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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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붕괴 2시간 만에 생존자 11명 구조 완료' 2015년 2월 11일 오후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사당종합체육관' 천장 붕괴 현장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공사 중 천장이 무너지면서 매몰된 11명의 건설 근로자들이 구조작업을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모두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아찔한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지만, 천운이 깃든 날이었다. 준공을 앞두고 구조 검토를 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진행한 공사가 문제였다. 설날 명절 연휴(2월 18~20일)를 앞둔 평범한 수요일이었다. 한 주만 지나면 명절 연휴가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이날 대한민국에서는 대형 사고 두 건이 연달아 터졌다. 같은 날 오전 9시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 상부 서울 방면 도로에서 106중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다쳤다. 짙은 안개와 도로 표면의 얇은 얼음층인 블랙아이스가 사고 원인이었다. 같은 날 오후 4시 50분쯤, 사당종합체육관 천장이 무너졌다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5년 전 오늘 2020년 2월10일(한국시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 줄줄이 쓰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과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휩쓸며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최초, 또 최초...영화사를 새로 썼다 ━ 파격의 연속이었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역사 101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시아계 영화로도 최초였다. 92년 전통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이 비영어권 영화에 돌아간 것 역시 처음이었다. 영어로 만들어진 영화, 백인들만 주인공이 되는 시상식이어서 '화이트 오스카'란 논란이 줄곧 일었다. 외국 영화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도 초유의 일이었다. 기생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는 1955년 미국 영화 '마티' 이후 65년 만이었다.
16년 전인 2009년 2월 9일 오후 6시쯤 경남 창녕군 화왕산 정상(해발 757m)에서는 정월대보름을 기념해 억새 태우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는 수백명의 등산객이 행사를 구경하고자 주위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 행사 관계자들이 억새에 불을 붙이고 약 10분 후, 정상 인근의 골짜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바람이 불길 방향에서 관광객 쪽으로 오는 역풍(逆風)이었던 것. 방화선 밖에서 불길을 구경하던 관광객들은 갑작스러운 역풍에 당황해 대피하기 시작했다. 역풍 때문에 거센 화마가 방화선을 넘어 자신들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서 많은 인원이 신속하게 대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행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불길이 관광객들을 덮치면서 현장에서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불에 타 목숨 잃은 4명, 병원서 3명 추가 사망━ 현장서 불에 타 목숨을 잃은 4명의 시신은 사고 지점 인근의 억새
106년 전인 1919년 2월 8일 오후 일본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600여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모여 '2·8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들은 최고의 조선인 엘리트 집단으로 평가받았다. 침략국에 건너가 지식을 쌓으면서도 강점된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랐던 셈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10년대 일본에 있던 한국인 유학생들은 △조선기독교청년회 △조선유학생학우회 △조선학회 △조선여자친목회 등을 결성해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이들이 독립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1914년) 이후였다. 학계는 특히 1918년 세계 대전 종전 때 미국이 발표한 평화원칙, 휴전조약 등 내용이 유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자극을 줬을 것이라고 봤다. 조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유학생들은 1919년 1월 6일,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2년 전인 2023년 2월 6일 새벽 4시17분(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서부가 맞닿는 국경지대에서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이와 함께 지면이 거칠게 요동쳤고, 굉음은 곧 대피하는 시민들의 비명에 묻히기 시작했다. 소란의 원인은 리히터 규모(M) 7.8의 대지진이었다. 지하 약 17.9㎞ 지점에서 발생한 지진은 국경지대 내 아파트를 비롯한 수많은 건물을 붕괴시켜 현지 주민들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첫 지진이 발생한 지 약 9시간 후에 규모 7.5의 2차 지진이 찾아왔다. 이어 수십 차례의 여진이 인근 지역을 강타하면서 피해는 지속해서 누적됐다. 미국 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대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 5만명 이상, 시리아에서 6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현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면서 약 13만명에 달하는 부상자도 발생했다. 거주지를 잃은 이재민의 수도 2300만가량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이번 대지진은 1939년 에르진잔 대지진(3만3000명)을
2013년 2월 5일. 광주 북구 한 도로에서 연쇄 살인 용의자 김모씨(당시 34세) 차량이 목격됐다. 경찰은 곧바로 전남 담양군으로 향하는 차량을 추적했다. 도주하던 김씨는 차량을 검문하던 경찰관을 들이받아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김씨는 27km 정도를 더 달아나다 경찰관들에게 포위돼 검거됐다. 차량 트렁크에서는 40대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10대 때부터 범죄…스무살에 첫 살인━김씨는 전날 밤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 A씨(당시 21세)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였다. 김씨를 긴급체포한 경찰은 차량을 수색했고, 트렁크에서는 다른 여성 B씨(당시 40세)의 시신이 발견됐다. 연쇄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다. 조사 결과 김씨는 전과 4범으로 드러났다. 18살이던 1997년 길거리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다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듬해에는 본드를 흡입해 소년법상 보호 처분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에는 구치소와 교도소를 들락날락
2015년 2월 4일. 사망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편이자 아버지인 공무원을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꾸민 아내와 아들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고 발생 8년여 만이었다. 법정에 선 모자는 "억울하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들이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살인했다고 판단했다. ━교통사고로 피해자 혼자 사망…곧바로 화장━사건은 2006년 12월 25일 밤 9시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 정읍시청 공무원이었던 김모씨(당시 54세)는 아내 백모씨(당시 51세)와 함께 둘째 아들(당시 28세)이 운전하는 SUV 차량을 타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가고 있었다. 이동 중 아들은 정읍시 칠보삼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은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김씨가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를 확인한 의사는 호흡과 맥박, 심장 박동 등이 없다며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판정을 내렸다. 추돌사고에 따른
"딸을 성추행했다는 말을 듣고 홧김에…" 2017년 2월3일. 딸이 다니는 학교 취업지원관(산학겸임 교사)을 살해한 박모씨(당시 46)는 경찰 조사에서 이같이 자백했다. 전날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났던 그는 같은 날 오후 남편과 함께 지구대를 찾아 자수했다. 심야 조사 끝에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박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엄마, 선생님한테 성추행 당했어요"━사건은 이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의 딸 A양(당시 18세)은 이날 취업 상담을 위해 만난 취업지원관 B씨와 만나 저녁을 먹고 함께 유흥 노래방을 찾았다. A양은 이 자리에서 B씨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이튿날 아침 박씨에게 털어놨다. 박씨는 곧바로 B씨에게 전화해 항의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자 범행을 저지르기로 계획했다. 박씨는 같은 날 오후 충북 청주시의 한 커피숍에서 B씨를 만나 미리 준비해간 흉기로 찔렀다. 목 부위를 크게 다친 B씨는 경찰에 이를 신고하고 걸어서 병원에 가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
"너무 유감이고 난감합니다. 여러분이 용서하면 돌아오겠습니다." 2002년 2월 2일 이중국적자임에도 병역 의무를 다하겠다고 공언해 '아름다운 청년'으로 불렸던 가수 스티브 승준 유(한국명 유승준)가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거부에 미국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스티브 유는 입국 심사 차례를 기다리다 법무부 직원으로부터 "입국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입국 금지가 일시적인 것이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2003년 6월 예비 장인 장례식을 위해 잠시 들린 것을 제외하면 현재도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신체검사 받은 유승준…"남자는 때 되면 가야죠"━1990년대 말 혜성처럼 나타나 잇따라 히트곡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솔로 아이돌 가수로 자리 잡은 유승준은 당시만 해도 이중국적으로 병역문제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병역법이 개정되며 그도 병역의무 이행 대상이 됐다. 갑자기 병역 대상이
2004년 2월 1일. 전 세계에 생방송되는 무대에서 마이클 잭슨 여동생이자 팝스타인 자넷 잭슨(59)의 가슴이 노출됐다. 함께 공연하던 저스틴 팀버레이크(44)가 잭슨의 의상을 잡아당기는 안무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니플게이트'(nipplegate)라 불리는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주관 방송사 CBS는 음란한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는 이유로 미국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을 치렀고, 이후 방송 규제가 강화되면서 미국에서는 검열과 언론 자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퍼포먼스하다 0.5초 가슴 노출…고의성 여부 논란━당시 잭슨과 팀버레이크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슈퍼볼(Super Bowl) 하프타임 쇼에서 '락 유어 바디'(Rock Your Body) 합동 공연을 펼쳤다. 슈퍼볼은 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이며 전반전 이후 진행되는 하프타임 쇼 무대에는 세계적 팝스타들이 오른다. 공연 막바지에 등장한 팀버레이크는 "이 곡이 끝나기 전 옷을 벗게 해줄게"라
"지난 4년간의 가요계 활동을 마감하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제게 살이 에이고 뼈를 깎는듯한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합니다."(서태지) 1996년 1월31일 오전 11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그룹 해체를 알렸다. 1992년 4월 혜성처럼 등장한 이들이 활동한 지 4년 만이다. 정상의 위치에서 발표된 은퇴 소식은 가요계와 대중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진행한 기자회견은 각 방송사 9시 뉴스의 첫 소식으로 다뤄졌다. 은퇴를 반대하는 팬은 서태지 집 앞에 모여들기도 했다. 은퇴 기자회견 직후에는 기자회견장부터 공항까지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을 보기 위해 공항엔 300여명의 팬이 모였고, 공항당국이 200여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하기도 했다. 다행히 큰 소동은 없었다. ━인기 가수 은퇴에... 경찰까지 나섰다?━은퇴 기자회견 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은 미리
'희대의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 시대가 개막했다. 92년 전 오늘, 1933년 1월30일 히틀러가 독일 총리(수상)로 임명되면서다. 나치당 당수로서 총리에 앉은 그는 일당독재 체제를 확립한 데 이어 파울 폰 힌덴부르크 당시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 지위까지 겸하며 절대 권력을 거머쥔 독재자가 됐다. 이후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 역사책에 '희대의 악마'로 기록됐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임명된 건 '비극의 시작'이었다. ━광기의 독재자 되기까지━ 히틀러는 1889년 독일 국경과 맞닿은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그는 화가를 꿈꾸고 바그너 음악에 빠지는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미대에 진학까지 했지만 특출난 재능은 없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내면서 당시 가톨릭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에 심취하게 됐다. 그러다가 독일인이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 믿는 독일민족지상주의자가 됐고 오스트리