로 근무하던 교사 A씨 눈에 밤늦게 거리를 돌아다니던 중학생 7명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금이야 늦은 밤에 외출하는 일은 예삿일이지만 1970년대 우리나라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이동을 금지하는 야간 통행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 정책은 1982년 해제될 때까지 계속됐다. 늦은 밤거리를 활보하던 중학생 7명은 당시 기준으론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A씨는 문제가 된 중학생 7명을 교장실로 불러들인 뒤 비인간적인 구타를 시작했다. 3일 동안 학생들을 교장실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힌 뒤 주먹과 손바닥, 발로 머리와 얼굴 등을 가격했다. 피해 학생들의 학부모는 A씨를 고소했다. 검찰 그를 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A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에 대한 규정 미비…교사에게 내려진 관대한 처분━ A씨가 훈육을 빙자한 폭행을 가했다고 본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2심 재
하루 유동인구 100만명,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강남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16년 전 발생한 센트럴시티 살인사건이다. 해당 사건의 용의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처와 전처의 애인을 칼에 찔러 살해하고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아났다. 경찰은 용의자의 지명수배전단을 전국에 뿌렸지만, 16년이 흐른 지금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한국 최장기 수배범, 황주연이다. ━강남 한복판서 아이 미끼로 전처 불러내 18번 찔러…20분만에 사망━16년 전인 2008년 6월17일, 서울 고속터미널 호남선 부근에서 한 남성이 30대 여성 김 모씨를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그의 전 남편이었던 황주연이다. 현재 '대한민국 지명수배자 1번'이다. 만약 생존해 있다면 현재 나이 49세다. 무에타이 선수 출신이었던 황주연은 2008년 6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어린 딸을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이혼한 전처 김씨를 유인했다. 그리
1592년 임진년 6월16일. '성웅' 이순신은 왜군에 빼앗긴 조선의 바다를 되찾아왔다. 거제 옥포에서 왜척 26척을 섬멸해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했다. 그해 이순신과 조선군이 올린 첫 승전보다. 조선군은 이틀에 걸쳐 세 번 싸웠다. 16일 아침 대승을 거둔 조선군은 이날 오후와 그 다음 날에도 왜적을 추격해 격파했다. ━임진왜란 1년 전부터…이순신 "전쟁 준비하라"━ 승전 배경엔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군사 물자를 점검하고 훈련을 독려하는 등 만일에 있을 전쟁에 대비해 나갔다. 거북선을 건조하고 화포를 개량해 지자포(地字砲)와 현자포(玄字砲)를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는 "동헌 뜰에 화대(火臺) 돌기둥을 세웠다"거나,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공사례(公私禮)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長箭)과 편전(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투선은 어느 정도 완전해 기쁘다" 등 내용이 담겼
4년 전인 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50분쯤 북한이 개성공단 내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 폭파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을 통해 설치된 시설로,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05년 개소했던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를 보수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보수 예산과 공사비 등 명목으로 약 180억원을 사용했다. 이후에도 시설 운영을 위해 1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추가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고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시설을, 북한 측에서 협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폭파한 것이다.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 폭파한 다음 날, 조선중앙TV를 통해 33초 분량의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건물 폭파 장면을 세 가지 각도에서 촬영한 모습이 담겼다. 북한은 또 노동신문 등 선전 매체를 통해 관련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
25년 전인 1999년 6월 15일 오전 6시10분쯤 북한 경비정 4척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대한민국 영해에 들어왔다. 우리 해군은 의도적인 북한의 도발 행위라고 판단해 초계함 2척, 고속정 6척 편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약 1시간 반 뒤인 오전 8시40분쯤 북한은 경비정 3척을 추가로 대한민국 영해에 보냈다. 7척으로 늘어난 북한 경비정은 철수를 요구하는 우리 해군의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했다. 해군의 고속정 6척은 북한 경비정의 움직임에 맞대응하고자, 선체끼리 직접 부딪친 뒤 밀어내기 방식으로 북한 함정들을 NLL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함정들 간 밀어내기 싸움이 진행되는 도중, 북한의 어뢰정 3척도 현장에 추가로 가담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북한 측이 먼저 화기를 사용했다.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소총과 25㎜ 기관포 사격을 시작했다. 북한의 기습 공격에도 우리 해군은 신속하게 반격했다. 해군은 북한 함정들에 대해 밀어내기를 계속하면서 40㎜와
2000년 6월13일 오전10시27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측과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이날엔 공개석상에 잘 나오지 않아 은둔생활을 한다고 알려졌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김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순안공항에 미리 와 기다리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김 대통령. 그는 비행기에서 내린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남북한이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뒤 55년 만에 양국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가 기대했던 이상의 환대를 베풀어줬다. 또 60만 평양 시민이 열광적으로 저를 환영하고 환송해 줬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은 북한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본격적인 두 정상 간 회담이 막을 올렸다.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렸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그 치열했던 물밑작업━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
2016년 6월12일(현지시간) 오전 2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나이트클럽 '펄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약 300명의 인파가 모여 있던 현장에서는 큰 음악 소리로 인해 총소리를 듣지 못해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무려 50명, 부상자는 53명으로 9.11 테러 이후 벌어졌던 미국 최악의 테러 사건이었다. 범인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당시 29세)이었다. 사건 초반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영향을 받은 테러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으나, 이후 마틴이 평소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 발언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성소수자 증오범죄임이 밝혀졌다. ━◇클럽 음악에 총소리 못 들어 피해 증가…숨은 사람까지 찾아내 죽인 잔혹한 범죄자━ 당시 클럽은 커다란 음악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총소리가 시작됐을 때에 대해 일부 인파는 "효과음인 줄 알았다"라고 증언했다. 이후 비명과 피 흘리는 사람들을 본 목격자들이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마틴은
13년 전인 2011년 6월 11일 오전 6시쯤 북한 방향에서 한 소형 선박이 인천 강화군의 우도(隅島) 해상으로 넘어왔다. 배에는 성인 남성 3명과 성인 여성 2명, 어린이 4명 등 모두 9명이 탑승해 있었다. 대한민국 땅을 밟은 뒤 귀순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황해도 내륙 지역에 거주하던 일가족으로 탈북을 결심, 바닷길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국가정보원은 경찰,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등과 합동신문조를 구성해 탈북민들의 월남 동기와 경로 등을 조사했다. 당국은 조사 결과, 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계획적으로 탈북한 것으로 파악했다. 북한 주민 9명의 귀순 소식은 4일 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같은 해 6월 15일 대한민국 언론들이 관련 보도를 전했다. 한국 언론에서 기사가 난 다음 날(6월 16일), 북한 측은 탈북민 9명의 송환을 요구하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북한의 전통문은 낮 12시쯤 판문점 대한적십자사 채널을 통해 접수됐다. 북한은 주민들뿐 아니라
1993년 6월 10일, 경기 연천군의 한 육군 훈련장에서 경기 인천/부천지역 예비군이 M114 155㎜ 곡사포로 실사격 훈련을 하다가 폭발 사고가 발생해 현역 장병과 예비군 총 20명이 사망했다. 1968년 예비군 창설 이래 예비군 관련 사고 중 최악의 인명 피해다. 그럼에도 "예비군들이 포탄에 충격을 주면 터진다 안 터진다로 시비가 붙어서 포탄을 오함마로 내리쳤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안전교육 미비한데 대대장마저 소령━ 당초 군 당국은 예비군들이 버린 담뱃불이 사고 원인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이 사고는 고폭탄 사격을 위해 신관을 결합하던 도중 폭발이 발생했고, 파편이 장약통을 관통한 후 연소되어 근처 조명탄 2발까지 연속 폭발하면서 일어난 참사였다. 포사격 훈련은 엄격한 안전훈련이 필수였음에도 이날 훈련에서는 안전교육이 미비했다. 당시 예비군을 교육하던 조교는 현역 1명과 방위병 2명이었는데, 방위병의 경우 포 관련 지식이
2010년 6월 10일 오후 5시1분.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에서 대한민국 최초 우주발사체 로켓 '나로호'가 엄청난 화염을 뿜으며 발사됐다. 약 10개월 전 1차 발사가 실패로 이어지면서 두 번째 도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발사 137초 후인 오후 5시 4분쯤 70㎞ 상공에 있는 나로호와 교신이 단절됐다. 약 한 시간 뒤 안병만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나로호가 비행 중 폭발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나로호 2차도 실패였다. ━"발사 137초 후 교신 단절"…나로호 2차 '실패 원인'은?━나로호(KSLV-Ⅰ)는 100㎏급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다. 총길이 33.5m, 총중량 140t으로 액체 엔진인 1단과 고체 엔진인 2단으로 구성됐다. 한국과 러시아 공동 제작으로 1단은 러시아가, 상단은 국내 독자 기술로 만들어졌다. 2009년 1차 발사에 실패하고 2차에선 성공하리란 기대가 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